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남 칼럼] 공적 결단의 용기와 질문
  • (본지 칼럼니스트 · 작가) ()
  • 승인 199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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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이문옥씨가 23개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에 얽힌 내역을 터뜨렸을 때, 나는 먼저 그의 나이에 유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통고시에 합격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감사원에서만 19년 동안 일하고 올해 쉰 살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곤 잠시 숨을 멈추었다.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고였다. 생활인의 나이 50은 막말로 죽을래야 죽을 수 없으며, 자신의 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겨냥하지 못하고 일단의 가족을 위해 바치고 소진시켜야 하는 책임의 절정기이다. 미안하지만 사회적인 역할 분담이나 떠맡은 몫의 중요성도, 이 범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인의 내력이다. 가정과 처자식에 대한 도리를 뛰어넘어 더 큰 의무를 지향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강의 보통 사람들의 이 대목에서 주저앉게 마련이다. 망설이고 주춤거리다가, 모난 돌로 힐난받는 게 무서워 눌러앉는 갈등의 시간은 그래도 나은 선택이다. 그래 보았자 나만 축날 뿐이라는 체념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훨씬 많다. 또한 그걸 탓할 수도 없다는 은밀한 약조가 바탕에 깔려 있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이치가 상식의 옷을 걸치고 행세하는 마당이라, 중뿔나게 굴어 득될 것이 없다는 인식은 어느 세상에서나 희망사항 아닌 양해사항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조직의 기강을 ??윗분?? 위주의 편의주의로 가다듬으려는 성향이 강한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렇다. 이문옥씨가 지적한 것처럼, 감사원 간부들이 그에게 ??제발 같이 좀 살자??고 말했다는 부분에서 이런 경향을 확인한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상식의 허실

 이문옥씨는 구속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는 몸이 되었다. 바깥에서는 그가 밝힌 재별의 비리라든가 관청의 잘못된 처리를 두고 “그게 아니다??라는 관료성 변명이 무성하다. 민자당이 단독으로 연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감사원장은 ??지각없는 직원 한명??이 외부에 발설해서는 안될 내용을 알렸다고 비난했다. 어차피 ??집안??끼리 만난 자리인 까닭도 있을 터이다. 의당 그런 말이 나옴직하다는 전후 분위기를 모를 것도 없다. 검찰이 이문옥씨의 신문 제보동기를 인사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간주하고, 정부 관련기관의 공신력이나 품위 손상, 그리고 공무상 기밀 누설로 규정한 것도 짐작하지 못한 바 아니다. 그보다는 일쑤 경험해온 ??꽤씸죄??의 부분이 더 선명하게 보일망정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이 드러날 것을 기대하거니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국민의 알권리와 함께 예상되는 불이익을 무릅쓰고 더 막대한 도덕률이 무엇인가를 물은 이문옥씨의 용기이다.

 이 문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비단 감사 기관의 존재 양식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따지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스스로를 던져 첨예하게 질문한 행위로 파악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최소한도 ‘中'은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아니다'라고 외친 뜻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어느 기관이든 구성원에게 충성과 비밀유지를 요구하는 법규와 관습은 있다. 그러나 그걸 일률적으로 강요할 건 아니다. 국가안위와 직결되는 사안이라면 모를까, 한 정권의 잘못마저 동등한 위치에 놓고 다룰 성질인가를 의문시하는 눈은 만만치 않다. 하물며 그것이 정부의 재벌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과세나 로비설과도 연관된 것일 때, 우선 구속부터 하는 절차를 밟은 것은 순서가 바뀐 셈이다. '그게 아니다'면서 제시한 구체적인 지적과 수치를 뒤엎는 반론으로서의 '그게 아니다'가, 재벌비호와 사태의 진화에만 급급한 인상을 준다면 법은 필경 누구의 편일까를 또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돈줄'이 도덕성을 회복시킨다

 어떻든 이문옥씨의 행동을 공적 결단이었다고 믿는다. 인사 불만 때문이라는 단서를 달기도 하지만,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이 “감사원이 이래선 안 되겠다'는 그의 분노와 절망과 충정, 또는 소문난 깐깐이 기질까지 원인무효로 돌릴 수는 없을 터이다.

 “50이 넘은 나이에 일선을 떠나 교육사업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나 자신으로 보면 매우 잘 된 일이다. 다만 재벌들이 압력을 넣어 부당하게 인사를 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기자에게 이같이 말한 그의 심경은 따라서 깊은 설득력으로 다가온다.
 이문옥씨는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을 했다. 그건 매우 드문 일이다. 한 사회는 이런 분들의 정의로운 ‘돌출??로 도덕성을 각성 회복한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경우는 다르지만 멀리(1956년 8월)는 지방의 선거 때의 '換標 '를 폭로했던 朴在杓순경(당시 25세)을 기억한다. 8  13 지방의회 선거가 끝난 보름 후였다. 전북 정읍경찰서 소성지서에 근무하던 그는 사표를 내고 서울로 탈출, '경찰관이 투표함을 개표소로 싣고 가던 중 환표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김종원 치안국장은 거짓말이라고 펄쩍 뛰었다. 현장을 똑똑히 목격한 그는 결국 직무유기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구속 기소되어 1심에선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나 2심서는 환표 사실을 인정 그 부분은 무죄를 선고하고, 직무유기만 따져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내려 석방했다.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 최종적으로 환표를 인정했다.

 이문옥씨, 당신은 마침내 당당하다. 소시민의 주눅들린 양심을 새삼스럽게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존재는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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