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열망 분출했지만 실행속도는 주춤
  • 본· 금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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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서독총리, 동독총선후 '통화동맹'전제조건 강조

 역사적인 동독총선이 예상을 뒤엎고 3개 보수정당의 선거동맹인 '독일연합‘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선거를 앞두고 실시했던 모든 여론조사에서는 사민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거나 적어도 제1당이 될 것으로 나타난 데 비해 '독일연합'은 20%를 최저선으로 설정하고 선거전을 벌였던 것이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사민당 지지세력이 '독일연합'과 민주사회당(구 공산당)지지로 분열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에 따라 '독일연합'이 사민당을 바짝 추적하기는 하겠지만 거의 과반수를 차지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선거결과는 서독과의 신속한 통일과 이를 통한 생활수준의 조속한 향상이라는 동독 국민의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선거 직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즉각적인 통일, 2년이내의 통일, 4년 이내의 통일, 그 이후의 통일을 원하는 동독인들이 각각 40%, 26%, 14%, 10%로 나타났었다.

 

실질적 승리자는 콜 총리

  '독일연합'이 압승을 거두게 된 이유는 서독의 기민당과 기사당이 막대한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기민당과 기사당은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콜 총리 자신이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고 외치는 청중들 앞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선거지원유세를 가졌다. 유세 때마다 콜은 빠른 시일내에 통화동맹을 실현함으로써 동독인들이 서독 마르크貨를 손에 쥘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콜의 이 공약은 그동안 여론조사 때마다 20%를 넘던 부동표의 대부분은 물론 사민당 표까지도 '독일연합'으로 끌어모으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선거의 실질적인 승리자는 동독의 보수정당들이 아니라 콜 총리"라는 말들도 하고 있다.

  민주사회당이 기대 이상의 표를 얻은 원인에 대해 기지 당수는 "그것은 민주사회당의 거듭나려는 노력에 유권자들이 신뢰를 부여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모드로 현 총리가 동독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큰 신뢰를 받고있다는 점도 득표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모드로 자신이 제1후보로 출마한 노이브란덴 부르크시에서 민주사회당이 전국 평균보다 2배이상 높은 득표율을 올리면서 제1당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수많은 서독 정치인들이 동독선거전에 나섰다는 점이 동독의 자기동질성을 추구하는 일부 동독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민주사회당에 부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 끝으로 통일과정에서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회문제들, 즉 실업·주택 연금 등의 문제는 이에 대한 대책을 가장 분명하게 요구하는 민주사회당의 득표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반해 사민당은 통일을 전면에 내세우는 보수정당들과 통일보다는 사회보장을 강조하는 민주사회당 틈에서 자기 면모를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지지자를 잃은 것으로 보인다. 브란트 명예당수가 서독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인기가 있다는 사실도 사민당의 득표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나아가 '독일연합'이 사민당을 과거 공산당원들의 '피난처'라고 흑색선전한 것도 사민당의 감표요인으로 크게 작용했다. 동독총선 결과에서 또 한가지 두드러진 점은 총선이 있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시민운동조직들의 득표율이 극히 저조했다는 사실이다. '노이에스 포룸' '즉각 민주주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시민위원회'의 선거동맹으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동맹 90'의 득표가 3%를 넘지 못했다. 이들이 서독의 어느 정당으로부터도 지원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동독인들의 소망인 통일에 대해 소극적이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동독총선의 또 한가지 특징은 지역 ·계층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동독 북부에서는 좌파가 우세를 보인 반면 남부에서는 우파가 우세를 보였다. 3개 자유민주주의 정당의 선거동맹인 '자유민주동맹과 '독일연합'은 남부의 튀링겐과 작센 지방에서는 거의 3분의2의 득표율을 올린 반면에 북부의 메클렌부르크와 브란덴부르크 지방에서는 40%내외의 지지를 받았다. 이와는 반대로 민주사회당, 사민당, '동맹 90' 등 좌파정당들의 득표율은 남부에서는 3분의1을 약간 넘었고 북부에서는 거의 60%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대조적 현상은 대도시와 지방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대도시에서는 사민당, 민주사회당, 기민당에 대한 지지율이 각각 26.9%, 27.6%, 26.1%로서 뚜렷하게 좌파적인 경향이 나타난 반면에 소도시 및 농촌에서는 각각 18.0%, 10.0%, 51.7%로서 보수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지역적 차이보다 더욱 특기할 만한 사실은 계층간의 차이이다. 노동자들은 좌파정당에37%, 우파정당에 63%의 표를 던진 반면 지식인들은 정반대로 좌파에 62%, 우파에 38%의 지지를 보였던 것이다. '노동자 · 농민의 국가'로 선전되어온 동독 40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의 관료적 사회주의의 실패를 사회주의 전체의 실패로 선전하는 보수정당들에게 사회주의의 핵심세력으로 간주되던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총선결과 가장 큰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독일연합'은 '자유민주동맹'의 의석만을 합해도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의 열쇠가 되는 동독헌법 개정, 특히 소유관계에 관한 헌법조항의 개정을 위해서는 3분의2 이상의 의석이 필요하므로 사민당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동독기민당의 드 마지에레 당수는 서독 콜 총리와의 협의를 거친 후 사민당에 대연정을 제의했으나 거부당했다. 선거전에서 '독일연합'의 흑색선전 때문에 곤욕을 치른 사민당원들의 반대 전화와 전보가 사민당 의장단에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민당도 '독일연합'과의 정치적 협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는 듯하며 사안별로 협력하겠다는 여운을 남겼다.

