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이루는 경상도 '문둥이'
  • 만진 (작가)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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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비가 오고 있다. 빗줄기 사이로 가물가물한 가로등 불빛이 비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희뿌연 전등으로는 아무것도 명확하게 볼 수가 없다. 안경알을 온통 적셔 시계 제로 현상을 일으켜버리는 빗물만큼이나 슬픈, 아스라한 가로등 불빛을 아파하며 한 사람의 '경상도 문둥이'가 지금 이 순간 잠을 이루지 못한다. 뜨끈뜨끈한 온돌방과 사랑하는 가족들, 새벽 3시 비오는 밤…. 깊고 달콤한 숙면을 위한 충분한 조건일 듯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불면의 늪을 헤매이고만 있다.

 무엇 때문일까. 링컨이라는 텁석부리가 만들었다는 말 "투표는 총알보다 무섭다" 때문일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어로 스스로의 제국주의성을 자랑해온 어떤 나라 사람이 지어낸 말,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보다도 어렵다“때문일까.

 그래, 그가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혹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최후 통첩'으로 후보 한 사람을 사퇴시켜 버렸다는 보도를 확인하면서, 그리하여 유권자로서의 투표권이 제한되어버린 대구 서갑의 시민들이 "와 이렇노? 머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우째 꼭 대통령선거만 같노? 기라성 그튼 국회의원덜이 인자 막 입후보헌 사람의 말단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을 다 해쌓고 와카노? 정호용이 하나한테도 몬 이기서 저 난리를 지기는 정부가 도대체 무슨 일을 똑바로 할 수 있겠노?"라며 떠들어대는 힐난을 들으면서도,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그 말을 신뢰할 수 있을까?

 정보기관에서 내내 그 후보를 미행해댔다하고, 선거 자금줄을 차단시켰다고도 하고, 야당에서는 대통령을 선거법 혹은 형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가만 생각해보면, 10월유신과 삼선개헌의 박정희 전대통령, 5 · 17과 삼청교육대등의 전두환 전대통령, 이번의 정호용 사퇴와 관련되어 있다는 노태우 현대통령이 모두 이곳 대구쪽 사람임을 되새겨보면, 같은 '경상도 문둥이'로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채 뒤척이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호용이 사퇴를 하기까지의 과정이 반민주적이고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놀음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새벽을 뜬눈으로 밝히고 있는 것이 만약 아니라면? 그렇다면, 또 다른 무슨 이유가 그로 하여금 불면의 늪을 헤매이게 하고있는 것일까?

 대통령 경제수석으로서 지금의 이 경제적 엉망진창을 책임지고 심하면 파면되었거나 또는 엄한 추궁을 당했어야 마땅할 사람을 후보로 내세워 3당합당의 정당성과 TK단합의 계기를 얻어내려는 대통령과 거대 여당의 당당스러움이 놀라워서? 아니면, 그 민자당의 공천을 꿈꾸다가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갑자기 지조를 부르짖으며 목청을 돋우고 있는 무소속 후보가 우스꽝스러워서?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과연 '경상도 문둥이'들을 불면의 깊은 늪으로 밀어넣었을까?

 새벽비, 유세장에 널려 있던 폐휴지들을 녹여 없애고 허공 속에 떠돌고 있을 각 후보들의 표리부동한 빈소리들을 말끔하게 씻어내릴 새벽비, 그 빗소리를 들으며, 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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