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절부절 物價 ‘인플레주의보’
  • 편집국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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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만에 ‘두자리수 상승률’위협… 통화팽창 · 부동산투기 억제 등 비상대책이 시급하다

9년만에 두자리수 인플레이션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83년부터 87년까지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가 88년, 89년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올해 들어서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3월말 현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2%를 기록, 연말 두자리수 물가상승률로 가시화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만든다. 이런 지수물가상승률도 우려할 수준이지만 소비생활을 하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각물가가 위험수위라는 이야기는 이미 식상할 정도가 됐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물가불안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물가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과제로 꼽는데서도 알 수 있다.

 경제기획원은 물가가 급등한 것은 최근 몇 년간의 높은 임금상승률과 각종 농수산물 수매가의 고율인상 등으로 원가상승요인이 생긴데다, 이렇게 늘어난 소득이 다시 소비수요증가를 가져와 물가에 압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다 부동산가격이 뛰고 이에 따라 전 · 월세 등 임대료가 크게 올라 물가불안심리를 자극시켰다는 것이다. 정부측의 말대로 부동산투기를 물가불안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데에는 이견을 표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지난해 건설부의 공식통계로도 땅값은 32%나 올랐다. 올 들어 2월말 집값과 전세값 지수도 지난해 말에 비해 각각 5.9%, 14.8%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지수는 20.5%나 상승, 폭등세를 보였다. 서울대 李之舜교수(경제학)는 “돈의 흐름이 왜곡, 생산부문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부동산 투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따라갈 수 있는 투자방법이 지금 어디 있는가. 결국 불황 속의 물가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부동산에서 나오는 과도한 수익률을 끌어내려야 한다. 이는 물가를 잡는 길이고 이렇게 될 때 성장도 따라온다.”

 

“돈 풀려도 너무 풀렸다”

  임금은 지난 88년, 89년 두해 동안 각각 19.3%, 22.4%로 크게 올랐다. 그동안 정부나 기업들은 과도한 임금인상이 물가불안을 부채질했다고 근로자측에 물가상승의 책임을 전가해온 인상이 짙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물가가 먼저 상승해 임금 인상요구를 분출케 했는지 임금이 급격히 오르니까 물가불안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全經聯의 한 관계자는 “과거 2년 동안의 급격한 임금인상은 기업들의 흡수능력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그것이 물가불안으로 나타났지만 기업들의 국제경쟁력도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국 그동안 돈이 너무 많이 풀린 데서 기인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은행의 물가변동구조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통화상승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입증되고 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릴 경우 이는 일정한 시차를 두고 물가상승으로 파급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정부의 가격통제로 이 시차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약간 길어 12~15개월 후에 실제 물가상승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되어 있다. 한국은행 조사부 劉炳夏조사역은 “석유파동 등 급격한 비용상승이 있더라도 그 전에 돈이 시중에 많이 풀려 있지 않을 경우에는 과도한 물가상승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검증되었다. 이때의 통화증가율은 25% 수준을 넘나들었다. 최근의 물가불안도 87년말 대통령선거, 88년 4월 국회의원선거등 선거용의 돈이 많이 풀린데다가 그동안의 경기부양을 위한 간헐적 통화공급에서 기인한바 크다”고 말했다. 조사부 金大漢차장도 “87년 이후 시중에 돈이 과다하게 공급되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올 들어선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려나가지는 않았지만 이미 인플레 기대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져 있다. 물가를 잡으려면 엄격한 통화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동산투기를 잡아야 한다. 기업들이 어렵고 수출이 안되는 것은 통화공급량 부족보다는 기술경쟁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좀 더 구조적인 요인에서 찾아야 옳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시장구조가 독과점체제라는 것도 물가불안을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독과점 구조에선 기업의 상품값 인상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디자인이나 포장을 바꿔 신제품으로 위장, 얼마든지 상품가격을 인상할 수 있고 우리 기업은 이 방법을 애용해왔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의 인플레 추이를 보면 통화증가를 포함한 수요요인과 비용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서로 누가 먼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얽히고 설켜 진행돼왔던 것이다. 그러나 실타래가 엉키는 데도 근원적인 요인은 있게 마련이다.

 통화증가율이 시간적 지연(time lag)을 거쳐 물가상승을 부추긴다는 과거 경험과 실증적 분석들을 고려한다면 통화증발에 근본원인이 있다는 논리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설령 통화팽창이 물가상승의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요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렇게 볼 때 물가불안의 큰 책임은 명백히 정부에 있다. 돈을 찍을 수 있는 권한은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이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 한국은행의 존립목적은 통화가치의 안정인데 이를 바꿔말하면 물가안정을 의미한다. 결국 방만한 통화관리를 한 한국은행에 인플레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행은 ‘재무부의 남대문출장소’로 격하될 정도로 힘이 없다. 보수적으로 운용되어야 할 통화정책임에도 재정정책을 맡는 정부에서 관장해, 반드시 풀어야 할 이유가 없는 돈까지 풀려나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안정 없인 성장기반 다질 수 없다

