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쓴 ‘빨치산’ 수기
  • 윤구병 (충북대 교수·철학)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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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간 전향 거부《이인모》



 송건호 〈한겨레신문〉 회장이 추천사를 쓰고 박현서 한양대 교수가 해설을 맡은《이인모》(월간《말》펴냄)는 전 인민군 종군 기자 이인모씨(75)의 자필 수기이다. 이 책은 11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6장까지는 열세살 때부터 참가한 항일 독립운동에서부터 전쟁·빨치산 생활을, 7장에서 9장까지는 34년에 걸친 옥중생활을, 10장과 11장에서는 출옥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생활을 그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일제시대의 사회주의 운동 이면사와 지리산 빨치산 경남도당의 활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들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 독자에게는 7장에서부터 11장까지가 훨씬 더 충격적이고 감동적일 것이다. 이인모를 비롯한 비전향 좌익수들이 감옥 안에서 얼마나 참혹한 고초를 당해야 했는지는 다음과 같은 증언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0.8평 남짓한 독거 감방에다 9~10명씩 처넣어 앉기는커녕 설 자리도 없는 지경이었다…떡봉이(감옥에서 좌익수들을 괴롭히기 위해 동원한 흉악범)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우리들을 곤봉으로 두들겨 팼다…떡봉이들은 얇은 담요는 모두 빼앗아갔다. 한 동지의 경우 팬티만 남기고 옷을 벗긴 후 수갑을 채워 담요도 없는 방에 3~4일을 가두었다.”

 이러한 ‘전향 공작’의 와중에서 초기에 2만명이 넘던 좌익수들이 전향을 하거나, 굶어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 끝까지 청주감호소에 남아 있게 된 사람은 51명에 지나지 않게 된다. 51명의 장기수들이 산 징역 햇수는 도합 1천5백90년, 1인당 평균 31년이 넘는다. 이런 체험을 근거로 이인모씨는 “우리가 굴복하지 않은 것은 사상 때문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야수들에게는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사무친 분노야말로 우리 동지들이 뜻을 꺾지 않았던 본질적인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토로한다.

 이렇듯이 분노로 얼어붙은 이인모 노인의 마음을 훈훈하게 녹여주는 것은 사상도 이념도 아니다. 그것은 감옥 안에서는 담요 밑에 사탕 봉지를 몰래 감추어 전해주는 서준식 같은 나이 어린 장기수가, 그리고 병든 노인을 선뜻 한 식구로 맞아들이는 김상원씨 같은 농부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다.

 현재 이인모씨 문제를 놓고 남과 북은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남측이 이인모씨의 송환을 요구하는 북측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온갖 시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 신념을 견지해온 이인모씨가 북으로 송환되면 북한 정권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 것이다. 이것은 북한에 이익이 되는 일이니 남한에는 손해다”라는 논리 때문이라고 저자는 믿는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이인모씨는 “나에겐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달려갔으면 하는 바람보다 더 간절한 소망이 하나 있다. 그것은 민족의 진정한 화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인모씨의 마지막 소원을 현실화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본다. 따라서 7천만 온겨레가 분단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현하고 있는 이 노인의 말을 겸손히 경청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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