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색가요’ 비판 아랑곳없이 10대들도 즐겨 불러 … 일본노래까지 침투한 실정
  • 이성남 기자 ()
  • 승인 1990.04.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
‘뽕짝’은 온 국민의 노래인가

 뽕짝의 선율과 정서는 우리 생활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뽕짝 가요가 가장 원색적으로 숨쉬며 번창하는 공간으로 야간업소를 빼놓을 수 없다.


 4월10일 밤. 서울 남대문 근처 극장식당 ‘초원의 집’에는 사십줄 이상의 중년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 홀 중앙에 자리잡은 환갑을 맞은 이인기씨 가족 20여명이 이채로웠다. 8시 15분. 쇼가 시작되자 한 여자 무명가수가 등장하여 이미자의 대표곡을 연달아 목청껏 불렀다. 다음 순서로 서울패밀리의 곡예쇼가 펼쳐졌고  곧이어 뽕짝 가요의 산 증인인 김정구가 출연했다. 그가 ‘눈물 젖은 두만강’과 ‘번지 없는 주막’등을 구성지게 부르는 동안 관객들은 간간이 박수장단을 맞춰 원로가수의 흥을 북돋워주고 있었다.


 9시가 되자 인순이와 리듬터치가 등장하여 다이내믹한 율동과 함께 팝송을 열창했다. 이어 그는 “여러분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추억의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며 ‘목포의 눈물’과 ‘굳세어라 금순아’등의 뽕짝가요를 메들리로 엮어 불렀다. 10시35분. 현재 최고주가를 올리고 있는 현철이 출연,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사랑은 얄미운 나빈가봐’ ‘봉선화연정’을 불렀다. 어느덧 홀을 가득메운 취객들은 저마다 흥에 겨워 박수장단을 맞추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순서에서도 역시 남자 무명가수가 등장하여 ‘천둥산 박달재’ ‘대지의 항구’ 등의 뽕짝 가요를 불렀다.

 

술자리에선 단연 ‘뽕짝’이 으뜸

 비단 ‘초원의 집’ 뿐만이 아니라 ‘홀리데이인 서울’을 위시한 호텔 나이트클럽, 카바레, 대형 스탠드바, 지방의 야간업소도 밤마다 이와 같은 무대구성으로 뽕짝가요의 ‘보급’을 거들고 있다.


 또한 ‘가라오케’나 ‘방석집’을 가보면 뽕짝 가요가 마치 ‘국민의 노래’로 추앙받고 있는 듯한 현실을 볼 수 있다. 직장인들이 모여 기분푸는 방법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이 돌아가며 노래부르기인데 그 자리에서는 “젓가락 장단 두들기며 부르는” 뽕짝가요가 어떤 명가곡보다 대접받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가요조사연구소가 89년 11월10일부터 12월말까지 전국의 5백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인의 애창가요 선호도’ 결과를 보면 20대보다는 30대 이상이 더 트롯가요를 즐겨 부르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30~40대가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이고, 2위가 주현미의 ‘짝사랑’, 3위가 현철의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이다. 한편 50대 이상의 경우, 1위는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이며, 2위가 배호의 ‘누가 울어’, 3위가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김수희의 ‘멍에’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주현미의 ‘비에 젖은 영동교’가 각각 6,7,8위를 차지함으로써 연령이 높을수록 트롯 계열 음악을 선호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또 ‘노래는 어떻게 배웠느냐’라는 항목을 보면 높은 연령층은 술좌석에서, 낮은 연령층은 방송을 통해서 배우는 비율이 높다. 20대는 ‘라디오에서’가 70%이고 ‘친구들과 어울려서’가 20%, ‘노래책이나 악보를 통해서’가 10%이다. 이에 비해 30~40대는 ‘술좌석에서 노래하다 배운다’가 55%이고 ‘라디오에서’가 40%이며 ‘노래책 · 악보를 통해서’가 5%이다. 그런가 하면 50대는 70%가 ‘술좌석이나 기타모임에서’, 30%가 ‘라디오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다. 이로써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방송을 통해서 또는 우연히 듣게 됨으로써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배우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흘러간 옛 노래를 위주로 한 뽕짝가요를 주로 취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KBS1텔레비전의 ‘가요무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9일 오후 3시부터 진행된 녹화현장.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육순 안팎의 노인들이 7백석의 방청석을 가득 메웠고. 심지어 통로에까지 앉아 감회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개중에는 지난날의 서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져며오는 듯 흐르는 눈물을 닦는 이도 보였다. 85년 11월에 시작된 첫 방송부터 4년이 넘게 제작에 참여했던 윤인섭 프로듀서는 “일반대중이 흘러간 옛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요무대’를 신설했다”고 제작배경을 설명했다. 요즈음에도 하루에 엽서 신청곡이 5백~7백통씩 들어오는 사실로 미루어보다 이 방송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신청곡 대부분이 어머니, 아버지, 고향을 주제로 삼은 노래라는 점이다. 윤 프로듀서는 “신청곡의 3분의 1쯤이 ‘불효자는 웁니다’이고 그 다음이 ‘어머님’과 ‘흙에 살리라’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노래”라면서 이로 미루어 “우리나라 사람 의식속에는 스스로 불효자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또 ‘가요무대’가 단순히 가요만을 소개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한스럽게 살았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는 장면을 제공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풀이하면서 “비록 소비적이고 감상적인 요소가 있는 뽕짝가요일지라도 이 노래를 발전시켜 대중들이 웃고 부를 수 있는 생활의 노래로 만들어나갈 가치는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온 국민을 동질의 질서로 몰아넣는 뽕짝의 확산이 방송 또는 술좌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를 합쳐 총 1백만장이 넘게 팔려 한국 대중가요 사상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주현미의 ‘쌍쌍파티’, 김연자의 ‘가요 메들리’가 모두 뽕짝이라는 사실은 개별적으로 음반 또는 테이프를 구입하여 듣는 뽕짝의 향수층이 두터움을 입증한다.