  메켈 부당수에 따르면 사민당은 통일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사회문제에 관한 대비책과 유럽통합 과정과의 연결에 역점을 두겠다고 한다. 사민당으로서는 대연정에 직접 참여할 경우 자칫 들러리 역할밖에 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도 야당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따라서 독일 통일과정은 사민당이 대연정에 참여할 경우보다는 완만한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동독선거가 있은 다음날 서독 주식시장에서 오전에는 급등세를 보이던 주가가 오후들어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는데, 이 현상은 당초 사민당도 가장 보수적인 '독일사회연맹'과 민주사회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의 대연정을 공약했기 때문에 서독자본이 가졌던 대연정의 기대가 사민당의 거부로 무산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은 듯하다.

 

서독국민 66% "너무 빠른 통일 좋지 않다" 

  사민당의 연정거부를 감안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선거전에서 동독국민들에게 불어넣은 기대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지 서독기민당은 통일의 속도를 늦추는 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동독의 경제장관으로 내정된 서독기민당 출신의 피로트가 통화동맹, 즉 서독 마르크화를 동독통화로 도입하는 것을 금년 7월1일부터는 실시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서독정부 대변인은 아직 구체적인 시점을 결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콜 총리는 통화동맹의 실현에 앞서 해결돼야 할 전제조건들을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그로서는 서독내 분위기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독의 제2텔레비전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독인들도 거의 압도적으로통일을 지지하지만(82%) 동독인들에 비해서는(91%)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서독인들의 66%는 통일이 너무 빨리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통일이 국민의 복지수준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서독정부의 선언을 서독국민들이 전적으로 믿고 있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동독총선과 같은날 실시된 서독 바이에른주 지방의회선거에서 기사당이 사민당에게 많은 표를 빼앗긴 사실도 서독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콜 총리가 지킬 수 없는 지나친 약속을 동독국민에게 했다"고 판단하는 서독사민당은 콜이 약속을 어길 경우 비판의 화살을 늦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콜이 약속한 생활수준 향상이 얼마나 눈에 띄게 빨리 이루어지느냐와 이를 위해 서독국민이 얼마만한 부담을 져야 하느냐가 동독과 서독의 정치세력관계는 물론 나아가 통일속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내부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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