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상의 자유 위협받고 있다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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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위헌’ 판정받은 국가보안법 위력 여전…올들어서만 출판관계자 16명 구속

 최근 국가보안법 제7조(1항 및 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 헌법재판소가 어정쩡한 '한정합헌'(일부위헌) 결정을 내린 가운데 법원과 수사당국이 그 결정의 '뜻'을 각기 달리 해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이시윤재판관)는 지난 4월2일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 고무 등) 1항 및 5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사건에서 "국가 안전 ·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줄 구체적인 위험이 없는 한 단순히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을 고무·찬양·동조한 행위에 대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한정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의 결정문에 따르면 현행 법조문대로 해석할 경우 "첫째, 헌법상의 언론·출판·학문·예술의 자유를 위축시킬 염려가 있고 둘째, 법운영 당국에 의한 자의적 집행을 허용할 소지가 생기고 셋째, 헌법 제4조의평화통일 지향 규정과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법조문 중 '반국가단체 구성원' '활동' 동조' '기타의 방법' '이롭게 한' 등 5군데의 표현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위헌적 요소가 있으므로 국가의 안전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경우에만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끄덕없는’검찰. 재판부와 대조적

  그러나 재판부 스스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불확실한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법운영 당국에 의한 자의적 해석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실제로 '형식상 합헌'이지만 ‘내용상 위헌'이라는 어정쩡한 결정이 내려진 다음 법원에서는 '그 뜻을 헤아려' 판결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수사당국에서는 여전히 '나 몰라라' 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울형사지법 항소3부(재판장 김중곤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있은 직후인 4월4일 북한원전을 출판해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판매)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종규(백의출판사 대표)씨와 이상돈(동 편집부장)씨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 예정이었으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결정문을 참고해야 하나 아직 이를 받아보지 못했으  므로 이를 입수하는 대로 검토하여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채 일단 공판을 연기했다. 또 서울형사지법 재판부 단독판사들도 1심에 계류중인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선고공판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에 결정문 송달을 정식으로 요청하는 한편 4월2일의 결정을 판결에 반영하기 위한 법률적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검찰에서는 '일부위헌'결정과 관련해서 국가보안법 적용에 관한 “어떤 법률적 검토나 지시도 나온 게 없다"는 법무부 공보관실의 답변에서 드러나듯, 아직까지 오불관언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4월4일 서울지검 공안2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검찰에 송치된 '기독교문화노동운동연합' (기문노련) 간부 11명 가운데 박문재 (31 · 전도사)씨 등 5명에 대해 구속 당시의 혐의사실에다 '이적단체구성' 혐의를 추가 기소,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가 하면 나머지 6명에 대해서는 이번에 '사실상 위헌' 결정의 대상이 된 '이적 동조 및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기소하는 등 '우리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여유'를 보이고 있다. 검찰의 지휘를 받는 일선 경찰도 아직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부위헌 결정이 나온 직후인 4월3일 마포경찰서는 김연인 (도서출판 힘 대표)씨를 '이적표현물 제작·배포' 혐의로 구속, 국가보안법 제7조 이른바 '찬양 고무'죄의 위력이 여전함을 말해준다.

  대표적 반민주악법의 하나로 지목되어 민자당에서도 개정안을 내놓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제7조에 따르면 1항은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 다"로 되어 있고 5항은 "이를 목적으로 문서, 도서,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 ·수입 ·복사·운반 ·반포 ·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 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로 명시하고 있다. 두 조항은 많은 재야 인사 및 노동운동가와 대학생들을 그들이 '취득한 문서 ·도서· 기타의 표현물' 등과 관련시켜 '탄압'하는데 자의적으로 적응돼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학작품의 ‘이적성’놓고 검찰해석에 의문

  한국출판문화운동협의회(한출협·회장 김태경)에 따르면 올들어 4월5일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주로 이적표현물 배포) 혐의로 구속된 출판 관계자들은 16명이나 된다(88년 18명, 89년 43명) 이들의 구속 유형은 이른바 "북한원전 출판에 대한 탄압, 문학작품에 대한 탄압, 진보적 학술연구활동에 대한 탄압, 독자에 대한 탄압"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우선 지난해만 해도 25명이나 되는 출판인이 구속될 만큼 집중적으로 '단속'된 북한원전 출판의 경우, 올들어 원전 출판 자체가 뜸한 편인데도 관련자 구속이 잇따르고 있다. 재작년부터 전대협을 중심으로 '북한 바로알기운동'이 펼쳐지면서 한출협 회원 출판사들도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여기에 호응, 북한원전 출판이 활발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민중의 바다》(원제 '피바다')를 발행한 최필승(한마당 대표)씨를 시작으로 출판인들을 대량 구속, 출판인들에게는 지난 한해가 ‘고난의 바다’가 되었다.

