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浩申 외무부장관
  • 김승잡 편집주간대리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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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관계, 9월前 변화예상"

김영삼 · 박철언組의 모스크바'동행'건으로 政街와 外交街가 시끌시끌하다. 고르바초프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났느냐, 만난 시간이 50분이냐 5분이냐, 왜 혼자만 만나고 '동행인'은 따돌렸느냐를 놓고 어른들이 어린애짓을, 그것도 자랑스럽게 감행하고 돌아왔다.

 이들에게 정호용씨의 강제사퇴소동은 어찌보면 불행 중 다행스런 일이었는지 모른다. 이 소동 덕택에 모스크바행 2人3脚경기에 쏠린 국민들과 언론의 관심이 분산됐고, 모스크바의 추태에 대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반감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를 만나건 안 만나건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한테 大命을 맡긴 국민들, 구체적으로는 6공정부의 외교적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외교총수 崔浩中 외무부장관은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분별하고 있는가? 김 · 박 중 누가 옳았고 누가 글렀다고 판단하는가. 초록이 동색이라고, 그 역시 박철언 장관의 편을 드는 건 아닌가. 김 · 박組가 모스크바로부터 귀국하던 지난 29일 하오, 이들을 출영하러 김포공항으로 떠나려던 최외무를 만나《시사저널》인터뷰석에 앉혔다.

 

●지금 세인의 관심은 金泳三 민자당최고위원과 朴哲彦정무장관의 2인3각식 訪蘇에 쏠려 있습니다. 주무부처의 책임자로서 이번 방소단의 성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금년도 우리 외교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가 소련 · 중국과의 관계증진입니다. 물론 이들 나라와의 관계증진은 외무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해야 할 사항입니다. 그러나 국민외교 차원에서 이번에 김최고위원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났다고 보며 그 회동을 통해 관계증진 등을 포함한 많은 문제들을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김위원이 돌아온 후에 파악해봐야 알 수 있겠으나 아무튼 그의 방소가 韓 · 蘇관계 개선에 큰 진전을 가져왔다고 봅니다.

●한 · 소 대사급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초대 駐蘇대사로는 孔魯明 駐蘇영사처장이 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런 각오로 가서 활약을 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번 김최고위원의 訪蘇중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시간을 두고 말이 많았습니다. 김위원측에서는 50분 내지 1시간을 만났다고 하고 정부측 소식통은 5~10여분 가량의 修人事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장관께서는 이번 김 · 고르비 요담에서 거론된 내용이나 톤을 미루어볼 때 과연 어느 정도의 사간이 걸렸을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 역시 그 점도 김최고위원이 돌아와봐야 정확히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야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북방외교의 성과를 두고 이번 방소중 김최고위원과 박철언정무장관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였습니다. 일례로 盧대통령의 친서전달 과정에서 나타났듯이 북방외교의 공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는데 장관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對蘇관계 개선이 매우 중요한 외교목표이기 때문에 두분이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문에 보도된 것만 보고 논평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일전에 제가 런던에서 장관을 뵙고 얘기를 나누는 가운데 북방외교의 거리를 100m로 비유했을 때 현 위치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장관은 50m라고 대답하신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 · 소수교가 활발히 거론되는 지금의 상황에서 거리상 얼마나 와 있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중간지점은 분명히 넘었다고 보는데, 아직도 중국 · 소련과의 수교문제가 남아 있고 북방외교의 목표가 사회주의국가나 공산권국가와의 수교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으로 하여금 세계의 현 정세를 빨리 파악토록 하며 그들이 폐쇄정책에서 벗어나 민주화 · 개방화 · 자유화로 나아가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7 · 7선언에서 밝혔듯이 북한이 대결과 경쟁의 길을 청산하고 협력과 화해의 길로 나오도록 촉진하는게 북방외교의 목표인 이상 그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북한을 개방사회로 끌어내고 대화와 화해의 길로 나오도록 하는 게 목표라면, 이제 80m 정도는 왔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봐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향후 중요한 문제로 소련측의 북한에 대한 태도변화를 들지 않을 수 없고, 소련측도 일단은 북한에 대해 한국과의 대화에 나서도록 종용하는 자세입니다. 소련이 결국 이번 김 · 박組의 방소를 다분히 對북한 견제구로 이용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올 법한데….

