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우려
  •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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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제 실시 등을 통한 자금순환체계의 정상화가 경제를 위기에서 건지는 근본대책이 된다.

급박한 위기로 발전되는 경제난국에 처하여 이번에 발표된 종합 대책은 국운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인식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경제활성화 대책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라기보다는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시대적 사고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오히려 우려가 크다.

  이번 조치는 정부가 의도한 대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지난해말 이후 이미 경기부양, 증시활성화 등의 조치로 7조원의 돈이 풀렸다. 그러나 이 돈의 대부분은 투자보다는 투기로 흘렀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과 투기문제가 심각히 대두되면서 경제는 방향감각을 잃고 말았다. 이 상태에서 다급해진 정부는 이번 조치를 통해 대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강화하여 고도성장의 감상을 다시 찾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부양조치의 실패와 같이 막대한 자금이 수출 및 투자촉진보다는 다시 투기로 몰릴 경우 우리경제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침몰하는 난파선이 되기 쉽다. 여기서 자금의 투기화에 제동장치가 되는 실명제가 유보됨으로써 이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 경제에서 투자활성화가 안되는 것은 돈이 투기로 몰리는 자금흐름의 왜곡 때문이지 결코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따라서 실명제 실시, 토지공개념 강화, 세제 개혁을 전제로 하는 자금순환체계의 정상화가 투자를 살리고 경제를 위기에서 건지는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과거와 같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과성 위기가 아니라 경제와 사회를 그대로 주저앉힐 수 있는 구조적 위기라는데 정부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 열병처럼 번진 인플레이션과 투기에 의한 가진 자들의 불로소득은 GNP만한 규모가 된 반면 일반서민들 입장에서는 집세의 폭등으로 삶의 최소한의 조건마저 거부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는 강력한 인플레이션 및 투기억제 정책을 써서 불안요인을 우선적으로 제거하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이 다시금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을 한시도 지연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이와같은 근본대책을 외면한 채 대기업의 지원과 가진 자들의 보호를 내세우며 팽창정책을 쓰고 제도 개혁을 미루는 것은 정경유착을 배경으로 하는 경제논리의 굴절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서민들이 희망을 갖고 경제 저변이 활성화되어야 모두가 산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경기부양의 조바심에 사로잡혀 스스로가 집중된 경제력의 함정에 빠질 것이 아니라 국민편에 서서 기득권의 굴레를 벗는 강한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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