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 안 맞는 美군사정책
  • 위싱턴 · 이석열 특파원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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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니 국방 '對蘇강경론 獨唱'에 웹스터 CIA국장 등 이견…"부시의 對의회 전략"추측도

미국 의회에서 요즘 부시 행정부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은 하원 민주당원내총무인 리처드 게파트 의원이다. 그는 80%가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유례없는 인기에 민주당 지도부가 꿀먹은 벙어리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넋을 잃고 있는 요즘, 기회만 있으면 부시를 공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안목이 전혀 없는 대통령인 부시는 일을 능동적으로 해결해나간다기보다 일에 끌려가는 형편"이라고 정치적인 결단에 한발씩 늦는 부시를 걸고 넘어지면서 "대통령의 입에서 냉전이 끝났다는 말이 아직 없으니 국민들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게파트 의원 말대로 부시 입에서 냉전이 끝났다는 말은 한번도 나온 일이 없다. 다만 "바야흐로 우리는 새 시대로 접어드는 문턱에 이르렀다"는 엉거주춤한 말밖에 한 일이 없다. 문턱에 다다랐다는 말은 아무래도 구시대쪽에 무게를 더 두고 한 말로 들릴 수도 있다.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이 소련을 잠재적인 敵으로 보고 국방력을 계속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냉전시대의 발언'을 새해 예산안을 다루고 있는 의회에 나가 개진하던 날, 의회의 다른 위원회에서는 윌리엄 웹스터 CIA(중앙 정보국) 국장을 불러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 증언을 들었는데 웹스터 국장은 소련이 미국을 상대로 정면대결을 할만한 처지가 못 된다고 말했다. "소련의 놀라운 정치적 개혁이 몇가지 결정적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되돌아설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마당에 소련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웹스터 국장의 증언은 "소련이야말로 마음만 먹으면 아무때고 미국을 전면 공격할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를 계속 양산하고 있는 만큼 미국은 군사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된다"는 말로 스스로 對蘇 강경론자를 자처하고 있는 체니 장관의 주장을 송두리째 뒤엎는 발언이었다.

 3천30억달러에 달하는 군사비를 새해 예산으로 내놓고 의회의 눈치만 보고 있는 체니 장관은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웹스터 국장의 증언을 빌미로 국방부 예산을 대폭 깎아야 한다고 팔을 걷어 붙이자, 다음날 한 텔레비전방송 기자와의 회견에서 "웹스터의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은 뒤 "대통령이 예산에 대해 의회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웹스터가 좀더 자제를 했어야 옳았다"고 시종 못마땅한 눈치를 보였다.

 

국방부 안에서도 체니는 四面楚歌

 그러나 웹스터 국장의 발언이 사전에 백악관은 물론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의 ‘결재'를 받은 것이라는 소문에 비추어 정보국장의 말이라기보다는 부시 행정부의 견해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군사비 지출과 관련, 대통령의 입장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對蘇강경론을 굽히지 않고 있는 체니 장관은 최근들어 드물게 정력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체니 장관이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펜타곤(국방부) 내의 소련전문가조차도 장관 의견과 상치되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관보좌역인 소련전문가 필립 피터슨씨는 최근의 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고르바초프가 실각하는 경우에도 소련은 동유럽을 무력으로 관장할만한 처지가 못된다"고 밝히면서 "바르샤바동맹은 이제 하나의 통합된 군사체제로 존립하는 게 아니다"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그뿐아니라 펜타곤 산하 방위정보국(DIA)도 장관의 입장에 등을 돌려 "어떤 경우에도 소련은 군사적 위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중앙정보국장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정보기관의 일련의 판단에 합참의장 콜린 파월 대장도 동의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아 四面楚歌속에서 체니 장관 혼자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군사비 지출도 줄어들어야만 한다고 군사비의 대폭삭감을 예고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평화배당금'을 사회복지부문으로 돌릴 것을 주장하고 있는 의회의 여론을 외면한 채 부시 행정부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군사비를 책정하여 예산을 짠 것은 의회가 상당 부분을 깎을 것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이고 체니 장관이 엄살을 부리는 것은 '의회가 칼질을 덜하게 하는 제동역할'이라는 말도 있다.

