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 자리잡아도 큰 변화는 없다
  • 정리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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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김일성 이후'의 북한

북한의 권력승계와 '김일성 이후'의 모습에 대해 북한문제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본다.

참석자 : 金南植 (평화연구원 연구위원)

         梁好民 (한국논단 대표)

         丁世鏡 (사회 · 세종연구소 교수)

 정세현 :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갑자기 서두르게 된 배경에 대해 항간에는 김정일에게 국가주석직을 승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읍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북한이 소련 및 동유럽의 변화 양상들에 대해 새로운 국가기관의 창설이나 정부 차원의 조치를 통해 나름대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특히 동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당제 움직임에 대응, 천도교청우당이나 조선사회민주당 쪽의 인사들을 외형적으로 부각시키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하여 다당제 요구 등 국내외적 압력을 무마하려 할 것입니다.

 김남식 : 대체로 동감입니다. 최고회의선거를 올해로 앞당긴 것은 관례상 올해에 열리기로 돼 있던 당대회를 소련 및 동유럽의 사태변화로 인해 내년으로 연기하게 되면서 불가피하게 취해진 조치입니다. 또 시기를 소련 및 동유럽에서 자유총선이 있는 3~6월 사이로 잡은 것은 이들 사회주의권의 선거 기간에 맞추어 북한 나름의 사회주의 발전 논리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정리해서 발표하려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한의 권력승계는 국가주석 승계 다음에 당총비서 승계 식의 단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현재의 수령인 김일성으로부터 미래의 수령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의 최고회의 선거는 김일성 · 김정일체제를 강화하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준비하는 정도의 성격을 띠게 될 것입니다.

 양호민 : 경제문제의 중요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북한은 지금 3차 7개년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목표연도인 93년까지 몇년 남지 않은 올해에 후반기 총괄을 하려고 하지 않나 생각 됩니다. 김정일에의 권력승계는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번 최고회의선거에서는 이데올로기 문제는 당에서 결정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경제정책을 재검토하고, 대외정책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겠는가 보입니다.

 정세현 : 김정일 승계문제는 이번의 최고회의선거와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앞으로 언제 이루어져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로 일본에서 나온 정보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테크노크라트들 중에는 김일성 이후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김정일을 전면에 내세워 그로 하여금 새로운 정책방향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경우 김정일 시대에는 김일성 시대와는 다른 정책 방향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할 것은 김정일이 김일성 없는 시대의 김일성주의를 이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대내외 정책이 변화는 하겠지만 눈에 띌 만큼의 변화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김남식 : 북한은 70년대부터 후계체제를 구축해왔기 때문에 김정일 체제는 오늘날 상당히 강화된 것으로 봐야 됩니다. 사실상 김정일에 의해 북한의 이데올로기 및 대내외 정책이 수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김정일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급격한 정책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김정일 세대는 김일성 항일 빨치산 세대와 달리 새로운 환경에서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보다는 합리적 · 현실적으로 융통성 있게 대내외정책을 추진하리라 봅니다.

 양호민 : 김정일의 권력기반은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 엘리트층 · 군부 · 당중앙위원회 등 세부분으로 구성돼 있읍니다. 그런데 북한의 향후 정책방향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일성이 지난 86년 있었던 제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행한 연설입니다. 그 연설은 현재 소련 및 동유럽의 개혁방향과는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바탕에는 엄연히 사상혁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노선을 김정일도 역시 지켜나가리라 봅니다. 물론 북한은 이런 방식으로 자기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생활문화의 측면과 대외정책에서는 신축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활문화는 지금도 조금씩 바뀌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히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대외정책에서는 남한의 북방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 일본 · 서유럽 등에 대한 정책을 계속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정세현 : 앞으로 문제는 북한이 대외정책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 대내적으로 폐쇄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대외개방을 통해 북한주민들의 외부접촉이 계속 확대되고 생활문화적 차원의 시혜적 변화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내지 접촉의 요구로 번질 경우 체제의 위기가 올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김남식 : 소련 및 동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변화는 3~6월 사이의 자유총선을 계기로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되면 일단 안정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6월 이후 사회주의진영은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개혁사회주의 흐름과 중국 북한 쿠바 알바니아 베트남 등 이념과 권력구조상 소련 · 동유럽처럼 개혁을 할 수 없는 후진국 사회주의의 흐름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북한은 동유럽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또 권력구조, 당, 이데올로기에서 북한과 비슷한 중국이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전망에서는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 일본 서유럽 등과의 관계개선도 지금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겠지만 체제의 특성 때문에 그 폭은 상당히 제한될 것입니다.

 양호민 : 문제는 등소평 이후 중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인데 여기에 북한은 크게 좌우될 것입니다. 동유럽으로부터 이데올로기 침투가 있다 해도 북한의 변화는 동유럽과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는데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가 오래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정세현 : 김정일이 설령 제거된다 해도 그를 대체할 만한 또 다른 세력이 북한에 등장할 수 있는가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정치적 반대자들이 거의 제거되어 버렸기 때문에 기존의 북한정책과 정반대의 입장에서 변화를 추구해나갈 수 있는 세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국 김정일이 제거된다 해도 현재의 당정기관의 중견간부들이 이끌고 나갈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김일성 · 김정일 체제의 연속선상에서 조금 변화하는 정도밖에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김정일 체제하에서는 대외정책에서 유연성이 나타날지 모르나 남북관계의 급진전은 성급한 기대가 아닐까요? 

 김남식 : 지금 말씀하신 것에 대체로 동의합니다만 남북관계가 90년대에도 아무런 상황변화 없이 계속 갈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90년대에는 크게 세가지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째는 북한에 김정일체제가 들어서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고, 남한에서도 앞으로 두세차례의 선거를 통하여 세대가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두번째는 남한에서 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하게될 것입니다.  미군의 단계적 철수는 남북관계의 상황전개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현재의 국제정세나 미 · 소 데탕트 분위기를 살펴볼 때 거의 확실시됩니다. 세번째는 남북의 공존체제가 현재와 같은 휴전상태로는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뭔가 공존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보는데 그 형태가 국가연합형태로 될 것인지, 고려연방제 형태로 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는 앞으로 10년 동안의 남북의 상황전개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양호민 : 그 문제는 앞으로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연방제냐 국가연합이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체제의 동질성이 있어야 가능한 문제입니다. 남북한이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김정일체제의 북한이 남조선혁명에 의한 남조선해방론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세현 : 정권 초기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력을 정착시키기 위해 남조선해방론쪽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대내적인 통치기반이 확고하게 잡히면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변신을 모색하겠지만 그 범위는 안과 밖의 힘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최근의 한 · 소관계의 급진전이 북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할까요?

 김남식 : 한 · 소관계에서는 소련의 입장에 대해 잘 알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소련에 대해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소련의 기본 입장은 국익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북한은 소련에 이로우면 이로웠지 결코 손해가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때문에 소련으로서는 북한을 버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과의 관계는 소련이 영사관계의 개설 정도에서 만족하려 하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남북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따라 소련도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정세현 : 한 · 소관계가 일반대표부의 설치까지는 가겠지만 대사관계까지 갈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한 · 소관계가 좋아진다고 해서 북한 · 소련관계가 나빠지는 식의 제로섬게임도 아닙니다.

 양호민 : 한 · 소간의 국교정상화는 소련이 당장 서두를 것이라고 보이지 않고 한국이 사회주의권과 전부 국교를 수립하면 마지막에 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북한은 소련의 동맹국이고 대외적으로는 소련의 세력권이기 때문에 소련이 그렇게 간단하게 북한을 버릴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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