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주의가 한국 발전에너지"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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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족과 종족》펴낸 李光奎교수

 엄청난 속력으로 굴러가는 산업화의 바퀴는 마침내 가족의 모양과 그 기능까지 뒤흔들고 있다. 핵가족계는 갖가지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다. 남녀의 역할분담이 예전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으며 육아와 '노인핵가족' 현상도 심각하다.

  최근 《한국의 家族과 宗族》을 민음사에서 펴낸 서울대 李光奎교수(문화인류학)는 위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적 가족주의를 지탱해온 그 핵심, 즉 문화법칙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가족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꾸준히 연구 · 발표해온 이교수는 가족이야말로 우리문화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회단위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생활의 기본단위인 가족의 형성, 구성, 생활에서부터 堂內, 문중, 동족부락 그리고 종친회까지 동심원으로 확대되어나가는 우리 민족의 가족주의를 수직적 수평적으로 살피고 있다. "우리 민족은 집단, 특히 자기 조상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한다"고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을 지적하는 이교수는 "개인의 출세나 명예 등 삶의 목적이 조상(가문)의 명예를 위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법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서양이나 종교에 의해 사회가 존재하는 중동처럼, 우리 이조시대에는 가족주의가 사회를 이끄는 기본원리였다. 이조시대의 유교는 모든 개인을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편입시켰다. 가족의 평안이 사회, 나아가 국가의 평안이었던 것이다. 그 가족은 관혼상제의 실천주체였으며 그 家禮는 사람(백성)을 교화시키는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이교수가 이미 5년전에 탈고, 그간 틈틈이 보완해온 이 책은 가족과 종족의 뿌리와 구조,기능 등을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한 ·중 · 일 등 동양 3국의 가족제도를 비교, 우리 문화의 본질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속제도를 예로 들면, 중국은 아들들에게 균등상속하는 반면 일본은 장자에게만 상속하고 우리는 장자우대 불균등상속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門中도 마찬가지여서, 중국은 선거를 통해 뽑은 門長 한 사람이 문중을 관리하지만 일본은 태어나면서 그 지위를 갖는 宗添이 문중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를 통한 문장과 생득적 지위인 종손이서로 견제하는 구조를 가진다. 권력독점의 폐단을 막는 장치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가족사회에서의 부부의 위상도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차별화 된다. 우   리의 전통문화속에서 아내는 문중과 종손의 이중장치처럼 남편의 가장권을 견제 · 보완하는 '주부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상징적 형태가 '안방'이다. 이에 비해 중국이나   일본에서 아내의 역할은 미미하다.

  수도작을 근간으로 하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단위이며 소비의 단위였던 가족은 가족수의 많고 적음이 곧 官의 기준이었고, 전통사회에서 가족은 유교를 실천하는 교화의 場이었다. 가부장권은 따라서 강력한 권력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말엽, 특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핵가족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교수는 그러한 위기를 "부부의 주종관계가 수평   관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파악하면서 "오히려 우리 전통사회의 부부견제 구조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교수는 "삶의 질이 차츰 풍요해지고 정보화시대에 따른 在宅근무가 실현되면 우리의 가족주의는 더욱 더 큰 힘으로 부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을 조상과 가족에 의해 의미화하는 우리 민족의 가족주의문화가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의 발전 에너지는 다름아닌 상하간의 희생정신과 형제애로 대표되는   가족주의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교수는 앞으로 '경쟁 · 발전모델'을 가진 동족부락을 연  구하는 한편으로, 해외동포들의 삶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추출해내는 연구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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