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앞자리 '개혁'은 뒷자리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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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4 경제종합대책, '기업의욕 소생' 치중으로 물가불안 가속화 불씨 남겨

 3 ·17 개각 이후 줄곧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경제활성화 종합대책이 20여일만에 발표됨으로써 새 경제팀의 성장 위주 경제운영 방향과 실명제 등 경제개혁의 후퇴가 확인되었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기정사실화되었던 금융실명제의 무기한유보 방침 (《시사저널》 24호 참조)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천명했다는 점과 경기회복의 주체를 기업으로 인식, 이를 위한 각종 지원책이 마련되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4· 4 경기대책 발표에 대한 첫반응은 주가의 폭락으로 나타났다. 이날 증권시장은 경제활성화 대책가운데 투자자들이 기대해온 은행금리인하 조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데다 부동산투기 억제 대책의 강조가 약한 데 따른 투자자들의 실망감으로 종합 주가지수가 큰폭으로 떨어져 연 사흘째 하락세를 면치 못한 채 전일보다 7.69포인트 떨어진 828.98을 기록했다.


통화량 압력 더욱 커질 듯

  활성화 방안의 주요내용을 보면, 대기업에 대한 여신규제를 완화하고 특별설비자금과 중소기업 구조조정 기금, 무역금융 등 정책금융지원을 대폭 늘리는 한편 제2금융권의 실세금리를 1% 이상 인하토록 유도하기로 했다. 금융실명제는 자금흐름, 물가. 부동산가격, 기업의 투자활동 부진 등으로 보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여건이 성숙되지 못했다는 판단을 전제로 재산의 해외도피, 지하경제 확산,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유보하고 2단계 세계개편 때 상속·증여·양도소득세제를 강화해 과세 형평을 기한다고 밝혔다. 수출 및 투자촉진책으로 중소기업과 비계열 대기업의 무역금융 단가를 인상하고 특별설비자금 1조원과 중소기업 구조조정 자금 2천억원을 추가로 늘리기로했다. 대기업 여신규제 완화 조치로서, 제조업 설비투자 자금을 대기업의 여신관리대상에서 1년간 제외해주고 공장부지 신규취득시 소요자금의 1백~2백%에 해당하는 자구노력 의무를 1년간 유예하는 한편 올해 30대 재벌기업의 은행대출 비중을 89년말의 14.7%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정부의 경기활성화 대책에 대한 반응은 재계쪽에서의 환영과 야당 및 경제정의실천연합회 등의 강한 반발로 대별된다. 재계쪽에서는 금리인하가 포함되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금융실명제 유보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정부 발표에도 실명제 유보조항이 '기업의욕 소생' 시책에 포함되어 있다.

  새 경제팀의 성장우선 정책은 안정기조를 해칠 위험성이 높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미 경제안정의 지표인 물가는 갈수록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안정기조가 흔들리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월말 현재 3.2%를 기록, 1년 사이 12.8%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3월에만도 1.3%상승, 정부가 내세운 연간 억제 목표선인 5~7% 달성이 거의 불가능해진 실정이며 두자리수 물가악몽이 10여년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물가가 이토록 크게 상승한 데에는 시중통화가 적정수준 이상으로 늘어난 데다 정부 관리의 사각지대인 개인서비스요금이 제멋대로 뛰고 있고, 공공요금 인상 압력 등과 함께 전 ·월세파동 및 사무실 임대료 등도 물가상승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통화량의 경우, 정부는 올 통화 억제목표를 15~19%로 잡아놓고 있긴 하지만, 올해 1 · 4분기 총통화(평균잔액 기준)는 지난해 동기간에 비해 이미 23.5%증가했고, 4월 한달만도 22~23%, 2 · 4분기 전체로는20~22% 늘어날 것으로 한국은행은 내다보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로 특별설비자금 1조원, 첨단산업 기술향상 자금 1조원, 무역금융확대 2천억원, 한국은행 재할인 기간 연장에 따른 간접지원 1천5백억원 등 기업에 대해 약2조5천5백억원의 자금지원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에 통화량 압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무역 부문의 부진도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월간 무역수지 적자가 올들어 3달째 지속, 적자 누계가 18억달러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무역수지 (통관기준)는 3월에 6억5백만달러의 적자를 나타내,1월의 6억1천3백만달러, 2월의 6억8백만달러에 이어 6억달러이상의 적자를 3개월 연속 나타냄으로써 적자 누적 규모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임금인상과 함께 수출부진의 요인으로 꼽혔던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절하 추세로 돌아서면서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다소 회복되고 있긴 하지만 엔화에 대한 절상이 급속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뜻밖의 걸림돌로 등장했다. 대폭적인 수출드라이브 정책 도입으로 수출쪽이 다소 활기를 띠겠지만 소비재를 중심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수입으로 인해 이미 적자로 돌아선 경상수지가 20억달러 흑자 목표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경제난국 타개에 한계 노출

  李承溜부총리는 지난 4일 합동기자회견에서 "오늘날 우리 경제의 어려운 현실은 경제 및 경제외적 요인이 복합되어 나타난 것이고 기업윤리, 일부 국민들의 지나친 욕구분출 등에도 문제가 있겠으나 정부의 시행착오도 크다"라고 밝힘으로써 현재의 경제난국의 부분적인 책임을 전 越淳부총리팀에게로 돌리는 논리를 폈다. 그는 또 86~88년의 호황과 흑자 확대를 우리 경제의 실력에 의한 것으로 과신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기업들은 기술개발과 신제품개발을 소홀히 했고, 정부도 산업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는 시책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으며, 경제적 성과에 대한 과잉홍보로 형평과 복지에 대한 상승된 기대감과 욕구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일시에 분출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새 경제팀이 제시한 활성화 대책은 현실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여 · 수신 금리 인하가 일찌감치 포기된 점에서 볼 수 있듯 새경제팀 역시 현실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전 경제팀의 정책 실기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면서도 통화량 압박 등의 현실적 제약속에서 경제난국의 돌파구를 쉽게 찾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더욱이 이번의 활성화 방안은 민자당 출범 이후 줄곧 제기돼왔던 '정경유착'에 대한 우려를 더욱 심화시킬 소지를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지적해왔던 대로 기업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을 연기시킴에 따라, 2~3년뒤 치루어야 할 대가가 엄청날 것이라는 경고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귀기울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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