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는 핏줄” 동유럽개혁 새 국면
  • 부다페스트 · 김성진 통신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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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 유고총선서 민족주의색깔 뚜렷, 인접국에 파급될 듯

헝가리는 마침내 서구 민주주의에로의 대장정에 올랐다. 동유럽개혁의 기수 헝가리인들은 지난 47년 이후 처음 실시된 자유총선에서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헝가리민주포럼(MDF)에 42.49%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 43년간의 공산체제를 사실상 청산했다.

 지난달 25일과 이달 8일 두 차례의 선거 끝에 승리를 쟁취한 요제프 안탈 민주포럼 당수는 9일 저녁 당사에서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우리의 승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눈 감을 수 없다”고 선언했다. 헝가리민주포럼은 이제 1차투표 이후 공동보조를 취해온 독립소지주당(FKGP) 및 기독교민주인민당(KDNP)과 연정구성 협상에 들어감으로써 거의 60%의 지지를 받는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안탈 당수는 그러나 “새 국회를 구성하고 신임총리를 선출할 때까지 약 1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혀 현 미클로스 네메트 총리가 이끄는 내각이 잠정기간 과도정부 역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과 달리 2위에 그친 자유민주동맹(SZDSZ)의 야노시 키시 당수는 청년민주동맹(FIDESZ) 및 헝가리사회당(MSZP · 舊공산당)과 함께 건전한 야당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의 즉각 탈퇴등 정강정책을 꾸준히 국정에 반영해나가겠다고 밝혔다.

 

在外헝가리인 문제가 선거쟁점으로 부상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선거법’으로 불리는 헝가리 선거제도는 유권자의 한 표도 버리지 않고 선거결과에 반영, ‘주권재민’의 원칙에 가장 충실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헝가리 선거제도는 지역적으로 소 · 중 · 대선거구가 공존하고 직접선거와 비례대표제가 적절히 배합돼 있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선거제도의 규범이 농축돼 있으며 독일 · 오스트리아 · 프랑스 3국의 선거를 집중 연구한 끝에 마련된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선거법에 따르면 헝가리 전역을 19개 州로 구분하고 수도 부다페스트를 합쳐 20개 지역으로 나누었다. 이들 각 지역내에는 최소 4개(노그라드州)에서 최대 32개(부다페스트)에 이르는, 전국적으로는 모두 1백76개의 소선거구가 있다. 일단 기표소에 들어선 유권자는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처음엔 자신이 소속된 소선거구를 대표하는 인물을, 그 다음엔 자신의 의사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한다. 유권자의 첫 선택에 따라 1백76명의 선량이 선출된다. 단 투표수의 50%이상을 얻어야 당선이 확정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상위의 세 후보가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지난달 25일의 1차 투표에서는 네메트 총리 등 5명만이 50% 이상을 얻는데 그쳐 당선자의 거의 대부분이 2차 투표에서 결정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유권자의 두 번째 선택은 각 州를 대표하는 의원을 선출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개인이 아니라 정당을 대상으로 투표를 하여 각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된다.

 유권자들의 두차례에 걸친 선택에 따라 남은 死票는 모두 합산돼 4%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에 한해 90석의 전국구 후보가 선출된다. 이같은 3단계 절차를 거쳐 모두 3백86명의 의원이 선출된 것이다.

 1차 선거후 연정 가능성을 놓고 저울질이 계속되자 그 무게중심은 자연히 3위에 오른 소지주당에 쏠리게 됐다. 지난 45년 11월 총선에서 57%의 지지를 얻어 제1당이 되기도 했던 소지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모든 토지는 47년 이전의 원소유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정강 정책을 발표해 선거의 핫 이슈가 되기도 했다. 소지주당이 헝가리민주포럼 지지로 돌아선 것은 2차선거에서 민주포럼세를 극적으로 상승시킨 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2차선거는 중도우파에 헝가리민주포럼 · 독립소지주당 · 기독교민주당이, 우파에 자유민주동맹과 청년민주동맹이 포진했으며 좌파에 헝가리사회당이 자리잡은 사실상의 3당체제가 정립됐다.

 헝가리민주포럼이 자유민주동맹을 누른 근저에는 오늘날 동유럽 전체가 안고 있는 민족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도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지난달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에서는 루마니아인과 소수민족 헝가리인이 충돌,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일어났는데 이를 계기로 在外헝가리인 문제는 급기야 선거쟁점으로 부상했다. 선거 기간중 거의 모든 정당이 비슷한 내용의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루마니아사태는 헝가리인들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한 것이다. 이번 사태가 헝가리인들의 민족감정을 자극시켰으며 이것이 선거에서 헝가리민주포럼에 대한 지지로 연결된 셈이다.

 안탈 총재는 이와 관련, “루마니아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장래 양국 관계는 루마니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밝혀 이미 새 정부가 그 문제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사회주의적 一元체제가 무너지면서 그동안 水面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고질적 문제가 서서히 부상해 앞으로 동유럽정치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얄타체제가 뿌려놓은 민족갈등의 씨앗

 이미 내연하고 있는 소련내 발트3국, 몰다비아 공화국의 루마니아인문제, 독일 · 폴란드 간의 국경문제, 국호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그리고 한 국가로서의 존재 가능성 여부마저 서서히 제기되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분규는 그 갈등 수준이 거의 비등점에 가까워오고 있다.

 헝가리 2차선거가 있던 지난 8일 실시된 유고슬라비아내 슬로베니아공화국 선거는 이같은 갈등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역시 40여년만에 처음 실시된 슬로베니아의 선거에서는 연방으로부터의 독립문제가 최대 이슈로 등장했으며 독립을 옹호하는 사민 · 기민 · 농업당 등 3당의 슬로베니아민주야당연합(DEMOS)이 43%의 지지를 획득,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유고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3개 院(chamber)으로 구성된 슬로베니아 의회의 下元을 구성하는 이번 선거에서 집권 공산당은 20%, 자유당은 16.7%, 사회당은 4%를 각각 얻었다. 이에 따라 자유당이 중요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총선과 동시에 실시된 유고의 대통령선거에서는 지난 86년 이후 개혁공산당을 이끌어온 밀란 쿠찬 후보가 야당연합의 요제 푸츠니크 후보(26.2%)보다 4.4% 앞섰으나 절대지지를 확보하지 못해 오는 22일의 결선투표에서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쿠찬후보는 복수정당 허용 등 민주화조치에 공감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푸츠니크 후보는 티토 전 대통령 치하에서 9년간 투옥생활을 한 뒤 서독에서 망명생활을 한 반체제인사이다.

 동독에 이어 열린 헝가리와 슬로베니아공화국 선거는 5~6월에 잇따라 실시될 체코슬로바키아 · 루마니아 · 불가리아 총선의 선행지수가 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차대전 이후 얄타체제가 뿌려놓은 민족갈등의 씨앗이 또다시 동유럽과 발칸반도에서 회오리를 불러올 수도 있으며 총선은 거기서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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