 소련은 현재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추진중에 있으며 자국의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그런 주장이 나올 수 있겠지요.

●한 · 소수교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라 치더라도 현재 미수교 공산국가로는 중국, 동독, 알바니아, 쿠바, 월남 등 5개국이 있는데 이들 국가와의 수교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솔직히 말해 7 · 7선언 당시만 해도 우리가 적극적인 자세로 관계개선 노력을 폈던 게 사실이고 그 첫 대상이 헝가리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과의 경제협력 제의를 비롯, 이들 국가들이 먼저 수교를 타진해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루마니아, 몽고가 그런 경우입니다. 불가리아, 체코의 경우엔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라기보다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나라가 상당히 많아지고 있다는 징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동독도 선거가 끝났으므로 곧 양국간 교섭이 진척될 것 같으나 알바니아의 경우는 그쪽서 아직 개방의 조짐이나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우리로서도 과히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역시 큰 역점을 둬야 할 나라가 중국인데 중국은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에 비추어 우리로서도 신중하면서도 점진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중국과는 기대만큼의 관계증진이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쿠바, 월남에 대해서는 그쪽에서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때까지는 우리측으로서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우리측에서 볼 때 중국과의 수교는 그 시기면에서 소련과 병행하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일단 소련과의 수교 이후에 하는 것이 좋습니까?

 꼭 보조를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보며 관계개선의 진전 상황을 봐가며 추진하는 것이 좋겠지요. 꼭 병행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금년 9월의 북경 아시안게임 때까지 한 · 중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느 선까지 전전되리라 보십니까?

 순전히 아시안게임만 놓고 생각할 때 우선 아타셰(주재관)도 있어야겠고 참관단도 가야 하며, 그렇다면 영사 편의제공과 우리측 인사의 보호문제가 대두되는데 이런 문제는 현재 중국과 협의중이며 그런 점에서 게임 이전에 어떤 계기가 생기리라 봅니다. 지난번에 파키스탄을 가기전에 북경공항에서 1시간 가량 머무는 가운데 공항 귀빈실에서 마중나온 릴리 駐中미국 대사가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북경시내를 돌아보니 대한항공을 나타내는 코리아에어라인이란 대형 선전광고판이 나붙었는데 과거 같으면 중국정부가 이러한 일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천안문사태이후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지만 기본방향은 돌이켜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한 · 중관계가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좋아지리라 본다고 얘기하더군요.

●한 · 소수교 움직임에 비추어 올 유엔총회시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 노력과 관련. 소련을 기권으로 유도하는 노력은 하고 있습니까?

 소련이나 중국이나 우선 남북간에 이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현재 남북간에 이 문제에 대한 합의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북한은 남북한 통일후 단일가입을 주장하고 있고 개별가입은 분단을 영구화하기 위한 획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일성주석의 교시에 따른 것이어서 북측 어느 누구도 감히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을 건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유엔가입 노력 얘기가 나돌자 북한은 관련문서를 유엔 외교관들에게 회람시키며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을 설득해 유엔에 가입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릴 수도 없잖습니까. 우리가 먼저 유엔에 들어가면 북한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구실을 주기 위해서도 우리는 유엔 단독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같은 입장을 중 · 소측에 설명하고 있으며 여러 우방과 관계 당사국을 통해 중 · 소를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체코와의 수교의정서에 서명한 후 체코 외무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외국기자가 한국의 유엔가입에 대한 체코의 입장을 묻더군요. 세계 어느 나라건, 또 어느 정책을 취하건간에 유엔에 가입하고자 하는 것을 반대해선 안된다는 질문 겸 코멘트였습니다. 또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분단영구화론에 대해서는 동 · 서독을 예로 들며 유엔의 개별가입이 통일에 방해된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함으로써 제가 할 얘기를 다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나 중국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아직까지는 기권과 같은 태도표명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방과 협의해 이 문제를 협의해나가겠지만 유엔가입 노력은 중 · 소의 거부권 행사가 없으리란 확신이 서야 추진할 것입니다.

●향후 중국과의 관계수립도 소련과 같은 행로를 택할 것입니까, 아니면 중국에 관한 한 독특한 접근방법을 택할 것입니까?