일본인이나 교포들도 뽕짝레코드 많이 구입
 서울 청계천4가에 위치한 음반 도매업소인 삼성사의 신석룡 전무는 “최근에는 일반인들이 모여 트롯가요를 전문으로 연습하는 모임들이 여럿 생겨났다”고 귀띔하면서 이는 근래에 텔레비전에서 트롯가요가 많이 소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뽕짝음반을 사가는 사람 중에는 일본인이나 재미교포, 중국교포들이 많은데 “일본인들이 현철 이미자 김연자 이성애 나훈아 남진 태진아의 것을 주로 찾는데 비해 연변 · 길림 교포들은 김정구의 ‘눈물젖은 두만강’,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백년설의 ‘고향설’, 고복수의 ‘나그네 설움’ 등 흘러간 노래를 주로 찾는다”고 알려준다.


 86년부터 해마다 한국음반협회와 <일간스포츠>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있는 ‘골든디스크상’ 수상자에 드롯계열의 가수가 적지 않게 끼어 있다. 전국 레코드 도소매상을 대상으로 하여 한해동안 판매된 음반과 카세트테이프 순위를 집계한 결과, 86년의 10대 가수중에 김수희, 주현미, 최진희가 선정되었다. 87년에는 주현미 최진희가 10대 가수안에 들었으며 인기가수로는 김수희가, 신인가수로는 문희옥이 선정되었다.


 그런가 하면, 88년에는 ‘신사동 그사람’을 부른 주현미가 그해 음반판매 최고가수로 선정되어 대상을 차지했다. 89년에는 ‘사랑의 거리’를 부른 문희옥과 ‘짝사랑’의 주현미, ‘옥경이’를 부른 태진아와 ‘봉선화 연정’의 현철이 10대 가수에 선정되었다.


 골든디스크상을 4년 내리 수상한 주현미의 인기를 분석할 때 트롯노래를 좋아하는 연령층에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의 가수를 중심으로 한 뽕짝열풍이 중년층이라는 한정된 계층에서 형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주현미의 노래들은 중고생이나 젊은 직장인에게까지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가요’라고까지 격상된 요즈음의 뽕짝열풍은 과연 방송이나 야간업소의 무대에서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것이 우리 민족정서에 부응한 선율이기 때문일까?


 4월9일 오후 2시경 여의도 KBS별관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는 주현미의 ‘짝사랑’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신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KBS별관 앞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길가 리어카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뽕짝의 선율이 또다시 고막을 울렸다. 불법 녹음 테이프를 판매하는 리어카위에는 ‘일본 엔카’와 ‘뽕짝 가요’테이프가 나란히 놓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의 카스테레오에서도 ‘쌍쌍파티’가 신명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