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지출분도 깎겠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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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긴축예산…인건비 교부금 등 구조개편 불가피


 경제기획원 예산실의 한 관리는 “93년도 예산 편성은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정부 제2청사 경제기획원 예산실 복도에 장사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49개 예산 편성 기관 담당자)은 조금이라도 덜 깎이기 위해 갖은 인맥을 동원하고 있다. 예산실이 각 기관의 요구액을 칼질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올해는 절대적으로 재원이 부족해 일정한 수준만 남기고 나머지는 아예 도려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예산증가율을 두고 계속돼온 팽창 시비를 벗어나 보기 위해서다.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은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 편성 여건을 설명하면서 이 상태로는 예산을 짤 수 없다고 말했다. 내년도에 들어올 세금은 적은데 확정적으로 지출할 몫은 많아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지출마저 못할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93년도 나라살림 짜기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우선 세입을 전망하면 내년도 경상성장률(성장률 7%와 물가수준 5~6%)을 12~13%로 잡을 때 들어올 세금은 38조5천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보다 15.4%(5조3천억원)가 늘어난 규모이지만 예년의 세입 성장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와 근로소득세를 감면해 주면 1조원 이상의 감세요인이 생긴다. 재정투융자 특별회계도 올해보다 5천억원이 줄어 내년도 가용재원 증가액은 3조8천억원에 불과하다.

 반면 지출해야 할 돈은 많다. 법이나 제도에 묶여 자동적으로 나가야 할 확정지출분을 보면, 공무원 봉급을 한푼도 올리지 않는다해도 호봉 승급 등으로 8천5백억원이 더 필요하다. 방위비 자연증가도 7천억원이나 된다. 교부금으로 나갈 돈은 1조4백억원에 이른다. 이밖에 양곡기금 지원, 의료보장 및 보훈보상금 같은 지출요인이 만만치 않다. 확정적 지출이 3조7천억원이나 돼 내년도 가용재원 수준을 육박한다. 확정된 지출분을 빼면 사업비는 1천억원밖에 남지 않는다. 이 돈으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해야 하고 농촌과 중소기업 구조 조정, 인력 육성 등에도 지원해 주어야 한다.

 

임금 동결·목적세 도입 반발 커

 급기야 정부는 확정된 지출분이라도 깎아야겠다며 ‘재정개혁’을 들고 나왔다. 또 유류 및 자동차 관련 특별소비세의 25.07%를 지방 교부금으로 주던 것을 못주겠다고 선언했다. 이 돈을 사회간접자본 목적세로 묶어 도로와 지하철 건설에 쓰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해가 걸린 부처는 반발하고 있다.

 내무부 김기재 지방채정국장은 “지방정부의 젖줄과 같은 교부금을 끊어버리면 재정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지방정부가 생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극히 낮은 군 등 지방정부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현안인 지역간 불균형도 더욱 심화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교육부는 교육재정 확충이 시급한 상황에서 오히려 교육교부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제기획원은 교부금을 내년에 주지 않더라도 이 돈이 국도나 지하철에 쓰이게 될 것이며 과거에 돈으로 주던 것을 사업으로 대신한다는 점을 인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송망이 확충돼 그 지역이 발전되면 그 지방으로 사람과 기업이 몰려들 것이고 이는 지방 정부의 세수 증가를 가져와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또 지방재정 지원에는 교부금뿐만 아니라 양여금 보조금도 있다면서 중앙정부의 지방재정 지원은 92년에 14조원이 넘는다고 말한다. 82년(2조7천억원)에 비해 5.2배 증가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 예산은 중앙정부의 90%에 이르렀다. 예산증가율로보면 10년 동안 중앙정부는 3.9배 늘었으나 지방정부는 7.3배 증가한 셈이다.

