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의 ‘白髮三千丈’
  • 안병찬 (편집인)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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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의 어리석음은 인고의 삶이 만든 덕이요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라는 이치를 깨달아야 ….



 통일국민당 대통령 후보 정주영씨는 올해 일흔여덟살의 늙은이이다. 그가 늙었다는 말이 아니고 그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말이다.

 여러 춘추를 오로지 장삿속으로 보내며 기업가로 재벌로 성장한 그가 일흔일곱살의 희수연을 지낸 직후 졸지풍파를 일으키며 정치가가 된 것은 다 아는 일이다.

 정주영씨의 고령은 한편으로 기대감을 준다. 그가 “내 장점은 순발력 하나에 있노라”하고 뽐내며 노인답지 않게 밀어붙이며 정력을 과시하니까 그렇다. 동시에 그의 고령이 위험스럽게 여겨진다. 이미 얼굴에 검버섯이 핀 것을 노화추방제로 지워버렸는지 요즘은 희미한 자국만 남겨놓았다지만 그게 노화를 아주 저지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정주영의 흑발을 보면 그의 노화에의 거부가 느껴진다. 우리 남도소리의 ‘백발가’의 가락도 연상된다.

 ‘고금역대 헤아리니 공도난계(당연한 길, 경계하지 못할 일) 백발이요, 못 면할 쏜 죽음이라… 도덕있던 왕대 석순 재물 없어 죽었으며, 명만고 사마천은 문필 없어 죽었으며, 화타와 편작이는 약을 몰라 죽었으랴… 사후에 만반진수 불여생전의 일배주라 허니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 하고 청승맞게 넘어가는 단가 가락이다.

 떠나고나면 진수성찬도 살아 생전의 한잔 술만 못하다니, 한번 순발력있게 정치권력 투쟁에 매진일로하여 거드럭거려보자고 정주영 노인이 흑발가를 부른다고 여겨지는 걸 어쩌랴.

 

‘흑발가’ 구가하는 정후보인가

 늙는다는 것이 쓸쓸한 일인 건 당연하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의 시구 가운데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늙은 몸의 슬픔을 과장과 해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백발 삼천장, 근심걱정으로 저리도 길었네, 모를레라 거울 속에,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던고’.

 거울을 보니 문득 서리같은 흰 머리카락이 성성하다. “이건 어디서 왔단 말인가” 하고 중얼거린 다음 순간에 이미 슬픔의 물결은 조용해지고 이백의 마음의 수면에 가을 하늘과 흰 구름이 떠 있었을 것이다(아동문학가 李元壽 주해)

 이백은 61세를 살고 죽었으므로 그가 백발삼천장을 본 것은 60세 전후였을 터이다. 정주영은 78세에도 고령을 뿌리치고 정치판풍진세상을 달리는 처지가 되었으니 백발삼천장은 안중에도 없을테고 오히려 백발삼천장의 탄식을 질타할 게 분명하다.

 그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절에서 업혀 산은 내려왔다거나 하는 헛소문도 자주 돌아다닌다. 고령이어서 대통령으로서의 국정 수행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에 그는 특히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정주영는 생리 논쟁을 자주 건다. 지난주에도 부산 동구 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해서 김영삼 후보를 겨냥하여 “키가 작아 머리를 올려 붙였다”고 비꼬는가 하면 자기는 촌놈이면 촌놈처럼 생긴 대로 살지 표를 위해 생리까지 고칠 생각이 없다고 그다운 생리론을 폈다. 자기가 생리를 고쳐 얼굴의 검버섯을 없앤 일은 예외로 친다는 표정이다.

 그가 나이에 비해 지칠줄 모르는 육체적 건강을 누린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에 경찰관 중에는 경범죄 처벌법 위반자의 즉결심판 청구서를 쓰면서 ‘路上에 水砲를 방사한 者’라고 묘사하는 웃기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정주영 대표의 수포방사하는 소리가 젊은이 못지 않다고 국민당 최고위원이 전하는 소리도 좌중을 웃겼다. 또 다른 측근은 정주영 후보가 계단을 내려갈 때 낙상이라도 할까 봐 주위 사람이 부축하려 들면 팔을 홱 뿌리친다고 증언한다. 정주영 후보를 눈여겨 본 한 교수는 그 권위주의적 가부장이 우직하면서 노회했으나 노망에 걸렸다는 객관적 증거는 아직까지 주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정주영씨 측근은 그의 숙자 기억력은 매우 놀라운 데 사람을 몰라봐서 탈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주영씨의 사람 못알아보는 건망성은 알츠하이머병을 의심할 지경으로 심한 것이 사실이다.

 

후보의 자질과 체질은 막중함을 알아야

 늙은이는 그 완고함과 지례가 특성이다. 늙은이는 어리석어야 늙은이답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일화가 그렇다. 옛날 중국에 ‘우공’이라는 아흔살 노인이 살았는데 집 앞에 두 개의 높은 산이 가로막아 산을 옮기기로 작정한다. ‘지수’라는 지혜있는 노인이 비웃으니 우공이 대답한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있고 아들이 있으면 손자가 있다. 사람은 갈수록 많아지고 산의 바위는 옮길수록 작아지는 이치를 모르는다.” 마침내 상제가 감동하여 산을 옮겨 주었다는 우화가 ‘우공이산’이다. 이 얘기는 어리석음이야말로 늙은이의 인고의 삶이 만들어내는 덕이요 늙은이의 지혜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라는 이치를 일러 깨닫게 한다.

 전경련 회장은 정주영씨 듣기 좋으라고 자기가 관상을 좀 볼줄 아는데 정회장이 1백26세까지의 수를 타고 있다고 했다. 정주영 노인은 한 오백년사는 기분으로 살고 있고 1백살가지 일선에서 뛰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후보의 자질과 체질은 막중하다. 노년성 퇴행을 거부하면서 88세 미수연과 1백세연을 바라보는 정주영씨. 당신은 60세 늙은이 이백의 백발삼천장에서 깨닫는 바 있어야 하고 90세 늙은이 우공의 어리석음에서 배우는 바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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