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경제 救命’ 대모험극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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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 연 5백%. 이는 얼마전 下野한 브라질의 사르네이 前대통령이 임기 5년간 이룩한 ‘경제치적’이다. 즉, 물가가 5년동안 매년 평균 6배씩 뛰었다는 말이다. 특히 작년의 경우 브라질 국민들은 한해 동안 1천6백%에 가까운 초고속 인플레를 감수해야만 했다. 물건값이 눈만 뜨면 오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통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효한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다른 경제단체들은 이보다 훨씬 높은 천문학적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인플레율이 5백%를 넘어버리면 인플레율 자체가 이미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실감나는 정도이다.

 이같은 고질적인 인플레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해 지난 3월15일 취임한 페르난도 콜로르 신임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에 대대적인 경제개혁조치를 단행, 1천2백달러 이상의 은행 예금에 대한 인출을 1년반 동안 동결시켜버렸다. 이 조치로 인해 은행에 묶여버린 브라질 국민의 돈은 1천1백억달러로 브라질 전체 통화의 8할을 차지하는 규모이다. ‘인디아나 존스’라는 그의 별명에 어울릴 만큼 대담한 이번 조치로 브라질은 그야말로 일대 혼란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주식시장 마비는 물론이고, 현금이 없어 월급을 주지 못하게 된 기업에선 종업원들을 대거 해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총과 자동차를 앞세우고 자기 돈을 인출하려고 은행으로 쳐들어가는 ‘돌격파’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정부가 개인 자산을 압수하는 절도행위를 했다는 비난 속에서도, 이미 구매력을 거의 잃어버린 대다수 브라질 국민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한 여론조사는 밝히고 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는 물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국민들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제개혁조치법은 추후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같은 과격한 경제개혁조치가 가뜩이나 약체인 브라질 경제를 급속히 침체 국면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콜로르의 결단의 한계를 엿보게 한다.

 

물가폭등의 끊을 수 없는 고리

 브라질이 물가연동제를 도입한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그동안 브라질 국민들은 인플레에 익숙해져 있어 봉급생활자는 월급이 몇 달간만 오르지 않아도 불안해 하고, 상인들은 며칠 동안 같은 값에 물건을 팔게 되면 손해본다고 생각하게 돼버렸다. 임기 5년을 마치지 못하고 下野한 사르네이 전대통령도 86년, '생사를 건 인플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물가 전면동결, 화폐개혁 등을 골자로 한 신경제정책을 실시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애당초 정부의 야심찬 경제개혁 조치가 곧 무너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매점매석 · 사재기 · 뒷거래 등이 횡행, 극심한 상품부족 현상을 초래해 국민생활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정부는 하는 수 없이 동결을 완화했지만, 이와 함께 동결기간의 몫만큼 물가가 기습적으로 올라가는 악순환을 겪어야만 했다.

 브라질이 ‘물가 부재’라 할 만큼 심각한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에는 물가연동제뿐만 아니라 세계최대 채무국이란 굴레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만한 재정운영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영화에서 ‘인디아나존스’는 위기 때마다 행운이 뒤따랐다. 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운영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클로르 정부의 단호한 개혁의지도 중요하지만 십수년간 브라질 국민들이 빠져 있던 인플레의 마취상태로부터 깨어나기 위한 일대 정신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주장한다. 그것은 마약을 끊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고통의 대가를 치루지 않고 인플레를 잡는 방법은 없다는 점에서 브라질이 안고 있는 고민은 무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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