 경제기획원은 경직적인 비용을 줄이는 구조의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국방비가 있다. 재정학자들은 화해 분위기로 많은 나라가 국방비를 줄이고 있다고 보지만 이에 대한 국방부의 시각은 다르다. 북한의 위협은 상존하고 있으며 새로운 전력증강의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이다. 국방부는 내년 예산요구액으로 9조9천억원을 써냈다. 92년보다 18% 증가한 것으로 덩치가 가장 크다. 국방연구원 김종문 연구위원은 “1인당 국민소득이 6천달러인 나라에서 군인 한사람의 부식비가 고작 3백14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65만 병력을 줄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니라면 지금보다 생활이 열악해져야 한다는 말과 같다. 계획과 달리 더 높은 값으로 신무기를 사온 전례도 있다. F16전투기를 90년에 사지 않고 89년에 샀더라면 1대당 24%씩 덜 줬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방예산은 깎기 어렵다”고 말한다. 《국방백서》를 보면 91년 예산 중 병력운용비(인건비)가 42.6%, 전력발전비(무기 구입)가 34.9%를 차지하고 있다. 항상 깎인 것은 전력발전비였다. 인건비 비중이 높아 삭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무원 인건비도 그렇다. 지방자치제를 하면서 지방공무원이 7만2천명이나 늘었다. 새로 봉급을 올리지 않아도 인건비가 크게 뛰었다. 기존 인원도 호봉 승급을 안해줄 재간이 없다. 한국조세연구원 최광 연구부장은 “국방비의 인건비나 공무원 봉급에 드는 지출을 줄이려면 결국 불필요한 인원인 ‘비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또 생산성을 높여 세사람이 하던 일을 두사람이 하게 하고 남는 인력을 재배치해 증원 압력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李錫采 예산실장은 소득보장적 지출을 어떻게 줄이는가가 구조개편의 열쇠라고 본다. 과거의 불균형 성장에 대한 보상으로 6공화국은 “그늘진 곳에 빛을 더 주자”는 복지와 균형을 강조하는 정책을 펴왔다. 소득보상적 지출은 81년에 1천5백억원이던 것이 92년에는 3조원을 넘고 있다. 10년새 19.8배 늘었다. 그러나 줄이자고 마음 먹어도 한번 제도화된 것을 뒤로 돌리기는 어렵다.

 

예산 깎이는 쪽은 고통 감내해야

양곡기금에서 매년 몇천억원을 떼어내 수매가로 주어야 하며 의료보험비와 보훈보상금도 지원해야 한다. 정치권은 재원은 염두에 두지 않고 수매량과 수매가를 정해버리므로 국회를 통과하면 국가는 빚을 내서라도 주어야 한다. 한 재정학자는 “경제에 공짜 점심이 없다는 미국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의 말처럼 재정에도 공짜가 없다 재정혜택을 받으려면 이에 상응하는 조세를 부담해야 한다. 수익자나 원인제공자가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라고 강조한다.

정부는 확정적 지출을 줄여 남은 돈을 사업비에 떼어 주려고 하고 있다. 각 부처는 사업비로 떼어 주려고 하고 있다. 각 부처는 사업비로 16조5천억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92년보다 8조원이 늘었다. 그러나 2조원을 넘기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다, 특히 사회간접자본 예산도 92년 수준(4조1천억원)을 크게 웃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회간접자본 투자기획단의 김호식 국장은 “물적 유통이 많은 경부축을 대폭 손질한다는 차원에서 경부고속전철과 수원~천안간 철도, 내륙 컨테이너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광양컨테이너항 건설, 남원~수원간 국도 확장공사, 전라선 개량 사업 등도 추진해야 한다. 각 부처는 이를 위해 7조원을 요구했는데 5조원 이하로 깎이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내년 예산편성의 원칙에는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만 대통령 공약사업에는 부정적인 견해가 있다. 한 재정학자는 “꼭 지금 이같은 대형사업을 해야 하느냐. 먼저 타당성 조사를 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도 “경제성과 타당성은 있지만 투자 우선순위 면에서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경부고속전철은 올해 1천억 예산을 가지고 착수했다. 내년에는 6천억원이 잡혀 있는데 98년까지 총5조8천억원이 든다. 영종도 신공항은 올해 7백억원으로 착수해 내년에 3천억원을 쓰도록 배정하고 있다. 총 3조4천억원이 소요되는 사업이다.

 재정규모는 88년부터 늘기 시작했으나 92년부터 꺾이고 있다. 내년은 한국개발연구원의 학자들이 “놀랐다”고 말할 정도로 줄 전망이다. 긴축재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넓은 의미의 재정인 공공부문(종합재정)에서 보면 문제가 없는 것만도 아니다. 공공부문의 92년 증가율은 13.6%(일반회계 5.8%)로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6%(13.7%)였다.20%를 넘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공공부문은 3년 계속 적자이다. 91년 재정적자는 4조원이 넘었다. 국민총생산의 2%에 달한다. 정부는 순융자금을 감안하면 5천8백억원 흑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회계상의 말일 뿐이다.올해도 2조 5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 문형표 연구위원은 “공공부문이 적자라는 것은 그 해에 들어온 돈보다 나간 돈이 많았다는 뜻이다. 재정팽창이 물가 등 거시경제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 정설은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구조 개선이 시그보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거둬 재정규모를 늘리는 길 대신 긴축의 길을 선택했다.보따리 크기는 일정한데 한 부문에 돈을 몰아준다면 필연적으로 깎이는 부문이 생긴다. 깎이는 쪽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감내하지 않으면 보따리는 꾸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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