 행정부의 계획대로라면 1994년까지 펜타곤은 2백10만명의 병력 중 30만명을 감축하도록 돼 있다. 육군은 28개 사단이 없어지고 해군 함정 5백60척 중 60척 정도가 퇴역하게 되며 공군은 36개 전술전투기부대와 지원단 중 5개 비행단이 해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만한 규모가 떨어져나가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더이상 깎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체니 장관의 입장이다.

 

소련공포증은 미국 대외정책의 원동력

 한편 미국 정치문화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는 견해를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소련공포증이야말로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를 지배해온 원동력인 동시에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합리화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 것이 사실이고 또 이러한 분위기에서 냉전의 중요성은 때때로 과장되게 마련이며 이런 결과로 국민여론 통합이나 정치적 단결력의 응집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고 지적, 무서워 해야할 적이 없는 시대를 맞아 갑자기 허탈해진 미국사회가 허둥지둥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적의 대역을 찾아 헤매면서 스스로의 결함이나 과오를 남에게 떠넘기려는 버릇이 생기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대표적으로 경제환경의 악화로 일본을 소련 대신 '제1의 적'으로 삼게 되는 위험한 풍조가 일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부시는 제2세대 레이건주의자”

 정치평론가들은 지금 미국사회의 특징은 극단적인 진보주의나 보수주의가 다같이 쇠퇴하고 중도적 실용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자유주의자들의 시대가 이미 끝난 것과 같이 레이건 정권 8년 동안 전성기를 보인 보수주의도 지금은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부시행정부의 노선을 '제2세대 레이건주의시대'로, 혹은 중도에 가까운 신보수주의의 새로운 출발로 보는 견해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전국45개 보수주의 정치 및 사회단체 총회에 불참, 거리를 두는 대신 흑인 인권단체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뜻밖에 흑인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일이라든가, 심지어 낙태문제에 대해서도 느슨한 태도로 여유를 보인고 있는 것은 여론의 방향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태도로 평가되고있다.

 댄 퀘일 부통령이나 체니 국방장관이 전략방위계획(SDI)에 거의 종교적인 태도로 열성을 보이고 있는 반면 부시 대통령은 체면유지책으로 뜨뜻미지근한 입장을 보여온 것도 그의 정치적 감각이 여론의 향방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세금을 올리지 말고 정부예산을 아껴 적자를 줄이고 레이건이 실패한 환경문제나 사회복지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제2세대 레이건주의자 부시대통령은 모든 악역을 퀘일 부통령과 체니 국방장관과 같은 충성자에게 맡긴 채 자기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방예산을 줄이라는 여론이 71%(CNN-TV와 《타임》공동조사)인 자명한 일을 놓고 상처를 입을 만큼 미련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 좋아하라고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을 하란 말인가. 정치가는 절대로 속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매사에 신중한, 그래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가는 부시의 오랜 신념이라는 것이다.

 

샘 넌도 부시의 새 군사전략 실패를 공격

 국방비문제에 대해 그동안 입을 다물어온 상원 국방위원장 샘 넌(민주 · 조지아州) 의원은 3월22일 상원 본회의에서 최초로 그의 입장을 밝히는 연설을 했다. 넌 위원장은 "부시행정부가 소련과 동유럽의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군사전략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난한 뒤 "91년도 예산을 88년의 위협과 전략을 바탕으로 짜서 될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넌 의원의 연설이 있기 하루전에 체니 국방장관은 미국 전국기자클럽 오찬에 연사로 나와 거듭 강력한 방위능력을 주장했는데 특히 의회를 향해 포문을 다시 열었다.

 "의회는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는 않고 불평만 하고 있다"고 쏘아붙인 체니 장관은 "국방비 삭감을 가장 많이 해야 한다고 악을 쓰는 의원들이 막상 자기 선거구내 군사비 삭감이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키고 반대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의회가 펜타곤의 계획을 상세히 밝히라고 하지만 지금 한창 소련과 군축문제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판에 우리 속을 다 내보이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되물었다.

 오는 10월1일부터 집행되는 91년도 예산은 4월부터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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