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사회도 ‘분단’위기 기대와 반감 엇갈려
  • 문정우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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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중국·親대만으로 양분…변화에 대한 불안감은 공통


지난 8월24일 오후 4시 서울 대만대사관 孫文 동상 앞에 모인 2천여 화교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40년 동안 그 자리에서 펄럭여온 청천백일기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나왔다. 40대의 한 남자는 “하루 아침에 40년의 우의를 저버린 한국정부의 이번 결정은 국제정의를 무시하고 6·25 때 중공군의 총칼에 숨져간 한국민 자신의 희생을 짓밟는 것이다”라고 부르짖었다. 같은날 인천화교협회 담장에는 “□大的 □□, 不□□頭草”란 내용이 씌어진 대자보가 나붙었다. “화교는 위대하다, 절대로 담장 위로 머리를 내민 풀잎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즉 중국이 들어오더라도 대만에 대한 의리를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이다.

 하지만 이같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한·중수교에 대한 2만여 화교의 정서를 모두 대변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청천백일기가 내려지던 날 서울 시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한 대형 중국음식점에서는 중국무역대표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수교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자리를 마련한 사람은 화교사회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또 같은날 인천시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에서는 많은 화교가 화교협회 담장에 붙은 대자보를 가리키며 기자들에게 “저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개중에는 “대만정부가 우리에게 그동안 무엇을 해주었다고 비통해 하겠는가. 중국 대사관이 들어오면 일등으로 달려가 국적을 바꾸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중수교를 바라보는 화교들의 감정은 이같이 ‘분단’돼 있다. 그동안 대만정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은 분개하고 있지만 국민당 정권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한·중수교에 대해 반감을 품고 있는 사람이 어쩌면 소수일지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중수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중국이 대만보다는 화교의 권리를 훨씬 더 잘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중국에 가보고 놀랐습니다. 중국정부는 본토인은 아이를 하나밖에 못낳게 규제를 하고 있는데 조선족은 두명까지 낳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더군요. 또 양식배급도 조선족이 본토인보다 오히려 더 많이 받고 있었어요. 만약 중국대사관이 들어오면 한국정부도 화교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외국인 통장인 인천 북성동 화교촌 韓正華(47)는 한·중수교가 화교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한씨는 한국정부의 견제로 그동안 화교사회가 위축될대로 위축됐는데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펴온 중국정부가 한국정부의 상대가 되면 화교사회는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만정부는 한국교포들로 하여금 절대로 부동산을 살 수 없도록 하는 등 철저하게 자국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한국정부의 규제에 대해서 이의를 달기 힘들었지만 중국은 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한ㄱ궂어부는 화교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해방 직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화교수는 모두 8만여명에 달했다. 그러던 것이 40여년이 지난 오늘 화교들의 숫자는 4분의 1 정도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본토를 상대로 장사를 하던 무역회사들이 대부분 도산을 해버린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정부가 출입국관리법의 규정에 의해 화교들이 마음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도록 발목을 붙잡은 까닭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화교에게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영주권이란 것이 없다. 그들은 이땅에서 3대를 살아왔더라도 3년마다 한번씩 체류기간을 연장해야 하는 영원한 이방인의 신세이다. 또 토지도 2백평 이상을 소유할 수 없으며 기업의 대표도 될 수 없다. 그들 말마따나 “짜장면 장사밖에 할 일이 없는 처지”인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들 교육이 걱정스럽다” 

 따라서 많은 수의 화교가 살길을 찾아 미국과 일본·호주·대만 등지로 떠나갔다. 한 때는 인천 인구의 16%를 차지했던 북성동 차이나 타운은 이제 경제능력이 없는 화교 1세대의 ‘양로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또 한국에 남아 있는 2~3 세대는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점점 많은 숫자가 한국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하고 있다. 서울 명동에 있는 화교 소학교의 한국인 어머니 숫자가 이제는 화교 어머니 숫자를 앞지를 정도로 그들은 급속도로 한국에 동화돼가고 있다.

 해방 직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무역회사를 경영했다는 화교 張모씨(67)는 “한국정부가 화교를 견제한 것은 한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잘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동남아처럼 모든 상권은 화교에게 넘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경제력도 크게 성장한 만큼 화교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씨는 또 “만약 중국 고위층이 한국을 방문해 차이나타운을 보여달라고 하면 한국 관리들이 이같이 쇠락한 중국인 마을에 그들을 데려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한·중수교에 대해 화교들 사이에선 반감과 기대가 엇갈리고 있지만 아마도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앞으로 닥쳐올 변화에 대한 불안감인 듯하다.

 대사관에서 청천백일기 하강식을 지켜보았다는 한 50대의 화교 남성은 “화교사회가 둘로 갈라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화교사회의 상층부가 벌써부터 친중국, 친대만으로 편이 갈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국기하강식 때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화교 유지 가운데는 이미 중국측과 활발한 접촉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 평창동에서 잡화상을 경영하고 있는 이륙례씨(남·47)는 “무엇보다도 아이들 교육이 걱정스럽다”고 얘기했다. 이씨는 “장개석은 훌륭한 사람이고 모택동은 둘도 없는 나쁜 사람이다”라는 식의 대만식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이 갑작스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된다고 얘기했다. 이씨는 5학년짜리 아이가 앞으로 중국대사관이 들어올 것이란 방송보도를 듣고는 “앗, 큰일났다. 나쁜 놈들이 몰려온다”고 말하더라며 난감해 했다. 또 명동 소학교 교사인 이모씨는 “어쩌면 김일성 주석을 조선혁명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중국교과서를 가르쳐야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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