  일종의 필화사건으로 분류되는 문학작품에 대한 사례는 《붉은산 검은피》와 관련 , 지난 2월22일에 구속된 시민 오봉옥씨와 소설가 송기원(실천문학사 전 주간)씨가 대표적이다. 이미 지난해 11월에도 소설가 황석영씨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게재했다고 해서 이시영(창작과 비평사 주간)씨가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통신 연락 편의제공' 혐의로 구속되는 등 필화와 관련, 지난해 구속된 문인과 출판인은 10명이다. 문단에서 '정통적 민족해방운동을 형상화한 수작'이란 평도 받은 《붉은산 검은피》의 작자와 출판인까지 구속한 것에 대해 "검찰이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문학작품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4개월 사이에 부쩍 늘어난 진보적 학술연구자에 대한 구속 사태는 출판 ·학술계의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지난해 12월1일 이승환(남서울 민청련 위원장· 필명 이재화)씨를 그가 집필한 일제시대 항일민족운동 연구서인 《한국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백산서당, 1988)와 논문<식민지시대 항일무장투쟁사 소고> ((외대학보)89.4.12) 등을 문제삼아 구속했다. 

  올들어서도 안기부는 1월13일에 임규찬(노동문학사 전 편집부장) 씨를 연행 , 지난해 《노동해방문학》 6· 7월 합본호에 실은 '해방직후 문학운동 조직노선'에 관한 글을 걸어 구속하더니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사흘밖에 안된 박태호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재학 · 필명 이진경) 씨를 그가 편저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논쟁》 (벼리 ,1988)에 실린 글과 활동을 문제삼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임규찬씨는 이미지난해 5월 《노동해방문학》 5월호에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전환>이란 글을 편집했다는 이유로 당시 김사인(노동문학사 대표 · 현재 수배중)씨와 함께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지 넉달 만에 다시 구속된 것이다 .

  또 80년대 학계의 최대 논쟁이자 가치있는 수확으로 손꼽히는 '사회구성체론'의 핵심 이론가 중 한 사람인 이진경씨의 경우, 이미 6개월~3년 전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논문과 저서를 새삼스럽게 문제삼았다는 점에서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 탄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치안본부에서도 지난 2월17일 정철영(《사회와 사상》 기획위원 · 필명 정민)이란 '대어를 낚아했다. '《신동아》 등 주요 월간지에 무게있는 평론을 발표, 공인받은 사회평론가이자 지난해 베스트셀러 축에 낀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의 필자인 정민씨의 경우도 그가 이미 85년에 집필한 《주변부사회구성체른》(사계절 발행)과 86년에 발표한 논문 '한국사회구성체 논쟁의 현황과 그 평가' 등이 문제됐다는 점에서 "의도적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조자룡의 헌칼’ 이적표현물 소지·탐독

  출판인들은 "직접적 탄압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출판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독자에 대한 탄압을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수법은 노동운동가와 시위 대학생들을 '엮는'데 흔히 쓰이는 '조자룡의 헌칼'이다"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지난달 10일 서울시경이 구속한 이른바 '북부지역 노동자연맹' 관련자 왕해전(27 ·외대 4년 제적)씨 등 4명도 직접적 구속 사유는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뿐이었다. 또 치안본부는 지난 2월9일에 (주)태평양화학 서울본사 노조지부장 윤명선(44)씨를 역시 '이적표현물 제작·소지·반포' 혐의로 구속했는데 그 까닭은 윤씨가 지난해 10월 중순께 《노동해방문학》 9월호에 실린 시인 박노해의 <김우중회장의 '자본철학'에 대한 전면비판>이라는 글을 타이핑한 뒤 인쇄하여 조합원들에게 배포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4월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대학가 시위에서 붙잡힌 대학생들의 경우, 화염병 사용에 대한 증거확보가 여의치 않으면 가택수사를 벌여 '이적표현물 소지 탐독'이라는 혐의를 걸고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북한영화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해서 화제가 된, 서울 광화문우체국 6층에 자리잡은 국토통일원 부설 '북한 및 공산권 정보자료센터'에 가면 누구든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전기》 《김일성선집》 《조선전사》 《조선통사》등 '진짜 원전'과 <로동신문> <민주조선> 《역사과학》 등 신문 잡지 그리고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 영상자료를 볼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중 일부(복제본)는 현재 시내 중심가 책방에서도 얼마든지 구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다만 '재수없으면' 누구든지 '이적표현물 소지탐독'으로, 또는 그걸 누군가에게 빌려주면 '반포' 혐의로 언제든지 구속될 수 있다. 

  지난해 2월 《조선문학개론》(상· 하)을 펴냈다 해서 국가보안법 위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된 고규태(전 인동출판사주간 ·시인)씨는 처음에 원본을 어디서 구했느냐는 수사관의 물음에 국토통일원 자료실에서 '슬쩍했다'고 진술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말고도 '절도죄'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검찰에서는 절도죄는 빼고 국가보안법만 적용했다. 아마도 '신성한' 국가보안법 관련 재판의 모양새가 별로 좋지 않겠다고 판단해서 그리 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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