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실업] 하던 공부, 포기도 못해
  • 김당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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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 소지자로서 교육공무원 임용에 결격사항이 없는 사람→박사과정을 수료한 자→박사학위 소지자를 ‘원칙으로 함(예외도 있다는 말이다)→박사학위 소지자에 한함

지난 10년새 대학교수임용 자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교수 채용 공고문에 반영된 내용을 통해 간추려 본 것이다. 위의 내용을 뒤집어 해석하면 그만큼 박사가 흔해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문교부의 ‘연도별 박사학위 수여현황’에 따르면 80년 이전까지 국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수효는 7천7백48명이었는데 84년에 1천2백35명의 박사가 탄생, 한해에 1천명을 넘더니 87년에는 2천1백74명으로 2천명을 넘어섰고 89년에는 2천6백여명에 이르렀다. 올 3월말에 정확한 집계가 나온다는 90년 2월 박사학위 수여자 수효를 예년수준으로 잡아 셈하더라도 지난 10년새 탄생한 박사수가 80년 이전의 박사수보다 곱절 이상 되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이처럼 박사가 급증한 근거로 대학 및 대학원 입학정원의 증가와 해외유학생 증가를 들고 있다. 정부에서 80년부터 졸업정원제를 무리하게 시행, 일률적으로 대학정원을 30%씩 늘리다 보니 대학원 입학정원도 자연증가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80년대 초반에 대학 입학정원이 늘고 서울소재 대학의 지방캠퍼스 신설이 잇따라 교수 요원이 부족하게 되자 석사학위만 있으면 지방의 전임자리를 얻을 수 있는 등 한때의 ‘호황’국면이 대학원 진학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낳았었다. 또 때맞추어 발표된 ‘대학원 중심 대학 육성’ 정책은 대학원 진학붐을 일으켜 84년께부터 이른바 ‘막차’를 탄 사람이 급증한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막차를 탔다’는 한 시간강사의 말을 빌리면 “배운 것은 공부뿐이라 도중하차할 수도 없어 무작정 가는 데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대학에 남기 위해 싫건 좋건 시간강사 노릇을 하며 필요한 경력을 쌓고 잇는 이들 중 어떤 이는 자신들을 한마디로 “마누라 덕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강사의 벌이란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 83년에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로 8년째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ㅈ씨(한국사 전공)는 올해야 비로소 지도교수로부터 논문을 쓰라는 말을 들었다. 논문이 늦은 것은 공부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먼저 입학한 사람이 논문을 쓰고 나가야 차례가 오는데 그 차례가 밀려 ‘기회’가 없었기 때문. 따라서 박사과정 기간과 더불어 이들이 업으로 삼고 있는 시간강사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박사를 따고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 시간강사로 죽치고 앉은 선배들이 늘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시간강사의 조건마저 악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강의시간이 줄어드는 반면에 강의에 드는 다리품은 늘고 잇다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해마다 늘고 있는 박사과정 입학자들에게도 ‘경력’을 쌓게 하려면 ‘시간’ 자리를 맡겨야 하므로 고참강사들 몫이 줄고 이들은 본교나 모교에서 줄어든 시간을 분교나 타지역에서의 ‘원정 보따리장사’로 벌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이른바 초고학력 실업자와 다름없는 시간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면 근본적으로는 정부에서 고급인력에 대한 장기수급계획을 세워야 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이들을 과감히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거개가 박사나 박사과정중인 시간강사들의 생계비와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이들이 한눈팔지 않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고 더불어 교육의 질도 높아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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