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활력을 잃은 까닭
  • 박순철 편집위원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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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는 가난한 나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도 안된다. 그나마 이 숫자의 뒤에는 엄청난 빈부격차의 존재가 가리워져 있다. 이것은 인도의 빈곤에 또 한겹 고통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좀 오래된 통계지만 캘커타시에서는 1백명 가운데 17명쯤은 길거리를 거처로 삼고 살아간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위에서 태어나고 먹고 자고 죽어가는 것이다. 

  힌두교· 불교 등 세계적 종교들의 고향인 인도. 탁월한 정신적 능력을 지닌 8억의 인도인들이 독립 이후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절한 빈곤의 상태에 남아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도의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제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인도인은 운명적으로 수백가지의 카스트 가운데 하나로 태어난다. 가령 백정이나 장의사 카스트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천재적인 머리나 다른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것을 살릴 길이 거의 없다. 거기에다 인도의 권위주인적인 관료제도는 민간에 대해 또 다른 차원의 카스트가 되어 사회적 발전을 질식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기회와 희망이 근본적으로 박탈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는 물론 인도의 상황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최근 우리사회도 일종의 ‘의욕상실증후군' 같은 것이 크게 번지고 있는 듯싶다. 얼마전 대폭적인 개각으로 경제팀의 새 리더로 등장한 李承潤부총리는 취임 직후 우리경제가 투자부진, 물가불안, 국제수지 악화 등의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기업이나 근로자들의 의욕이 저하되고 있는 점이다. 기업인들은 문 닫을 생각이나 하고 근로의욕도 예같지 않다"고 그 심각성을 지적했다. 경제가 경제주체의 활동의 총화라면 기업인들이 사업할 의욕이 없고 근로자들이 일할 기분이 안 나는데 경제가 잘될 리가 없다.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전쟁에 이기지 못한다. 생산주체들의 의욕상실은 거시경제지표들의 부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근면이 불익당하고 부동산투기가 '포상'을 받는 세태 

  지난 30년 가까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신명이 나서 뛰던 한국 기업인들과 국제적으로도 근면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우리 근로자들의 의욕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문명비평가 謝世輝가 장차 일본마저 추월하리라고 믿었던 한국경제의 무서운 활력이 어쩌다간 봄눈처럼 맥없이 스러진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사회적·경제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쉽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이유는 부동산투기에 따른 거대한 불로소득의 발생과 이로 인한 서민들의 절망감일것이다. 최근 ㄷ일보에 소개된 두가지 사례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재벌기업 사원인 한 사람은 3년전 시가 2천만원의 15평아파트를 1천4백만원에 전세들었는데 그후 전세값은 1년마다 1천7백만원, 2천2백만원, 그리고 올해는 다시 3천1백만원으로 뛰어올랐다. 한편 어느 중소기업인은 3년전 1억7천만원에 사들인 공장부지를 올해 6억1천만원에 팔아 부동산수입이 경영이익보다 훨씬 많았다. 전자는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 해야 한다던 자신의 생활자세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 공장경영이 부업이고 부동산투기가 주업으로 바뀐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예외적인 것이 아니고 전국민을 비생산적인 투기열풍의 피해자 또는 수혜자로 갈라놓는다는 사실이다.

  성균관대 金泰東교수는 땅값 상승을 통한 자본이득이 88년에 2백12조원, 89년에 3백조원 가량으로 이 2년간 연간 GNP가 각각 1백23조원, 1백37조원(추정치)이었음을 비추어볼 때 GNP의 2배에 달하는 막대한 불로소득이 발생했다고 추산한다. 또 이 불로소득의 대부분은 50만명 내외의 땅부자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근로소득보다 엄청나게 큰 불로소득이 발생하고 근로소득의 상당부분이 불로소득자에게 이전되는 상황에서 근로의욕이 유지될 것인가? 근면이 불이익의 '처벌'을 받고 투기가 거대한 이익의 '포상'을 받는 판에 열심히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날 것인가? 가령 어느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은 줄곧 야단을 맞고 놀고먹는 학생들은 상을 받는다면 이 학교의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들 것인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없게 된 책임은?

  과열교육에 대한 비판도 많지만 우리사회에 높은 교육열이 유지되는 이유는 교육에 대해 비교적 공정한 보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하라"고 성화하는 것도 학교성적이 좋으면 언젠가는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얻게 되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어떤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고 그 기회가 열려 있을 때 사람들은 노력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제 나라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한 인도인들이 해외에 이주했을 때 딴사람처럼 변화하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이나 동부아프리카에 이주한 인도인들은 매우 진취적이고 뛰어난 商才를 발휘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제 나라에 머물러 있는 인도인들이 의욕을 잃고 있는 것은 사회가 그들에게 별다른 희망을 주거나 현실안주를 거부할 동기를 주지 않기 때문이며 일단 해외에서 기회의 문이 열릴 때 그들은 딴사람처럼 변하는 것이다.

  한국은 다행히 인도보다는 훨씬 더 기회가 열린 사회이다. 또한 그동안의 방대한 교육투자로 선진국 못지않은 인력자원을 키워왔다. 어떻게 하면 이 큰 잠재력에 활력의 불을 당길 것인가? 여기에는 먼저 '근면=보상'이라는 경제정의 등식이 사회적으로 확립되어야한다. 이는 경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과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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