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는 위기설을 역이용하고 있는가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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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사태 관련 서방측 고르비 몰락 진단에 異論 많아

리투아니아 사태는 소련연방 해체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그것은 몇번의 위기국면을 절묘하게 헤쳐온 고르바초프정권을 또다시 궁지에 몰아넣을 것인가. 

  리투아니아 사태를 둘러싸고 고르바초프와 소련 연방체제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예상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리투아니아 사태가 폭력화하면 고르바초프가 몰락하고 그것은 곧 소련 연방체제의 자연 해체로 이어지리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난 4월2일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완전독립을 늦출 수도 있음을 시사해 일단 리투아니아와 연방 정부의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협상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르바초프의 강경대응으로 리투아니아에 긴장이 고조되자 최근 에스토니아 최고회의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던 리투아니아와는 달리 독립에 이르기까지 과도기간을 설정하는 등 점진적인 방직을 채택하기로 결의하였다. 따라서 앞으로 리투아니아와 같은 전격적이고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는 방식과 에스토니아와 같은 점진적 방식 중 보다 효율적인 성과를 이룩하는 쪽이 라트비아, 그루지아, 몰다비아 등 독립 요구 움직임을 보여온 다른 공화국들에게 선례가 될 가능성이 높게 되었다.

  이와 같이 산하 공화국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든 분리 ·독립의 대열에 계속 합류하게 될 때 소련 연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주로 서방측의 전문가들은 앞으로 몇년 안에 소련제국자체가 해체될 것이라는 다소 성급한 진단들을 내놓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논자로 카터정권 당시 안보담당 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를 들 수 있다. 그는 2월2f일자 《뉴스위크》에 기고한 글에서 "앞으로 2년내에 공산당이 소련에서 사라지고 이어 5년내지 10년안에 연방 자체가 소멸될지도 모른다"고 진단하였다. 최근 공표된 美국방부의 한 보고서도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천년까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공화국이 연방에서 탈퇴하고, 이어 우크라이나, 카자흐 공화국 등도 분리독립하여 백러시아와 러시아 공화국만이 잔류한 채 소련제국은 붕괴하게 된다는 것이다.


브레진스키는 “10년안에 소연방 소멸된다”

  사실 각 공화국의 분리 ·독립운동은 올해초의 지방공화국 최고회의 선거에서 다수세력으로 부상한 민족주의 세력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하게 되면서부터 새로운 단계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분리운동이 오랜동안의 스탈린식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억눌려왔던 민족감정들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하에서 일거에 폭발하여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을 뿐 독립 이후의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분리· 독립에 가장 적극적인 리투아니아의 경우 연료 및 원료의 약90%를 다른 공화국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 이후 이러한 경제관계가 차단될 경우 심각한 국면에 봉착하게 된다. 또한 리투아니아 등 각 공화국에 서로 다른 민족들이 혼재돼 있는 것도 앞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즉, 독립운동이 가열될수록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민족집단간의 투쟁이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리투아니아의 경우만해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러시아인들이 친소파 공산당으로 결집되어 민족운동조직인 사주디스와 대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발트3국이 궁극적으로 독립하게 된다고 할 때 그것은 곧 고르바초프정권을 위기에 몰아넣고 소련연방 자체를 해체시키는 전주곡이 될것인가. 서방측 전문가들과는 달리 일부에서는 현재 진행중인 각 공화국의 독립운동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연방체제 개편작업과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외부세계가 그동안 탈소 ·독립운동을 고르바초프정권의 위기라는 시각으로 보고 있는 동안 고르바초프는 이를 공산당의 독재폐기, 연방제 개편논의 등의 선행지표로 활용해왔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지난 3월11일의 리투아니아 공화국의 독립선언은 중앙정부의 연방제 개편을 또다시 선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체제개혁구상에는 체제유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 동유럽은 물론 리투아니아 등 일부 공화국을 해방시키는 것도 상정되어 있는데 이번 리투아니아사태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강경대응은 사실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우려해서라기 보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점도 지적된다.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연안의 3공화국이 독립한다 해도 그것이 곧 다른 공화국들에 연쇄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발트3국의 소연방 편입은 1939년의 독·소밀약에 근거하는 것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해당 공화국들의 주장에 명분이 있지만 다른 공화국들의 경우 연방편입이 이미 제  정러시아 시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아시아나 카프카즈 등의 민족문제는 직접적인 독립요구 보다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는 경제상태에 대한 불만과 구체제에서 특권을 누리던 각 소수민족 출신의 일부  당관료들에 대한 저항이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개혁정책의 진전에 따라 고르바초프를 외곽에서 지원하는 세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제기됐던 고르바초프 위기론은 주로 지방 공화국들의 독립운동이 가열되면 소련권력 구조내의 보수파에 의한 反고르바초프 운동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보수파의 득세 가능성은 고르바초프의 몰락 가능성을 점칠 때 항상 제기돼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 소련의 권력구조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현단계에서 보수파들의 재기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몇차례의 인사조치를 통해 보수파들은 소련 권력구조내에서 거의 제거되었고 또한 대중적인 호소력도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이미 무력화되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에 도전할 세력은 급진개혁파

  앞으로 고르바초프에게 도전할 수 있는 세력은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자들과 특히 급진개혁파들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보다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30일 <타스통신> 사장 레오니드 크라브첸코가 일본 <교도통신>과의 회견에서 7월의 공산당 전당대회 이후 보수파 지도자 예고르 리가초프가 제거될 것이고 급진개혁파들이 새로운 정치단체를 결성할 것이라고 한 발언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급진개혁파들이 고르바초프와 대항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해도 그들이 곧 고르바초프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지는 불분명하다. 급진개혁파들은 개혁의 속도와 내용에 있어서는 고르바초프와 대립하고 있지만 개혁의 기본구상에 있어서는 그와 동맹관계에 있는 이율배반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파의 제거와 함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잠재적 반대세력으로 인식돼온 관료 및 군부의 상층부에 세대교체가 일어나 이들이 개혁정책의 강력한 지지기반으로 전환되고 있고, 노동자들도 조속한 경제개혁을 원하고 있어 사회적 기반에 있어서 고르바초프정권은 상당히 안정돼 있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서방측에서 주장하는 소련연방체제의 붕괴론 및 고르바초프 정권의 위기설 등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갖고 있는 역동성을 간과한 데서 나온 것이라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서방의 한 실업가가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위기설에 의해 고르바초프는 국민의 지지를 모으고 서방측의 지원을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고르바초프에게 위기는 기회의 상실이 아니라 기회의 창출로 보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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