신사나라 ‘황색 신문’의 煽情 주의
  • 런던·한준혁 통신원 ()
  • 승인 2006.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이저 내각 첫 스캔들 … 13개 대중지, 멜러 장관 ‘혼외정사’ 폭로 경쟁



 “너는 나를 완전히 지치게 만들었어. 나는 지금 기진맥진한 상태야. 그러나 어젯밤 너와 즐거움을 나눈 후라서 나는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날아갈 듯 해….”

 영국 보수당 내각의 주요 각료인 데이비드 멜러(43) 내셔널 헤리티지부(국가문화재관리부) 장관이 자신의 정부인 무명 여배우 안토니아 드 산챠(31) 양과 집무실에서 통화한 내용이다. 간밤의 정사 때문에 다음날 오후 여왕이 참석하는 주요 행사에서 읽어야 할 연설문을 작성할 일이 크게 걱정된다고 멜러 장관이 연인을 향해 투정한 내용이 타블로이드 신문인 일요판 대중지〈더 피플〉에 첫 공개된 것은 지난 7월19일.

 메이저 총리의 집권 이후 각료의 섹스 추문으로선 첫 케이스가 되는 멜러 장관과 실직 여배우와의 섹스 스캔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갖가지 비밀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져 이를 파헤쳐 보도하는 타블로이드 신문의 숨길도 가빠졌다.

 비록 지난 63년 존 프로퓨모 국방장관의 사임을 몰고온 크리스틴 킬러, 그리고 런던주재 소련대사관 무관이 얽힌 3각 섹스 스캔들에 비해 이번 사건은 국가의 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없다는 점에서 다르긴 하다. 그러나 영국 국민과 언론은 이번 스캔들이 킬러사건 이후 정치인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게다가 4월의 총선 승리 이후 메이저 총리가 신설한 내각의 주요부서인 내셔널 헤리티지부의 최고 책임자가 도덕적으로 탈선했다는 점, 특히 그가 메이저 총리의 절친한 친구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집권 보수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언론의 폭로 후에도 산챠양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강요하면서, 오히려 언론의 무절제한 사생활 보도가 자신의 가족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끼친다고 강변하는 멜러 장관의 오만한 태도와 그에 대한 메이저 총리의 지지표명에 맞서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일제히 그에게 각료직을 사임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멜러 장관은 장관직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전후 영국의 정치사에서 섹스 스캔들이 백일하에 완전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직을 물러나지 않은 첫 각료가 됐다.

 

영국인 3분의 2가 ‘대중지’ 읽어

 영국 신문은 지방지를 제외할 경우 현재 전국에 주 6일 배포되는 주요 조간이 12개, 전국판 일요신문이 10개로 이 22개의 전국지가운데 고급지가 9개이며 나머지는 모두 속칭 ‘타블로이드’라 불리는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다.

 일간 대중지의 효시로 불리는〈데일리 메일〉은 1869년 창간됐으며, 현재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일요신문《뉴스 오브 더 월드》는 1843년 창간돼 1백50년의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일간 대중지의 효시로 불리는〈데일리 메일〉은 1896년 창간됐으며, 현재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일요신문《뉴스 오브더 월드》는 1843년 창간돼 1백50년의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 대중지의 평일 판매부수는 1천1백40만부, 일요일 판매부수는 1천3백70만부로 영국인 3명 가운데 두명은 매일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는 셈이 된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다소 체통을 지키는 〈데일리 익스프레스〉나〈데일리 미러〉〈투데이〉등 이 매일같이 여배우나 모델의 나체사진을 곁들여 섹스와 스캔들, 쇼킹한 범죄사건을 주로 다룸으로써 대중의 흥미와 속물 취미에 영합하는 이른바 황색 신문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타블로이드 신문 가운데 판매부수 1,2위를 기록하고 있는〈더 선〉과 〈데일리 미러〉는 산챠양의 애정행각을 보도하면서, 그의 지난날 남자친구의 말을 인용해 산챠양의 房事특기를 구체적으로 보도하는가 하면, 그가 한때 출연했던 준 포르노 영화의 노골적인 섹스신까지 1면에 게재함으로써 이번 스캔들보도의 절정을 이루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이번 멜러 스캔들을 보도하면서 그가 선거운동 기간중 가족의 단란함을 미덕으로 부각시키고, 불륜행각 때문에 공적인 행사의 연설문 작성에까지 애를 먹였다면서 정치인과 연설문 작성에까지 애를 먹였다면서 정치인과 각료로서의 그의 행동이 유권자를 우롱하고 공공의 이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급지인〈더 타임즈〉는 개인의 사생활을 공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행위가 범죄나 중대한 반 사회적 행위일 경우에만 한정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도청에 의해 불법적으로 얻어진 개인의 사생활, 특히 멜러의 혼외정사 보도는 그것이 국가이익에 반하거나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점에서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라고 맞섰다.

 신문계의 자율규제기구인 ‘신문불만처리위원회’는 이번 보도가 공익에 속하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정치인의 사적인 행동이 공적 업무 수행에 영향을 미칠 경우 정치인의 사생활과 그의 개인적인 행동을 일반 공중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만을 발표했다.

 이같은 신문불만처리위원회의 결정은 일단 타블로이드 신문들에겐 첫 전투에서의 승리로 기록될 만하다. 그러나 멜러 장관과 산챠양으로부터 사생활 침해라는 정식항의가 위원회에 접수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결정이 내려졌으므로 앞으로 타블로이드 신문이 개인의 사생활 보도를 아무런 법적 제한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 신문불만처리위원회의 자체 규율기능에 회의를 품고 있는 메이저 내각과 의회는 지난 6월의 다이애나 -찰스의 결혼생활 보도와 이번 스캔들 보도를 계기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사생활보호법’을 입법화할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타블로이드 신문들의 연대 작전으로 사생활 보호법을 입법화하려는 움직임은 일단 제동이 걸리겠지만, 최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멜러의 장관직 유지에 찬성하고 있는 보수당과 야당권 체재수호 집단은 지난 1세기 동안 선정적인 보도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해온 타블로이드 신문의 횡포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은 이제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됐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