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工물질로 사람피를 만든다
  • 김창엽 기자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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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 불소화합물질 PFC개발 박차 …곧 實用化 전망

인공혈액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朴寧愚박사(화공연구부)팀과 경희대 의대 曺龍鎬 · 白亨煥 · 白幸?박사(생화학교실)팀은 공동연구진을 구성, 최근 쥐를 대상으로 인공혈액의 성능을 평가, 비교적 좋은 결과를 얻었다.

 지금까지는 수혈용 피를 사람에게서만 구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인공혈액 개발에 안간힘을 쏟고 있는 실정. 더구나 요즘은 AIDS, 간염 등의 질병이 잘못된 헌혈 및 수혈과정에서 옮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피를 구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인체의 피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혈액'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되었는데, 연구내용은 크게 두 방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적혈구를 장기간 보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체물질이 아닌, 전혀 다른 인공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몸무게 중 약 8%를 피로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20~30% 이상이 출혈될 때 생명이 위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액 부족으로 사망하게 되는 직접적인 이유는 산소의 체내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소는 인체 구석구석의 각종 세포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혈액은 산소 이외에도 세포에 영양분을 날라주고, 외부로부터 침투한 병원균 등과 싸울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다.

 과학기술원의 朴박사팀과 경희대 의대의 曺박사팀은 PFC(Perfluorocarbon) 라는 인공물질의 개발쪽으로 방향을 잡아 연구하고 있다. PFC가 혈액 대용물질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발견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1966년 미국 앨라배마 의과대학의 교수인 클라크와 골란은 한 액체속에 잠겨 있는 쥐의 살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했는데, 이때 사용된 액체가 바로 PFC용액이었다.

 PFC는 탄소에 불소가 결합한 물질로 탄소와 불소는 대단히 강력한 화학결합을 하고 있다. 이같이 단단한 결합 때문에 PFC는 인체내 물질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어렵고(저희들끼리만 꼭 붙어 있으므로), 따라서 세포에 해독을 끼칠 우려가 없는 것이다. PFC는 이러한 특성에다 산소를 잘 간직할 수 있는 물리적 성질까지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PFC는 갈은 크기의 적혈구에 비해 4~6배 가량 많은 산소를 '품고' 있을 수 있다. PFC용액속에 들어 있던 쥐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다량의 산소가 녹아 있기 때문이 었던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산소운반 능력 뛰어나 암치료에도 큰 효과

 PFC는 불소화합물계통 전체를 일컫는 말로 2백여종 이상이 존재한다. 현재 PFC 개발수준은 일본이 가장 앞서 있고, 실용화는 중국이 앞장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녹십자社에서 개발한 PFC는 우유와 비슷한 색깔을 띤것으로 1천여명 이상의 환자에게 임상실험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상실험의 주 대상자는 진짜 피의 수혈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교 신자들로 이루어졌는데, 일부는 사망했지만 다수가 생존하는 등 비교적 좋은 결과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朴박사는 말한다. 일본은 PFC제품의 미국진출도 시도했으나 아직 허가를 받은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이 제품은 미국에서 후두암과 관상동맥경화증 치료제로서는 허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朴박사는 "후두암 치료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산소의 원활한 공급이 필요한데, PFC는 암세포에 산소를 날라주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PFC의 이러한 능력이 바로 적혈구를 대신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朴박사는 또 "PFC의 사용을 허가한 중국은 지난번 티베트사건 때도 수혈이 필요한 병사들에게 이를 주입해 많은 생명을 건졌던 것으로 전해들었다"고 말한다.

 朴박사가 만든 여러 종류의 PFC를 갖고 동물실험을 진행중인 경희대 의대의 曺龍鎬박사는 "PFC의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어떤 종류의 PFC는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90% 정도의 생존율을 기록했다"며 "연구를 계속하면 더 나은 결과도 바라볼 수 있다"고 말한다.

 曺박사가 채택한 실험법은 흰쥐의 동맥과 정맥을 찾아내, 동맥에서는 피를 뽑고, 그 대신 정맥으로는 일정량의 PFC를 공급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해서 흰쥐의 혈액 중 절반을 PFC로 대체했을 때 대부분의 쥐가 열흘 이상을 살았다.

 

실온상태 보관 등 장점 많아

 "PFC가 인체의 일부 기관에 잔류, 독작용을 나타낼 수도 있지 않는냐"는 질문에 경희대 의대의 白幸?씨는 "간, 비장, 지방세포 등에 대한 실험 결과 PFC는 일정시간이 지나면 호홉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답한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전혀 발표가 안된 신종 PFC도 제조, 실험을 실시했는데 이때는 쥐들이 즉시 사망했다고 한다. 이는 PFC 자체의 문제보다는 정제가 잘 되지 않아 끼어든 불순물 때문인 것 같다고 曺박사는 설명한다.

 이밖에도 PFC는 인공혈액으로서 여러가지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실온에서 보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혈액형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셋째 제조비용이 적게 든다는 강점이 있다. 또 탁월한 산소운반 능력으로 기타 의료 분야에 응용도 가능하다. 그 한 예로 曺박사는 "PFC가 들어 있는 연고를 만든다면 이를 상처치료 등에 사용해도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이식수술에 필요한 臟器 등을 보존할 때도 PFC가 한몫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별다른 외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 연구가 빨리 진척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꼭 해내야만 할 일이기 때문에 신념을 갖고 일한다"는 연구팀 관계자의 자세로 미루어 인공혈액의 실용화가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이루어지리라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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