 외교라는 것에는 상대가 있으니 상대방 입장을 고려해 다양하고도 융통성있게 추진하고자 하나 중국은 아직까지 명백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는 4월22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개최하는데, 그에 앞서 15일이 김일성 생일입니다. 장관께서는 이번 회의에서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하리라 보십니까?

 글쎄요.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사회라서 국제적으로도 전문가나 관측통들의 분석이 제각각입니다. 어떤 뚜렷한 정설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현재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어떤 판단을 못내리겠군요.

●외교는 상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장관께서는 외무장관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하는 게 편합니까, 아니면 김일성이 그대로 주석직에 앉아 있는 게 좋습니까?

 김정일에 대한 평가도 분분해서 좋다 나쁘다 얘기할 상황이 아닙니다.

●최근 북방외교에 때맞춰 동유럽 공관장이 대폭으로 임명됐고, 따라서 20년 묵은 외무부 인사체증이 다소 풀린 것으로 평가됩니다. 장관께서는 인사체증의 해소와 관련, 어떠한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까. 공관장은 지역전문가를 보낼 것인지요?

 공관 증가와 함에 정원도 늘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매년 20명씩의 신진외교관을 외무고시를 통해 뽑아왔는데 금년부터는 35명으로 늘려 선발합니다. 지금까지 외무부 인사를 보면 지역전문가 양성 차원보다는 일단 힘든 지역에서 근무했으면 조금 나은 데로 이동하는 식이었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지역전문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나가야겠지요. 또 국제정세가 정치 · 외교 · 안보보다는 경제적 필요로 좌우되는 상황이므로 앞으로는 경제외교에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무부도 경제부처 중의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앞으로는 경제외교에 큰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도 이 경제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본부 차원에서도 전문가를 초빙해 1달에 한두번씩 경제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루마니아의 초대 대사로는 외무부 심의관급(3급)이면 갈 수 있습니까?

 그 정도로는 안됩니다. 관리관(1급) 내지 그 위 아래 수준이 기준이 될 것입니다. 현재 초임대사는 2급부터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급 정도가 표준이 될 수 있겠지요.

●장관께서는 역대 외무장관 가운데 비교적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분으로 보입니다. 주위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좋은 때를 만나 장관 한다는 평은 듣고 있습니다. 우리의 국운과 국제적 위치가 그만큼 커졌고 외무부도 그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만큼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우리 외교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는 국민적 성원과 뒷받침 역시 컸다고 보며 반드시 제가 외무장관에 취임했기 때문에 잘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특정인물의 독주외교가 현 시점에서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저는 그분(박철언장관을 지칭)이 헝가리와 수교 교섭을 할 당시에도 외무부와 협의해서 한 것으로 압니다. 또 그 상황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외무부에서 직접하는 것보다는 그런 분이 가서 하는 게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새삼 짚이는 대목이 있어 부기한다. 北方외교의 중요성이다. 그 아이디어가 누구 머리에서 나왔건, 또 그 주역이 누구며 집행방식이 '밀사'방식이건 '동행' 또는 '수행'방식이건간에 이는 한낱 가지에 불과할 뿐 정작 나무줄기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건국 이래 우리에게는 외교다운 외교가 없었다. 對美 · 對日외교라는 외교의 양대산맥에 가려 통일에의 목마름과 나라의 염원을 해갈시킬 외교다운 외교가 사실상 부재하는 상태로 45년을 살아왔다.

 북방외교의 최종기착지는 결국은 평양이다. 평양을 달래고 그들로 하여금 자진해서 문을 열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는 멀고 먼 동유럽을 돌고 돌아 우랄산맥을 넘었으며, 이제 모스크바 공략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역대 집권자나 경략가 또는 정치학자 가운데 이 비슷한 구상만이라도 떠올린 사람이 있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

 차제에 우리에게 절박한 과업은 이 미증유의 役事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외교창구의 단일화다. 서로 공을 다투거나, 자칫 정권의 인기차원에서 다룬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해진다. 이 작업의 방향타는 당연히 외무부 손에 쥐어져야 한다. 실세냐 아니냐는 문제로 외무부장관이 이를 사양한다면 그는 국민에게 직무유기의 죄를 짓는 셈이 된다. 崔장관이 과연 이 役事에 적합한 인물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다. 열차는 기관사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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