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겪는 노동자영화 오히려 ‘절찬상영중’
  • 김당 기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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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 제작 <파업전야> 상영 첫날부터 공권력 개입 문화 ·예술인들 “사실상의 노동운동 탄압” 비난

아래 상자기사는 노동현장을 16㎜필름에 담은 70분짜리 컬러영화 <파업전야>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이지만 사실 우리나라 어느 사업장에서건 흔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속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잔업, 특근, 철야, 위장취업, 블랙리스트, 구사대, 백골단, 유령노조, 위장폐업, 출근투쟁, 점거농성, 파업 그리고 ‘제임스 리’까지도 이미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친숙한 현실 용어들이다.

 이 영화는 제도권 영화의 상업성을 비판하고 노동자 · 민중을 소재로 사회변혁운동을 추구해온 젊은 영화인들의 모임인 ‘장산곶매’회원들이 자신들의 실천적 영화운동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서 모금한 돈 2천만원을 들여 만든 영화이다. 지난해 4월부터 경인지역 노동현장을 공동취재한 대본을 토대로, 12월부터 실제로 파업중이던 인천의 한독금속현장을 무대로 해서 3달 동안의 촬영끝에, 완성되어 올해 3월18일에 공개시사회를 가졌다.

 시사회에 참석한 문화 · 예술인들에게서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4월16일부터 전국 11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상영되었다. 그러나 상영 첫날부터 광주를 시작으로 수원, 인천 등지에서 경찰이 상영장소에 진입, 필름과 영사기를 압수하고 영화관계자와 관객까지 연행하는 등 공권력에 의한 수난을 당했다.

 당국이 내세우고 있는 단속근거는 이 영화가 공윤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으며 연극만을 위해 만들어진 소극장에서 돈을 받고 상영되고 있어 현행 영화법과 공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장산곶매가 제작한, 광주항쟁의 정당성과 미국의 역할을 폭로한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가 비슷한 ‘탄압’을 받은 바 있다. <오! 꿈의 나라>에 대한 압수 · 수색영장은 당시 법원에서 기각되었으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안 받았다고 하여 문공부로부터 고발조치되어 1심에서 1백만원 벌금형을 받고 현재 항소심에서 계류중이다. 한편 최근에 영화감독 홍기선씨와 예술극장 한마당 전대표인 유인택씨는 박용일변호사를 통해 항소심을 담당한 재판부(서울형사지법 항소4부)에 공윤의 사전심의를 규정한 영화법 제12조 1항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해놓고 있다. 또 장산곶매쪽은 공윤 사전심의의 위헌성말고도 현행 영화법의 부당한 적용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장산곶매 대표이자 ‘<파업전야> 탄압 분쇄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 위원장인 이용배씨는 “현행 영화법은 35㎜ 상업영화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16㎜ 소형영화는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현행 영화법에 따르면 ‘필름’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16㎜또는 35㎜에 대한 구별은 없고 현재 장산곶매쪽은 관람료 대신에 창작후원기금조로 자료집을 2천원씩에 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 · 예술 및 노동계 인사들은 “<파업전야>에 대한 탄압은 겉으로만 영화예술을 탄압하는 형식을 빈, 사실상의 민중 및 노동운동 탄압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주장은 특히 검찰이 ‘예비된 탄압’을 했다는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에서는 이 영화가 계급의식을 고취하고 파업을 선동한다는 판단 아래 상영 전부터 ‘경고’를 한 바 있다. <한겨레신문> 4월5일자에 따르면 “서울지검 공안2부는 4월6일부터 상영예정인 <파업전야>의 대본을 압수해 검토한 결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키는 어려우나 그 내용이 노동쟁의를 부추길 소지가 짙다고 판단, 영화가 상영될 경우에 장산곶매와 상영극장을 각각 영화법과 공연법 위반으로 관할구청과 문화부가 고발하는 형식으로 형사 처벌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탄압을 예비했고, 관할구청과 문화부에 고발을 부추기거나 압력을 행사했고, 무리하게도 국가보안법 적용을 기도했으며 한편으로는 영화는 보지도 않고 대본만으로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종합예술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감행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서울의 경우 보도 다음날인 4월6일에 종로구청 공보실의 신속한 고발을 받은 동대문 경찰서는 4월7일에 영화를 상영중인 예술극장 한마당에서 필름, 영사기, 자료집 등을 압수하고 극장대표 김명곤씨를 연행하는 한편 이용배씨를 수배했다. (현재 김명곤씨는 공연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아리랑’은 주소불명-이사가면서 이전 신고를 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을 이유로 4월6일 동대문구청에 의해 등록이 취소되었다.)

 

