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변절한 4 · 19세대 반성해야”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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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혁명 30주년 기념토론회 “민주화 · 분배 · 통일이 우리시대의 과제”

4월혁명 관계단체인 ‘무명회’가 주최하고 《시사저널》이 후원한 ‘4월혁명 30주년 기념토론회(4월11일 ·프레스센터)에는 60년 당시 시위에 가담했던 8명의 연사들이 정치가 학자 언론인등 각각 다른 신분으로 나와 ’4월혁명과 오늘의 과제‘라는 주제로 토의를 벌여 관심을 모았다. 이날 연사들은 “4월 혁명은 학생들과 지식인이 선두에 서고 시민들이 호응한 ’옆으로부터의 혁명‘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 혁명이었고, 민족주의 혁명이었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 愼鏞厦교수(서울대 · 사회학)의 견해에 인식을 같이 하면서도 각기 다른 입장에서 4 ·19를 새롭게 조명했다.

 서울대 법과대학 3학년이었던 金光一의원(가칭 민주당) 은 4월혁명의 성격을 정치혁명 · 사회혁명 · 민족혁명으로 나누어 규정한 뒤 ‘혁명정신의 승계’를 오늘의 과제로 내세웠다. 또 오늘날의 정치 · 사회상황은 4월혁명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진단하고, 혁명적 상황의호도, 혁명정신의 변질, 혁명방법론의 오류를 경계해야 할 일로 지적했다.

 당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이었던 金重緯의원(민자)은 “4 · 19는 기성정치질서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단기적으로 변혁시켰다는 점에서는 혁명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그러나 “서구적 의미의 시민혁명과는 구별하고 싶은 국민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당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었던 柳寅■의원(평민)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당시 학생들의 구호가 오늘날에도 계속 외쳐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민족통일의 달성이 미완의 혁명을 완성시키는 길임을 강조했다.

 이어 지명토론에서는 다소 활발한 의견이 오고갔다. 당시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1학년이었던 金景梓(정치평론가)씨는 “지난 30년간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으면서도 4 · 19데 대해 내린 평가가 유사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그러나 “수많은 후배 학생운동가들에게 애정과 배려가 없는 것”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 시절 데모는 대단히 ‘낭만적’이었다고 회고하는 그는 4 · 19세대들은 통일의 수확을 달성함으로써 그동안의 무책임에 대한 변상을 해야 한다“면서 이 토론회가 4 · 19 이후 변절한 자들이 삶을 겸허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1학년이었던 李敬在<동아일보> 정치부장은 “후배를 따뜻이 지켜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아 의견의 차이를 보였다. 지금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인 만큼 4 · 19의 목표를 지향하되 문제제기와 함께 방법론에서도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게 그의 견해였다.

 金龍瑞 이화여대 교수는 다른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연세대 정외과 3학년이었던 그는 4 · 19 혁명의 배경 중 하나로 해방이후 세대들이 받은 英 · 美식 교육과 사회현실간의 격차를 지적하면서 오늘날 학생들에게 4 · 19당시 학생들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4 · 19주동자들이 지난 30년간의 인생경험을 토대로 구체제 · 구인물 · 구사고를 청산하는데 앞장섬으로서 미완성인 4 · 19혁명을 완성시킬 것을 강도 높게 제안했다.

 柳世熙교수(한양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는 한국현대사의 회고와 반성의 자리이기도 했다. 柳교수는 이 토론회에서 제기된 과제를 ‘민주화의 실천, 부의 분배, 4 · 19세대에 의해 시발된 통일문제’로 요약하고 2000년대의 4 · 19논의는 지금 제기된 문제가 거름이 되어 진일보하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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