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경비행기 '개발 날갯짓'
  • 김창엽 기자 ()
  • 승인 1990.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항공 주축 '창공-91' 제작중… 91년말 완료, 북미 ·호주시장 노려

1903년 12월14일. 윌버와 올비 라이트 형제는 동전던지기로 승부를 가른다. 형 윌버가 이긴다.'飛機'(Flier)를 탈 수 있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이윽고 무게 2백74㎏, 날개길이 12.1m의 복엽기가 大製레일 위를 환주, 하늘로 치솟는다. 그러나 이 飛機는 몇 미터도 제대로 날지 못하고 곧 추락한다. 사흘후 형제는 다시 비행을 시도한다. 이번에는 동생 올비가 탈 차례. 飛機는 똑같은 과정을 거쳐 이륙, 비록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무려 36m를 나른다. 라이트 형제는 이후로도 비행실험을 계속, 최고시속 48㎞의 '플라이어'를 선보였다.

  항공전문가들은 라이트 형제를 '비행기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동력비행기를 발명해서가 아니다. 비행시 제작의 바탕에 과학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변덕이 심한 대기속에서 날개를 제어하고 추진력 좋은 프로펠러를 설계해낸 것도 라이트 형제였다. 날개가 場力(유체속을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서, 그 운동방향과 수직으로 작용하는 힘)을 얻는 과정을 밝혀낸 것도 그들이었다.

  라이트 형제 시절의 항공과학 수준을 지금의 항공과학기술과 비교할 수는 없다. 20세기초에는 상상조차 못한 각종 첨단과학이 현대의 항공산업에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과학기술의 발달이 그렇듯, 항공분야 역시 연구나 개발에 착수한다고 해서 금방 첨단기술의 총화인 전투기나 대형여객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수적으로 벽돌을 쌓아올리듯 차곡차곡 '기초습득'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항공기술연구소 연구원 姜完求씨는 '초보'를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또 한 가지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항공산업은 어느 분야보다 개발 · 제작 등에 따르는 자본상의 위험이 크다. 보잉기의 경우 개발에만도 최소한 수천억원 이상이 들고 있다. 이 때문에 경험도 기술도 뒤떨어지는 나라나 기업이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는 날엔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항공산업은 경비행기 제작부터 착수하는 것이 정석으로 되어 있다. 엄격한 구분은 없지만 보통 말하는 경비행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ULM(Ultra Light Machine)으로 초경량비행기이다. 한두명이 탈 수 있고 무게는 2백㎏ 남짓이며 레저 혹은 스포츠 용으로 쓰인다. 둘째는 5~2O여명이 탑승하는 경비행기로 사업용· 관광용 ·자가용 등 다목적으로 사용된다. 2백여마력의 엔진을 장착하며 사람이나 화물을 실을 때 기체를 포함한 총중량이 1천3백여㎏ 정도다. 셋째는 커뮤터(commuter)기인데 단거리 승객 수송용으로 쓰인다. 최고 40여명을 태울 수 있다.

 

항공대 학생들. 초경량비행기 제작

  그간 국내에서 제작된 ULM은 총10여대 가량. 대한항공 ·항공대 · 인하공전 등에서 연구진이나 학생들이 만든 아마추어 수준의 비행기. 지난 86년 'X-1'이란 ULM을 선보인바 있는 항공대 항공기제작연구회는 올 하반기쯤 가칭 'X-2'기를 완성한다는 목표아래 현재 70% 이상의 제작공정을 보이고 있다. 회장 崔元奎군(기계설비과 3)은 "설계에서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학생들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며 자신들의 실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초경량비행기 제작기술은 기술수준상 현대의 첨단항공기보다는 라이트형제시대의 비행기 제작기술에 훨씬 가깝다.

  X-2기는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낯선 모양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비행기는 조종석이 있는 앞쪽 날개가 뒷부분 날개보다 훨씬 작은 이른바 '카나드型'으로 X-1기의 제작보다 기술적으로 더 어렵다고 기계과의 忠根군은 설명한다.

  이들 초경량비행기를 제외하고 아직 국내기술진에 의해 만들어진 본격적인 경비행기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항공 · 한국화이바 · 삼선공업 등 3社가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5인승 경비행기 '창공-91' 개발이 구체적 윤곽을 띠어감에 따라 빠르면 내년말쯤 완전히 우리기술로 설계 · 제작된 비행기를 보게 될 것 같다.

  경비행기건 대형항공기건간에 개발에 필요한 기술은 크게 설계, 제작, 시험의 셋으로 구분된다. 이중 설계의 비중이 가장 커 설계가 끝나면 제작의 절반은 돼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항공기술연구소의 선임연구원 咸明來씨는 "비행기는 만들기전에 어떤 개념을 잡고 시작한다. 다시 말해 탑승인원, 중량, 순항거리, 속도, 엔진의 마력수 등이 먼저 결정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개념이 확정되면 설계에 들어가는데 설계의 포인트는 승용차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咸씨는 "안전성 등이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이점에 있어서는 보통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경비행기가 잘 팔리려면 무엇보다도 멋이 있어야 한다."

  '창공-91'은 2백마력급의 단발 프로펠러기로서 개발에는 50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 같다고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咸선임연구원은 "양산체제가 갖춰지면 대당 15만달러선에서 가격이 결정될 것 같다"며 "판매시장은 경비행기 수요가 많은 북미나 호주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의 경우 아직 경비행기 시장이 형성될 만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분간 내수는 미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창공-91'의 이륙거리는 4백여m인데, 우리의 국토형편상 전국 곳곳에 대소규모의 활주로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경우, 민간인이 조종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대단히 제한돼있어 '오너파이럿'시대가 오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