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이륙 복수 민항에 ‘항공 자유화’ 난기류
  • 김상익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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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형사 공세…대한항공·아시아나 협력 절실



 세계 항공운송 업계는 91년을 최악의 해로 기억할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교통량 수요가 감소했으며, 악화된 기업환경으로 대형 항공사의 도산이 잇따랐다. 승객 수 1위를 자랑하던 미국 이스턴항공과 미국을 대표하여 국제노선을 확장해나가던 팬암항공이 맥없이 무너졌다. 우량 항공사로 꼽히는 일본항공(JAL)도 국제노선에서 2백60억엔의 적자를 냈다. 이는 걸프전이라는 특수상황과 세계적 경기침체, 업체간의 과다경쟁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91년 세계 항공업계의 수지는 90년보다 다소 나아졌다. 미국의 항공 전문지《에어라인 파이낸셜 뉴스》에 따르면 세계 항공 운송업계의 91년 총수입은 2천34억달러로 90년에 비해 2% 가량 늘었고, 순이익도 90년 43억달러 적자에서 37억달러(추정) 적자로 적자폭이 줄었다. 비록 91년 교통량 감소라는 충격을 경험하긴 했지만 시장 규모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정기여객 수요 전망에 따르면 92년 4.2%, 93년 5.2%, 94년 6.4%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대한항공 부설 교통산업 연구원 이경섭 선임연구원은 “92년에도 여객 수요가 크게 늘지 않고 유가가 상승해 3년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면서 “항공업계는 실속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70년대까지 각국은 항공산업의 중요성 때문에 보호육성 정책을 펴는 동시에 각종 규제를 가해왔다. 미국 정부도 78년 이전까지는 원가보다 높은 운임을 보장하고 새 항공사 설립을 억제해 기존 항공사의 안정된 수익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항공산업규제완화법(78년)과 국제항공경쟁법(79년)이 제정됨에 따라 자유경쟁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항공정책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가는 1국 1항공사 원칙 아래 규제를 풀지 않고 있으나 미국에서 시작된 항공자유화 바람은 영국 일본 등으로 확산되었다. 일본은 86년 신항공정책을 세워 국제노선 복수운항을 허용하고 일본항공의 민영화를 꾀했다. 이 정책이 수립되기 전까지 일본항공은 국제선 위조, 전일공수(ANA)는 국내선 위주, 일본에어시스템(JAS)은 국내지선 위주로 운항해왔다.

 항공운송업계에 규제완화 정책이 도입되면서 미국 항공사들의 경영전략에도 큰 변화가 왔다. 종전까지는 어느 한 도시에서 어느 한 도시를 왕복하는 운항방식을 취했다. 규제가 있던 시절 미국의 항공사는 매출액의 10~15% 이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여객이 적은 구간에서도 운항이 가능했다. 그러나 새 항공사들이 낮은 운임으로 치고들어오자 그같은 방식으로는 생존이 어렵게 됐다. 기존 대형 항공사들은 허브 앤 스포크(hub-and-spoke)라는 노선망을 구축했다. 허브는 바퀴의 중심이고 스포크는 바퀴살이다.

 

미국, 효율적 노선망과 합병으로 세계화

 미국 항공사들은 거점 공항(허브)을 중심으로 바퀴살처럼 노선망을 펼쳐나갔다. 각 지역의 여객을 일단 허브 공항으로 끌어모은 뒤 바퀴살 노선망을 통해 승객을 목적지까지 실어날랐다. ㄱ에서 ㄴ으로 가려는 사람이 시간당 10명이라면 항공사로서는 좌석 수를 채우기 위해 운항 횟수를 줄여야 한다. ㄷ,ㄹ,ㅁ지역에서 ㄴ으로 가고자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라면 승객은 승객대로 불편을 겪고 항공사도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이럴 때 중간지점에 ㅂ공항(허브)을 설치한다. ㄱ,ㄷ,ㄹ,ㅁ지역에서 ㄴ으로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을 일단 ㅂ공항에 모은 뒤 ㅂ에서 ㄴ으로 떠나면 항공사는 운항 횟수를 늘릴 수 있고 비행기 삯도 낮출 수 있다. 승객은 한번 갈아타는 대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다.

