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현실’ 노래하는 뮤직 비디오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문화 이끄는 뉴 미디어…‘문화침략’ 규정보다 정확한 파악 절실


  1969,1981,1983, 그리고 1990년. 뮤직비디오의 이력서를 쓸 때 빼놓은 수 없는 ‘사건’이 펼쳐졌던 해들이다. 뮤직 비디오광이라면 위 연도에 각각 우드스톡 축제,뮤직 텔레비전(MTV) 등장, 마이클 잭슨 (스릴러), 뉴 키즈 온 더 블록 <스텝 바이 스텝> 발표를 대입하면서 그때마다 진보를 거듭해온 뮤직 비디오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다.

 뮤직 비디오의 ‘나이’는 요즘 신세대와 같은 20대이다. 공연 실황을 화면에 담는 뮤직 비디오가 20대 중반으로 맏형이고, 비디오 클립(연출에 의해 만들어진 뮤직 비디오)은 이제 막 10살을 넘었다. 이 뮤직 비디오는 형제의 부모는 여럿이다. 대중음악 영화 텔레비전 광고(CF) 컴퓨터 등이 합동결혼해  낳은 ‘혼혈신종’이 뮤직 비디오이다. 그런데 이 신종이 벌써부터 부모들의 권좌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비디오족이라고 명명되는 신세대를 제외하면, 뮤직 비디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국내 텔레비전의 뮤직 비디오 관련 정규 프로그램, 주한미군 방송과 홍콩 스타텔레비전의 위성방송(MTV, 81면 관련기사 참조), 그리고 레스토랑과 (록)카페, 노래방은 물론 홈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수시로 뮤직 비디오에 노출되고 있지만, 기성세대는 ″요즘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신풍속″정도로 지나친다. 대중문화가 후기 산업사회의 지배논리와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학계의 자각도 최근의 일이다.

 학자들은 현대의 미디어를 하나의 환경이라고 본다. 새로운 미디어, 뮤직비디오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떤 구조와 논리를 갖는 것일까. 이 ‘새로운 질문’에 답하려는 젊은 학계의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형곤씨(서울대 신문학과 박사과정)와 안영노씨(연세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의 논문이 그것이다. 김형곤씨는 최근 한국사회언론연구회가 엮은 ≪‘포스트’시대의 비판언론학≫(한울 펴냄)에 <새로운 영상매체·뮤직 비디오>를 발표했고, 안영노씨는 석사논문으로 <록 카레에서의 젊으이 문화>를 제출했다 .김씨가 미국 학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뮤직 비디오을 분석·평사했다면, 안씨는 오디오시대에서 비디오시대로 넘어가는 국내 매체환경의 변화 맥락에서 뮤직 비디오 현상을 관찰하고 있다.

 요즘 뮤직비디오라고 불리는 새로운 영상 매체는 1969년 뉴욕 근교에서 벌어진 우드스톡 축제를 통해 잉태된다. 김형곤시는 이 축제를 계기로 음악영화는 그간의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탈피 “예술적인 구도, 다중영상들, 온갖 종류의 음향의 병치 등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확보했다고 보았다. 제2세대 뮤직 비디오, 즉 비디오 클립은 880년대 초 대중음악 산업이 불황을 맞으면서 태어났는데, 여기에는 비디오 게임과 같은 첨단 오락과 비디오 플레이어의 보급,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 등이 맞물렸다 1983년 마이클 잭슨이 앨범 <스릴러>를 제작하는 과정을 담는 비디오 <스릴러 만들기>는 45만개나 팔려나갔고, 1990년에 제작된 뉴 키즈 온더 블록의 비디오 <스텝 바이 스텝>은 3백50만 개나 팔려나갔다.

 90년대 들어 비디오 클립은 더욱 적극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나 CF와의 영상적인 경계를 무너뜨렸다. 뮤직 비디오는 “마치 맹렬한 스피드로 달리는 특급열차의 창문으로 역 이름을 읽으려 할 때 느끼는 혼돈감”을 전달한다고 김형곤씨는 밝힌다. 이 혼돈의 형식과 내용은“감정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관계를 약화시키고 현실과 (뮤직 비디오가 형성시켜주는) 이미지 사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포스트 모던 상황”을 만든다.

 이미지와 시공간의 다양한 ‘편집’인 뮤직비디오는 현실(감각)의 재현을 거부하고 시공간을 파편화한다. 이런 수법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계속 비디오 앞에 머무르게 한다. 그 까닭은 수용자들이 원하는 현실감각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충족되지 않고 늘 보류되기 때문이라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 프레데릭 제임슨은 지적한다. 뮤직 비디오는 꿈의 구조와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면서, 광고를 보며 뮤직 비디오의 속도를 교육받은 신세대를 불러모은다. 뮤직 비디오는 꿈의 구조와 유사한 자신의 구조를 통해 사회적 삶의 불만에 대한 즉각적이고 손쉬운 대안을 제시한다. 김씨는 “역사와 비극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유토피아”가 뮤직 비디오의 공간이며, “정신분열증적 혹은 꿈과 같은 서술구조를 자신의 문법”으로 삼고있는데 바로 그 속으로 “어딘가에 속하고 싶어하는 (부모가 없는 세대인) 청소년들의 불안한 감정이 빨려들어간다”고 분석하낟.

 뮤직 비디오라는 새 매체는 사회적 비판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지만 그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위 논문은 “뮤직 비디오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것”이란 캐플란의 말을 빌려“청소년 수용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 뮤직비디오의 활력과 (부르주아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적이고 아방가르도적인 측면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라고 진단한다.

“뮤직 비디오는 아직 희소성의 차원”

안영노씨는 뮤직 비디오응 하나의 텍스트로만 접근하는 분석 방법은, 뮤직 비디오의 내적 구조를 독해하는 데 유효하지만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뮤직 비디오의 내부에만 집중할 경우 뮤직 비디오가 놓여 있는 매체 환경의 차이를 놓친다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 분석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이나 미국이나 동일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뮤직 비디오는 일상성의 차우너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희소가치가 있는 특수매체”라고 안씨는 규정한다.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홈 비디오가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카페로 뮤직 비디오를 ‘보러’ 간다. 한국에서 뮤직 비디오는 미국처럼 텔레비전이 아니라 ‘영화’인 것이다.

 오디오에서 비디오로 이행하고 있는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안씨가 주목하는 대목은 “한 매체가 희소성을 지나 일상성의 단계로 정착하면 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그 매체를 대한다”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는 가사(언어)보다는 영상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상품미학론 주창자인 하우크가 말하는 ‘감성의 鑄造化’가 용이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뮤직 비디오가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과 소비형태를 변화시키면서 감성을 규격화한다”고 안씨는 밝힌다.

 “뮤직 비디오를 문화침략이라고 규정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식’ 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할 때의 ‘우리 식’을 정확히 파악해야 문화침략에 대한 방어가 가능하다”고 안영노씨는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