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외교 앞지른 북방선교
  • 김승웅 편집주간대리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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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文鮮明회장 고르비와 ‘30분간’ 요담 … “접근방법 · 내용 정부보다 한수 위” 評

文鮮明-고르비 면담이 충격으로 전해진다. 요담 시점을 따질 때 더욱 그러하다. 고르바초프 면담 하나를 놓고 정쟁차원으로까지 치달은 金泳三-朴哲彦씨간의 각축전 그리고 끝내는 박철언씨의 정무장관직사퇴로 결판난 지난 보름간의 개탄할만한 작태를 놓고 따질 때, 통일교주와 소련 대통령간의 ‘30분 면담’은 현 시점에서 화끈한 외교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고르바초프 先占을 과거시험에 비유해본다면 장원은 통일교쪽이 차지한 셈이다. 그 유명한 북방외교의 密使도, ‘정치생명’까지 걸었다는 民自黨최고위원마저도 하루아침에 낙방거사로 만들어버린 뉴스가 아닐 수 없다.

 文-고르비 면담의 내용도 굵직굵직한 것들이다. 이 면담에서 고르바초프는 韓蘇수교가 멀지 않은 장래에 이뤄질 것임을 다짐했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소련이 남북한 사이에서 중재역을 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소련의 최고지도자가 한소수교 그리고 한반도 안보에 관해 이토록 분명하게 견해를 밝힌 전례가 없다. 앞서 김영삼최고위원이 모스크바로부터 들고 온 보따리내용과 비교해볼 때 그 차이가 현격한 것이다.

 文-고르비 면담의 성과에 관해서는 외교주무부서인 외무부측도 일단은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종교단체면 어떻고 민간단체면 어떤가. 한소수교의 시기나 성숙도를 따질 때 이번 文-고르비 면담은 ‘힘의 축적’을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이 당국자는 특히 문선명회장을 수행한 외교관 출신의 朴槿 <세계일보>논설위원이 페트로프스키 소련외무성차관을 만나 “한국의 유엔 가입을 소련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받아낸 점도 중시하며 “朴위원이 귀국하는 대로 구체적인 대담내용을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깊은 관심을 표했다.

 文-고르비 면담은 그것이 성사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아도 큰 획을 그은 외교적 사건이라고 할 만 하다.

 면담을 성사시킨 계기가 된 세계언론인회의(WMC)는 통일교재단이 주관해온 범세계적인 연례 행사다. 이번 회의는 11회째가 되는데 지난해 워싱턴에서 열린 제10회 회의 때 이미 차기 회의장소를 모스크바로 확정하고, 1년 남짓 회의에 따른 對蘇로비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간 과장한다면 이번 회의는 통일교주 문선명목사와 소련의 새대통령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염두에 두고 거행된 회의나 진배없다는 것이 주최측 한 관계자의 표현이다.

 

대륙횡단도로 건설계획이 고르비 자극

 회의는 지난 10·11일 이틀 동안 열렸다.

문회장은 회의 개막 사흘전에 모스크바에 도착했는데 이미 고르바초프와의 면담을 사전에 보장받은 처지였다. 그가 회의참석 대표단 37명을 이끌고 크렘린宮을 예방, 고르비를 단체로 만난 것도 다음 차례인 고르비와 문목사의 단독 면담을 도출해내기 위한 리허설에 불과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련, 구체적으로는 고르바초프가 문회장한테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면담에서도 여러군데 밝혀졌듯이 고르비의 일차적 관심사항은 통일교재단이 지닌 엄청난 재력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통일교재단측이 세계언론인대회를 주최하면서 초기에 표방한 대륙횡단 고속도로 건설계획이 고르비의 관심을 자극, 한국측 민간자본의 소련진출을 유도해내도록 가능했다는 것이 통일교측 관계자의 말이다. 통일교측이 구상하는 대륙횡단 고속도로 건설계획은 일본 西南端에서 해저터널을 뚫어 부산에 닿고, 거기서 서울-平壤을 거쳐 시베리아를 관통, 모스크바에 이르는 대륙횡단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꿈같은’ 계획이다.

 이번 文-고르비 면담을 성사시킨 배후의 주역은 알베르트 불라소프 소련 <노보스티통신>社 회장으로 밝혀져 있다. 문선명 <세계일보>회장은 금년초 <노보스티통신> 주필 등 5명의 소련 현역언론인을 서울로 초청, 극진히 접대한 바 있으며 이번 모스크바대회에 관한 문회장측의 기대와 요망사항은 그들을 통해 소련측에 전달됐다는 것이 유력한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공식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통일교의 선교사들이 이미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도시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공정부의 북방외교가 가동된 것이 2년전부터라면, 통일교의 북방외교는 시기적으로나 그 치밀성에서 정부를 앞질렀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하다. 30분간에 걸친 이번 고르비 면담의 성사가 이를 말해준다. 정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북방외교가 아닌, 북방선교라는 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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