“감동적 영화”격찬 …관객 몰려

 이런 와중에서 4월10일 <한국일보>는 “검찰은 ‘<파업전야>의 내용이 파업을 선동하고 있어 노동쟁의조정법상 제3자개입에 해당된다’며 영화상영의 주체인 장산곶매는 물론 극장주까지도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라고 보도해 다시 한번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재야 법조인들은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사업장에서 파업을 선동했다면 모르지만 영화 내용이 막연히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파업을 선동했다고 판단하여 제3자개입금지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로 말한다. 현재 그 보도는 내용의 진위여부가 불분명하나 민예총 등 문화 · 예술단체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는 쪽에서야 물불을 가리겠느냐”는 반응이다. 한편 검찰에서도 위 보도내용들을 부인하고 있다. 서울지검 공안2부의 한 검사에 따르면 국가보안법과 노동쟁의조정법 위반부분은 전혀 사실무근한 것이며 애당초 수사를 맡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파업전야>를 ‘건드릴’의사가 전혀 없다는 검찰의 의사표명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그 영화가 공권력에 의한 단속을 받았고 재상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단속받는 쪽의 주장에 따르면 노동운동 탄압을 기도하는 보수대연합세력이다)에 의해 유·무형의 상영금지 압력을 받고 있다는 데에 있다. 4월10일 민예총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파업전야>를 볼 권리를 가진 모든 국민에게 평가받고자 합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공투위는 당국의 금지조처에 맞서 광주(4월1일부터 전남대), 서울(4월 12일부터 연세대) 등지에서 재상영을 강행했다. 필름을 지켜줄 ‘보위력’을 갖춘 대학 강당에서만 상영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당국의 탄압조치가 널리 선전을 해주는 효과를 보인 덕택인지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밝힌 장산곶매쪽에 따르면 당국의 방해 없이 전국에서 순조롭게 상영이 진행된다면 1차 상영으로 10만 관객동원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관객이 몰리는 근본 이유는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 “영화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전노협에서 <파업전야>를 ‘전노협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로 뽑은 것도 상징적이다. ‘한겨레그림판’에 <파업전야 Ⅱ>를 지상 ‘상영’한 박재동씨는 그 영화를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자가 노조를 만드는 그 ‘전형적’인 스토리를 감동적인 한편의 영화로 완성했다는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땅의 노동 현실은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은 예술을 가리고 막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영화 줄거리

 88년 겨울. 멍키 스패너 같은 작업공구를 만드는 인천 동성금속 사업장. 그곳에서 날마다 시뻘겋게 달군 쇠를 두들겨 불리는 일을 되풀이하는 단조반 사람들에게 새 얼굴 완익이 소개된다. 신참을 맞은 반원들은 마침 ‘철야’가 없는 날이라 술자리를 가진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른 사업장에서 해고된 경험이 있는 원기, 매사에 열성적인 석구, 기계에 손가락이 잘린 춘섭, 해병대 출신인 재필, 단조반의 최고참 동업, 이른바 ‘학출’(대학출신) 노동자인 막내 완익. 주인공 한수, 그리고 한수의 낙천적인 친구 재만 등이다.

 한수의 꿈은 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봉제공장 노동자 미자와 결혼하는 것. 그러나 현실은 늘 무겁고 답답했다. 단조반원들이 오늘도 철야를 마치고 공장을 나서는 새벽. “불량품 0% 기필코 달성하자”라고 적힌 플래카드에서 보듯 사용주에게 노동자는 고장 잘나는 기계의 부속품일뿐이다. 김전무는 노조결성 움직임에 대한 대책 마련에 열중하고 주임은 반장승진을 미끼로 한수를 회사편 노동자로 포섭한다. 그러나 원기와 석구는 노조결성을 결의하고 조심스럽게 동료들을 일깨워 나간다. 그 첫 시도는 잔업거부. 반원들은 족구놀이를 하던 중 “월급날인데 잔업은 제끼고 술내기나 하자”는 원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전무, 부장, 주임 등 관리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장문을 나서는 반원들은 난생 처음 쾌감을 느끼고, 이어 절단반원들과 함께 특근을 거부하면서 소중한 경험, 곧 노동자는 단결했을 때 큰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긴장 속에서 노조 설립준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주임으로부터 다그침을 당한 한수는 완익을 고자질한다. 대학 출신임이 발각된 ‘위장취업자’ 완익은 해고, 구속된다. 회사쪽은 노조파괴 전문가 제임스 리를 데려오느니 어쩌느니 야단법석을 떨면서 동성봉사단이란 구사대를 조직하지만 노동자들은 마침내 노조 창립대회를 치른다. 그러자 회사쪽은 재빨리 ‘유령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결성 보고대회’장을 습격하고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원기, 석구 등 핵심 인물들을 해고한다. 해고노동자들의 출근투쟁과 함께 ‘민주노조 지키기’ 싸움이 시작된다. 사태를 방관하는 한수는 미자를 찾아가지만 미자 또한 노조를 깨려고 ‘위장폐업’한 회사에 맞서 농성투쟁 중이었다. 자책감에 사로잡힌 한수는 원기에게 자신의 절망감을 털어놓고 그날 밤 원기는 테러를 당해 피투성이가 된다. 그러자 이를 오해한 재필은 한수를 두들겨 패고 친구 재만마저 욕설을 퍼붓는다. 흥분한 해고노동자들은 점거농성으로 회사에 타격을 입히나 곧 정체가 불명한 수십명의 사람들이 흉기를 들고 동성금속으로 몰려온다. 처절한 혈투가 벌어지나 수가 딸린 노동자들은 짓밟히고 깨진 채 끌려나가고 관리자들은 입가에 여유있는 웃음을 흘린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면서 비로소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분노의 얼굴로 일그러진 한수는 마침내 공장의 전원스위치를 내린다. 모든 기계가 멈춘 공장에는 폭풍전야의 고요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윽고 한수가 노동의 도구이자 노동의 산물인 스패너를 ‘노동의 무기’로 삼고 높이 치켜들자 이를 신호로 약속이라도 한 듯 노동자들은 하나둘씩 멍키 스패너를 움켜쥐고 파도처럼 밀려나간다. (“민주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로 시작하는, 안치환씨가 만든 주제가 ‘철의 노동자’가 뒤따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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