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생명의 위기 음악가의 직업병
  • 이성남 기획특집부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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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생리적 운동 탓…병 숨기고 활동하기도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도 산업 현장의 노동자들처럼 직업병을 앓는가. 플루트 연주 경력 25년째인 한 연주가는 “악기를 비스듬히 옆으로 들고 서서 하는 비일상적인 연주 자세로 인해 만성적으로 어깨가 결리고 허리와 손가락이 아픈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마사지와 더운물 샤워 등으로 아픈 근육을 대충 풀어준다”고 말한다. 또 연주 경력 30년이 넘은 한 피아니스트는 “온몸을 써야 하는 피아노 연주가에게는 전신의 근육이 뭉칠 때가 많다”면서 아침 저녁으로 더운물 탕욕을 하며 틈틈이 수영으로 온몸을 풀어준다고 한다.

 이같은 예술가의 질병은 콩쿠르나 공연을 전후로 자주 발생한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씨가 부조니 콩쿠르 앞두고 혹독한 연습 끝에 우승했지만 그 직후 팔의 근육이 파열돼 한동안 절망감에 빠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서울시향 단원 44명 중 5명만 멀쩡

 연주가들의 직업병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향 단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상를 실시한 결과 현악기 35명 관악기 6명 타악기 2명 등 총 44명 응답자 중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연주 생활에 불편한 점을 느낀 적이 없다’고 답한 이는 5명뿐이었고, 응답자 대부분은 연주생활중에 손 어깨 목 등에 신체적 불편함을 느낀다고 답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등을 연주하는 현악주자들은 오른손보다 왼손의 불편함이 더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구체적인 증세로는 동통(10) 뻣뻣함(5) 경직(5) 감각 이상(4) 무력감(4) 등을 지적했다. 손 이외 불편한 부위로는 목 및 어깻죽지(16)와 어깨(9)의 통증이 많았으며 3명은 ‘가끔 청각에 이상을 느낀다’고 했다. 또 19명은 ‘연주회 전 정신적 긴장이 신체적 불편으로 표현된다’고 했으며, 불안 초조(14) 불면(2) 동통(2) 경련(1) 같은 구체적 증세를 느낀다고 대답했다.

 시향 연주가들의 직업병 실태는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도 거의 일치한다. 90년에 미국의 45개 교향악단 단원 4천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75%가 악기 연주와 관련된 병을 앓은 적이 있거나 현재 앓고 있다고 대답했다.

 연주가 못지 않게 무용가의 직업병도 심각하다. 무용가의 병은 인체해부학을 고혀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고난도 동작을 구사하려는 데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무용수는 만성적인 허리통증을 갖고 있으며, 은퇴한 발레리나 중 에는 발목 무릎의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이가 많다. 미국의 신체요법사 마사마이어 교수가 “무용수들의 신체는 대부분 정상적이지 못하다‘하고 한 경고는 직업병에 시달리는 무용수들의 실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연을 앞둔 무용수가 연습중 부상했다 하면 그 배역에 다른 사람이 기용되는 일은 무용계에서 흔하다. 숙명여대 신현군 교수 (체육교육과)는 “20대 중반만 되면 무용수의 신체에 이상이 나타나 자연도태된다”고 말한다. 그는 재교육(재활)으로 신체적 이상을 교정할 수 있는데도 새 사람으로 대체하기 위한 ‘물갈이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지적한다. 이때 부상당한 무용수는 육체의 고통보다도 ‘예술 생명의 위기감’ 때문에 더욱 더 좌절한다. 이것은 성악가도 예외가 아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 걸쳐서 예술가의 직업병의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의학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병이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예술가의 속성 탓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예술의학과장 피터 오스트왈드 교수는 “자신의 병을 거부하는 경향 때문에 연주가의 59.6%, 무용가의 25%, 연극 배우의 0.3%만이 의사를 찾는다”고 밝혔다.

 또다른 원인으로는 예술 유형에 따라 다양하게 발생하는 질병을 특정 분야의 한 의사가 다루기 어려운 점을 들 수 있다. 또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예술 행위를 의사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은 의학계의 한계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사인 도로시 타우브만은 이렇게 지적했다. “의사는 궁극적으로 피아니스트를 치료할 수 없다. 어깨 힘과 감정으로 얼마만한 시간차를 두고 연주하는지를 아는 연주가만이 그들의 병을 고칠 수 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미국 의학회는 예술가들의 질병을 규명해 병이 있는 예술가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바이올린 연주가들의 손가락 경련, 호른 연주가들의 마비 증후군, 심벌즈 연주가들의 어깨 근육 통증 등에 대한 의학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도표 참조)

‘직업병’으로 인식해 치료에 나서야

 예술가의 직업병에 대한 인식이 낮은 우리 의학계에도 이같은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가톨릭의과대학 정인설 교수(정형외과)는 ‘91 아스펜 뮤직 페스티벌에서 <피아노 연주시의 운동 범위와 손목관절의 부담>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제1회 미국예술의학협회상을 수상했다. 정교수는 89년부터 1년간 미국 텍사스 테스대학교 건강과학연구소 정형외과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하면서 피아니스트의 직업병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이 실험은 연주가 9명의 손목에 이축성 전기측각기를 끼워 놓고 이들에게 트릴, 아르페지오, 브로콘옥타브, 옥타브 등 기교가 많이 필요한 곡을 연주하게 하면서 그때의 손목관절 운동량을 컴퓨터로 측정한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피아노 연주는 일상 생활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비생리적은 운동이 많이 요구되며, 특히 오른손의 요척운동량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표 참조).

 예술가들은 다치면 예술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평소 운동을 삼가는 등 몸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쓰지만, 정작 자신의 만성적인 직업병에는 무디다. 무대를 포기해야 할 정도가 아니면 의사를 찾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치료를 받아야 할 때도 아는 의사를 비밀스럽게 찾아간다. 그러나 예술가의 병은 결코 수치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열린 마음으로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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