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가난 자식에게 물릴 수 없다”
  • 우정제 기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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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글세 폭등에 동반자살한 嚴承郁씨 일가… “없는자의 좌절 더 이상 없도록…”

전세금을 마련못해 비관하다 일가족 동반자살의 참극을 빚은 嚴承郁(40)씨 가족의 시신이 한줌의 재로 사라지던 지난 4월11일 오후. 비극의 현장인 서울 강동구 천호1동 엄씨의 지하 단칸 셋방에는 아직 주인의 체온이 가시지 않은 살림살이며 가재도구들만이 썰렁하니 빈 방을 지키고 있었다. 쪽문에 면한 부뚜막 위에는 샴푸와 로션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부엌 한귀퉁이의 선반위에는 아이들이 방금 벗어놓은 듯한 노란 고무장화와 운동화들이 눈길을 끌었다.

 빨랫줄에 그대로 널린 속옷가지들, 가스레인지 위에 한 냄비 가득 준비해놓은 음식들하며 어느 구석에도 처참한 죽음의 그림자는 드리워 있지 않았다. 다만 희끄무레하게 타다 만 연탄화덕, 죽은 금붕어떼가 떠오른 어항만이 엄씨 일가의 처절했던 마직막 순간들을 상기시킬 뿐.

 “덤블링을 하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신나게 놀고 돌아간 것이 바로 지난 일요일이었는데…. 홍철이가 꼭 살아날 것만 같아 두차례나 병원 영안실에 찾아가 홍철이의 시신을 부등켜안고 울부짖었습니다.” 4년전 엄씨네가 이 동네로 이사온 뒤 엄씨의 아들 洪喆군(10·천호국 3)에게 내자식 못지 않은 사랑을 쏟았다는 이웃주민 吳世信씨(40·택시기사)는 충격 때문에 일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궁핍한 처지에서도 ‘인자한 가장’, ‘금슬좋은 부부’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엄씨가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한달 전. 집주인 黃모씨로부터 집을 개축할테니 방을 비워달라는 통고를 받고부터였다. 현재 세들어 있는 단칸방의 보증금 50만원(월세9만원)을 뽑아봐야 서울 장안의 어느 구석자리로도 옮겨앉을 수 없음은 뻔했다. 공교롭게도 부동산중개소 직원이었던 엄씨 자신은 누구보다 셋방 시세에 밝았고 그래서 좌절도 더욱 컸을것이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가난이 나에게 물려졌고 기적이 없는 한 자식들에게도 물려질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끝날 조짐은 없다. 폭등하는 부동산가격에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매년 오르는 집세도 충당할 수 없는 서민의 비애를 자식들에게는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이런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불평 한마디 해본 적 없이 늘 쾌활한 아내-당신은 정녕 천사이리라.…”(엄씨가 남긴 유서중에서)

 2남1녀의 맏이로서 부모를 모시지 못함을 늘 뼈아프게 생각했던 그는 동기간에도 일체 쪼들리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기 며칠전 친근하게 지내던 이웃을 찾아 무언가 아쉬운 소리를 할 듯 망설이다가 끝내 운을 떼지 못한 채 과일만 건네고 돌아갈 만큼 그는 남에게 신세지기를 끔찍이 싫어했다. 이승을 뜨는 마지막 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한 칸 셋방조차 허락지 않은 위정자들의 失政에 대해서도 그는 눈물겨운 간구로써 항변을 대신했다.

 “…정치하는 자들, 특히 경제담당자들이 탁상공론으로 실시하는 경제정책마다 빗나가고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 가난한 서민들의 목을 더 이상 조이지 않도록 그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시어 없는 자의 절망과 좌절이 더는 계속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는 또 동생(32)에게 남긴 또 한통의 유서에서 “이 살벌하고 각박한 세상에 떨어진 처자식의 앞날이 얼마나 고생스러울지를 염려해 동반하게 됐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같은 유서내용은 이번 참극에서 “엄씨 혼자 모든 일을 계획, 자살의사가 전혀 없었던 부인 김씨까지 억지로 끌고 갔을 것”이라는 현장 목격자들과 유족들의 추측을 거의 확실히 뒷받침해준다. “소식을 듣고 달려가 보니 이부자리가 어지러이 널린 가운데 연탄화덕이 놓여 있었고 한쪽에 맥주병과 알약, 아이들의 새 옷이 눈에 띄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가진자만의 세상 아닙니까”

 오세신씨의 이러한 증언에 대해 관할 강동경찰서 수사관계자는 “맥주병은 없었으나 현장에서 수면제류의 신경안정제를 물에 타마신 흔적이 발견된 것은 사실”이라고 일부 시인했다. 또한 엄씨부부가 다니던 인근 ㅁ교회 여선교회 신도들도 엄씨부인 金順花(38)씨가 평소 매우 밝은 성품에 신앙심이 돈독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결국 이번 사건은 전세값 폭등이 몰고온 ‘사회적 자살’로 당국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편 어려운 형편에서도 꿋꿋한 의지로 버텨온 아내와 티없는 어린 자식들마저 세상을 비관한 가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됐다는 점에서 그 비극성을 더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는 것이 바보스럽게 생각되겠지요. 하지만 집값 · 방값 마련에 생사가 걸린 우리 집없는 서민들에겐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 말이야 좋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가진자만의 세상아닙니까. 옛 속담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는데 우리처럼 집없는 서민들은…”

 전세값 폭등으로 비관자살이 잇따르고 있는 최근의 세태를 두고 현장에 모여든 이웃주민들은 한결같이 당국의 무책임과 대책부재를 원망했다.

 엄씨의 유언대로 일가는 엄씨부부의 신혼여행지였던 부산 태종대 바닷가 진달래 핀 언덕에 한줌 뼛가루로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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