 물가를 잡기 위한 대책으로 보통 적정한 통화공급, 부동산투기 근절, 과도한 임금상승 억제등을 들지만 인플레대기심리의 불식, 긴축재정, 금융실명제 등 개혁조치의 실시를 강조하는 사람도 있다. 중앙대 金大植교수(경제학)는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부동산투기 근절이 시급하다. 정부는 긴축재정을 펴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경제연구소 催長鳳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임시방편적인 경제정책 운용에 문제가 있다. 보다 긴 시각에서 돈의 흐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금융시장 정상화, 부동산투기 근절이 요청된다. 이를 위해선 토지공개념이 제대로 효험을 발휘하도록 행정력을 동원해야하며 금융실명제도 시행되어야 한다”고 지적,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우리는 두자리대의 인플레를 경험했다. 개발인플레 시기라 불리는 이때는 25%를 넘을 정도의 과도한 통화증가율과 두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혹심한 비용상승요인이 가세, 물가는 정말 다락같이 올랐다. 82년부터는 물가상승세가 주춤해지기 시작했다.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국제수지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물가가 안정되어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 재정금융면에서 긴축정책이 단행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입원자재가격 하락과, 싼 임금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일해준 근로자들도 물가안정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87년부터 점화된 물가불안은 최근들어 더욱 현저해지고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의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4월13일 부동산투기 억제대책을 발표했고 20일에는 물가안정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부동산투기 근절책으로 정부는 부동산 등기의무화제도 도입, 증여에 대한 공시지가 적용, 다가구주택 건설 촉진을 위한 세제 및 금융지원 등의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물가안정대책으로 전기요금 등의 공공요금을 인하하고 건축자재등 수급불균형을 이루는 품목에 대해 조절권을 발동, 물가상승 압력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이 단기적 처방에 의해 복합적으로 꼬여 들어가고 있는 물가상승 행진이 주춤거리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경제기획원은 부동산가격이 여전히 들썩거리고, 돈이 더 풀리고 임금이 올라간다면 연간 물가상승률은 10% 이상의 고율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4.4 경제활성화대책’으로 1조5천억원 가량의 돈이 풀려나갈 예정이고 지하철 · 철도요금 등 공공요금의 인상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 지난해 물가당국을 기쁘게 한 곡물 · 채소류의 풍작은 ‘해걸이 현상’으로서 올해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이렇게 통화량 · 공공요금 · 농작물작황 등 주요 변수들이 물가안정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경제 기획원 趙彙甲물가총괄과장은 “이같은 불행한 사태를 만들지 않기 위해 비용면에서의 상승요인을 완화시키고 돈 관리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민간부문에서도 소비를 억제하고 부동산투기를 잡는 데 정부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고통을 분담한다는 국민적 합의 없이는 물가안정은 이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물가당국자는 정부가 전보다 더 확고하게 부동산과 물가를 잡으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물론 정부 부처내에서도 물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총론부문에선 반대가 없다. 문제는 각론부문이다. 부처간 이해관계에서 불합리하면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또 자신들의 씀씀이(재정지출)는 줄이려 하지 않으면서 민간부문에만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예산을 10%가량 줄이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으나 각 부처에선 지출규모를 축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지난 83년에 예산을 전년수준으로 동결하여 ‘제로베이스’로 예산운용을 한 일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역시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었지만 행정경비 축소, 불요불급한 정부투자억제 등을 집행한 결과 물가안정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물가수준을 일컬어 ‘경제의 체온계’라고 부른다. 경제가 잘되고 못되고는 물가수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물가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경제정책은 어떤 다른 한편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선택이 요구되지만 물가를 잡고 안 잡고는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물가안정 없이는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다질 수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인플레 퇴치의 길은 너무나 험하고 멀다. 물가를 잡기 위해선 저성장이 상당 정도 계속되고 이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군이 양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의 첩첩산중을 벗어나야 물가안정이라는 단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견해는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교훈이 된다. “알콜중독 환자와 인플레 사이에는 매우 유사한 관계가 있다. 알콜중독을 치유하는 길은 금주밖에 없다. 그러나 이 치료법을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금주를 하면, 나쁜 영향은 먼저 오지만 좋은 영향은 나중에야 오기 때문이다. 금주를 시작한 알콜중독환자는 또 한잔 하고 싶은, 거의 저항하기도 힘든 유혹에 종종 직면한다. 이를 이겨내더라도 행복한 상태가 되기 전에 금단현상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먼저 시달려야 한다. 인플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화공급량 증가율을 이전보다 낮게 함에 따라 발생하는 최초의 부작용은 몹시 괴로운 것이다. 긴축통화로 인해 기대되는 낮은 인플레율, 고도성장을 실현시킬 잠재력의 증대라는 좋은 영향들은 그로부터 1년에서 2년이 지난 뒤에야 빼꼼히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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