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가 좀 나아질 수 없을까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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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정치인을 두가지로 분류하였다. 그 하나는 "정치를 위하여 사는 정치인"이요, 다른 하나는 “정치에 의하여 사는 정치인”이다. 다소는 현학적 표현이라 할까, 독일사람 특유의 분석을 위한 분석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으나,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그럴 법한 분류라는 데 공감이 간다.

 베버의 분류를 좀더 부연하면, 전자는 정치를 위하여 인생을 내던지는 타고난, 그리고 헌신적인 정치인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금방 머리에 떠오르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본질적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요, 봉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요,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요, 그럼으로써 인생의 보람을 느끼는 人種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막스 베버가 지적한 두번째 범주의 정치가는 정치함으로써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정치에 의존해서 벌어먹는 직업인을 말한다.

 이상의 두가지 유형 모두를 우리는 직업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원론적으로 정치는 직업정치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믿는다. 마치, 학문이 학자의, 국방이 군인의, 기업이 기업인의 고유영역이듯, 정치는 역시 직업정치인의 본분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그러나, 직업정치인을 정치를 수입원으로 해서 '정치에 의존해서 먹고 사는 사람'으로 규정지을 때, 정치를 보는 시야는 매우 몽롱해지고 만다. 결국, 다른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로 벌어먹는 한낱 직업적인 기능직으로 전락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인데, 존경이나 사랑의 대상에서 탈락한다. 여기서 정치하면 나와는 관계없고, 정치인하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斜視的 개념이 형성된다.

 

입후보자가 유권자에게 표 구걸하는 방식으론 안돼

 그것이 곧 비뚤어진 선거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정치를 점잖고 정직한 사람들이 발들여놓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선거인이 투표소에 가서 입후보자를 선택할 적에 "다른 사람이 아닌, 선생님이야말로 국회에 가서 나라 일을 맡아 수고해주셔야겠다"고 간청하는 선거의 본뜻에서 멀어진다. 그 대신, 특정후보에 한표를 던짐으로써 그에게 벼슬자리를 만들어주고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게 해준다는 채권자의식부터 생긴다. 벼슬을 하고 돈을 벌어 잘 먹고 잘 살고 사회적으로 큰소리를 칠 수 있게 해주는 만큼,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가 있어야겠다는 기대심리가 작용한다. 후보자들은 그런 심리를 조장한다.

 여기서 선거는 타락하고 사실상 옛날의 매관매직과 다름없는 상거래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투표하는 데 돈을 주고 돈을 받고 법을 어기고 하는 데,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해괴한 현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정치는 어느 때 어느 경우든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고,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현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막스 베버가 지적한 정말 "정치를 위하여 사는 정치인"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며,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참된 직업정치인들이 디디고 설 땅이 비좁아진다는 것이다. 惡貨가 良貨를 구축하는 그레셤의 법칙같은 것이 정치세계를 지배하지 않는가 하는 두려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선거와 민주주의란 과연 무슨 뜻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일어난다.

 좀더, 정치를 개선하고 고귀한 직업으로 승화시킬 수는 없을까.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선거야말로 정치를 위하여 헌신하는 참된 정치인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게 할 수는 없을까.

 물론, 어느 한가지 뾰족한 수가 있어 당장에 정치를 나아지게 하는 만능약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 같다. 지난 42년간 열세번에 걸친 총선거에서 얻은 결론은 입후보자 개개인이 유권자에게 표를 구걸하는 방식으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참된 정치인이 정계에 나서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유권자의 생각에 내가 던지는 이 한표가 저 사람을 고급 월급쟁이로 만들어주는 특혜행위라는 관념이 있는 한 참된 직업정치인이 다수를 이루는 국회가 성립되기 어렵겠고, 또한 이 땅에서 부패 · 타락선거를 뿌리뽑고 공정하고 명랑한 선거를 실현시키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타락선거 방지 위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도입 바람직

 본질적으로 이 나라 정치수준이 올라 정치인과 유권자의 비틀어진 관념이 바뀌어야겠으나, 우선은 부패 · 타락선거를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개혁은 있을 수 있다고 보여진다.

 선거제도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로 뜯어고치는 것이다. 일정한 지역단위로 일정한 국회의원 정수를 정하고 정당마다 그 정수에 해당하는 후보명부를 정하고 선거에서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다. 예컨대 강원도에 국회의원 정수가 20명이라면, 민자당, 평민당 그리고 기타 정당이 각 20명의 후보자를 내고 선거결과 가령 민자당이 60% 지지표를 얻었다면 이미 유권자 앞에 공개한 후보자명부 20명 가운데 상위 12명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것이다. 이 제도아래에서는 한편으로 개개인 후보자가 유권자를 상대로 하는 매수행위는 불가능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당 안에서는 정말 참정치인만을 후보자로 내세울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 다수 유권자의 지지표를 얻는 데 지장이 생길 것이다.

 어느 제도에도 장단점이 있고, 이 제도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선거에서 벼슬을 사고 파는 듯한 추악한 요소는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참고로 유럽대륙 대부분의 나라는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이번에 동독 · 체코 등에서 戰後 처음으로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는 데도 부정 · 타락 · 부패의 소리가 全無한 것도 결국 비례대표제도의 덕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를 좀더 고귀한 것으로 만드는 데, 차분하게 제도적 개선을 고려할 시기가 왔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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