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읽는 한국적 ‘원형’
  • 최일남 (작가) ()
  • 승인 1990.04.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중자서전》뿌리깊은나무 펴냄

텔레비전에 비친 '그림'에서 보아도 그렇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즈음 자주 모국나들이를 하면서 들려준 말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한국적인 풍습이라든가 衣食생활의 원형을 그들에게서 '재발견'하는 느낌이었는데, '그곳'이란 중국 연변지방이요 '그들'이란 현지의 교포들을 뜻한다. 말씨는 그렇다 치고 먹는 것 입는 것과 동포들의 생활감정이나 정서속에는, 어떻든 우리가 잃어버린 부분이 많이 간직되어 있었다. 현대문명의 세례를 안 받고 국제화시대의 거센 물결에 덜 씻겼기 때문이라는 날씬한 설명은 다른 차원에서 따질 일이다. '한 많은 역사의 奧地'에서 역설적으로 명맥을 잇고 있는 '그것들'은 반가웠다. 소중해보였다.   시리즈의 이름 한번 멋들어지고 하나하나의 책 제목마저 구어체여서 희한한 《민중자서전》을 보자 나의 이런 생각은 가중되었다. 그러나 곧 부끄러웠다. 지척에 보물을 두고 먼데 있는 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내력에 길들여졌달까. 한동안 자신을 키워준 母胎를 까맣게 잊고 남의 장단에만 정신이 팔려 나대던 자의 놀라움 또한 컸다.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모른다. 명색 글을 팔아먹고 살면서, 이 책의 주인공들이 구술한 토박이 말을 편집자가 따로 붙인 '주석'을 읽고서야 '해득'하는 어처구니없는 반성은 마침내 내 것이었다.

 전에 나온 5권에 이어 다섯권을 한묶음으로 펴낸 이번 《민중자서전》은 그런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리말의 아름다움 어쩌고 하는 지적은 접어두기로 한다. 우선 맛이 있다. 절로 나오는 친근한 웃음은 내남없이 잊고 살아온 먼먼 고향의 고삿길이나 거기서 꾸밈없이 살던 民草들의 숨결과 맞닿게 하면서, 모국어의 감칠맛과 抒情을 눈물겹게 확인시킨다.

 "내가 공부나 쪼깨 했으면 편히 살 것인디, 요런 후회가 많이 되지라우. 나같이 복얼 못타 갖고 죽도록 일만 허고 그릏게 사는 것이 안 산 것만 못하다 이런 맴이 들어라우."(남도 전통 옹기쟁이 박나섭)

 "잘 매야 짜기가 숩고 벗바댁이도 좋니더. 한 군데라도 몬 매놓마는, 풀이 힘이 없으마는, 털이 일나 가지고 몬 짜고, 또 간도 적당히 옇야 되지. 간을 많이 옇문 눅어 가지고 몬짜니더."(안동포 길쌍 아낙 김점호)

 국어학자들의 붓을 빌려 각 지방의 토속어에 대한 해설을 책마다 붙인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이 책들의 또하나의 특징은 사라져가는 우리 풍물의 되살림에 있다. 방금 말한 두 분 외에 '영남반가 며느리 성춘식'할머니, ‘진도 강강술래 앞소리꾼 최소심'할머니, 그리고 '천리포 어부 서영옥'할아버지 등이 그런 '업'을 가진 분들이다. 인간문화재라든가 전통문화전수자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어떤 고장의 붙박이로 살면서 산천경개의 한 자락처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동네마다 느티나무가 있고 드물게는 탱자울타리가 쳐 있듯이 말이다.

'묻힌 삶' 다시 꺼내 큰 의의 부여

 하지만 거기에는 다소곳이 분수를 지키되 질긴 뿌리로서의 민족을 지탱해준 힘의 원천이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험난한 고생을 온몸으로 떠안은 생애를 보냈으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걸 맞받고 이겨낸 이들은 그러므로 위대해뵌다. 이 책을 이름없는 민중이 '입으로 쓴' 자서전이라고 내세운 편집자의 의도도 여기 있을 터이다. 글쓰기와는 인연이 멀어 입으로 자기들의 한평생을 각각 낱권으로 엮었을 망정 독자는 그래서 더욱 재미가 있다. 옛날의 사랑방에서 목청 좋은 마을 지식인이 《심청뎐》이나 《유충렬뎐》을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마냥 줄줄 읽으면 덩달아 흥분하고 슬퍼하던 장면을 떠올리지 말란 법이 없다.

 대부분 반년 동안에 걸쳐 본인의 구술을 듣고 글로 옮긴 편집자의 세심한 주의력과 잘 배치된 사진효과가 돋보인다. 길쌈의 과정이나 옹기의 역사 등을 도표와 삽화를 곁들여 설명한 것은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묻힌 삶'을 오늘 다시 꺼내어 큰 의의를 부여한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