 미국의 기존 항공사들은 이같이 효율적인 노선망을 구축해 신규 항공사의 추격을 따돌렸다. 이후 미국의 항공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 확장을 거듭했다. 90년대에는 아메리칸항공(AA) 유나이티드항공(UAL) 델타항공(DAL) 등 ‘빅3’이 미국 항공시장의 60%를 점유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생성된 미국의 초대형 항공사들은 현재 전세계적인 노선망 구축을 꾀하고 있다. 유럽의 항공사들도 통합 또는 자본제휴 등의 방법으로 대형화·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초대형 항공사들은 현재 아시아 시장에 활발히 진입하고 있다. 90년 미주와 유럽 지역 항공사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동안 아시아 지역 항공사들은 흑자를 기록했다. 그 이유는 아시아 지역 교통량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급속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아시아 지역의 정기여객 수요 증가가 미주·유럽을 훨씬 웃돌 것으로 분석한다(표 참조). 전세계 항공운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8년에는 18.2%로 북미(42.24%) 유럽(29.9%)에 이어 3위에 그쳤으나 2000년에는 26.1%로 유럽시장(24.6%)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최근 3년간 미국 항공사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노선 수를 크게 늘렸다. 89년 미국 항공사들은 51만 좌석을 공급했으나 90년에는 88만 좌석으로, 91년에는 97만 좌석으로 공급량을 늘렸다.

 미국과 유럽 항공사들의 아시아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김포공항에 취항하는 외국 항공사도 급증했다. 91년 5월 이후 알리탈리아(이탈리아) 콴타스(호주) 등 5개 항공사가 한국에 신규 취항했다. 8월1일 현재 한국에 취항하고 있는 외국 항공사의 수는 18개국 28개사로 늘어났다. 이들 항공사는 67개 노선에서 주 2백56회 운항하고 있으며 시장 점유율은 50%에 육박하고 있다(표 참조).

 외국 항공사들이 한국에 앞다투어 진출하는 것은 항공시장의 급성장에 1차 원인이 있지만 서울이 장차 동북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해운산업연구원의 李英■ 연구위원은 “동북아의 중심은 일본이지만 일본의 국제공항은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서울이 대체공항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일본인조차 복잡한 나리타공항을 경유하느니 서울을 이용해 드나들기 원한다”면서 “정치논리를 떠나 새 공항은 빨리 지어질수록 좋오 그럴 때 서울은 동북아 항공망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공항 지어 동북아 항공망 중심돼야”

 한국 취항 외국 항공사가 늘수록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과 유럽의 대형 항공사들이 덩치를 앞세운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어 국내 항공사들의 생존이 문제되고 있다. 대한항공측은 “비용절감과 네트워크의 효율적 구축 등 경쟁력 강화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측은 “유럽 취항을 금지하는 등 정부의 규제는 상품개발에 치명적”이라면서 “현재의 운항 횟수 배분 방식도 불리하다”고 말했다. 주 2~3회 운항하는 노선에서 하루에 몇번씩 뜨는 항공사와 경쟁이 되겠느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 노선에 뛰어드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를 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4년간 국제노선을 둘러싸고 실전을 벌인 것은 세계 항공산업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교통부 국제항공과 金光在 과장은 “우리나라 항공사의 규모를 볼 때 무한정한 복수 취항은 비생산적”이라면서 “덤핑 노선을 뛰어다녀 봐야 수익이 나지 않으므로 성장 위주보다는 서로 협력·보완 관계를 유지하면서 내실있는 경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 향상 방안과 관련해 대한항공측은 “공항시설을 개선하고 외국 항공사의 가격 공세에 대응해 요금책정에 융통성을 보이는 등 정부의 정책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혁씨는 “외국 항공사와의 제휴·연합으로 경쟁을 피하는 것도 경쟁력 강화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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