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7년 2월에 ㅅ여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田모(27)씨는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보내준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하루빨리 취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졸업 전부터 사원모집 광고가 나는 곳마다 문을 두들기기를 수십차례. 여자는 아예 뽑지 않는다고 원서조차 내주지 않는 곳을 빼면 졸업후 1년반 동안 그가 시험을 치를 곳은 대기업인 ㄷ그룹을 비롯해 변변치 못한 기업까지 스무군데도 넘는다. 그 가운데 서너곳은 필기시험까지 통과했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취직을 해서 12년 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해 보고 싶었고 부모님께도 한번쯤 ‘딸자식 공부시킨 보람’을 안겨주고 싶었던 그는 끝내는 지쳐서 ‘취집’(시잡가는 것을 대학가에서는 취직에 빗대 이렇게 표현한다)쪽을 택했다고 한다.
이처럼 취업의 높은 벽 앞에 좌절하는 여대생은 상상외로 많다. 주식회사 리쿠르트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89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 5만6천7백56명(전국 대졸자의 27.8%) 중 취업자는 1만9천3백18명으로 34.1%수준에 머물렀다. 유학·진학을 한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결국 여자졸업생 10명 중 6명은 취직을 못했다는 이야기다. 취업의 질적인 내용을 따져보면 더 한심한 형편이다. 지난해 4월 노동부의 발표에 의하면 50대 대기업에 취업한 여자졸업생은 남자 95.8%에 비해 4.2%에 지나지 않았다.
올해 졸업한 여학생의 경우, 아직 공식적인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취업률은 지난해보다 더 낮은 30%선이 되리라는 게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연세대 취업담당관 金弄柱씨는 이처럼 심각한 여대생 취업난을 두고 한마디로 ‘폭발 직전의 상태’라고 표현한다.
“여대생들 거의 대부분이 취직을 원하는데 불황국면을 맞은 기업쪽에선 맨 먼저 줄이는 게 여대생 채용비율입니다. 추천을 의뢰해오는 기업들도 95% 이상이 남학생을 원하는 실정입니다.”
여대생 취업난의 심각성은 지난해초 11개 대학에서 여학생들로 구성된 ‘취업대책위’가 일제히 발족된 데서도 단적으로 입증된다. 이 ‘취대위’는 지난해 11월 신문의 채용광고에 ‘여자에 대한 차별’을 명시한 신도리코 계열의 4개회사를 ‘남녀고용평등법’위반으로 서울지검에 고발해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이 사건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취대위’ 임시의장 金賢珠(성균관대 국문4)양은 기업체들이 비단 모집차별뿐만 아니라 “군필 남자들에게 가산점을 줌으로써 여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하거나 면접, 품행 등 주관적 점수 비율을 높여 여대생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지난 몇 년 동안 여대생들 사이에는 ‘취업 대기기간의 징검다리’로서의 대학원 진학이 부쩍 늘고 있다. ㄱ대학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2년째인 한 여학생은 “취직은 안되고 집에 있기는 지겨워 일단 대학원에 이름을 걸어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대학까지 12년을 죽자고 공부해도 10명 중 6명은 취업을 하지 못하고, 그 취업을 기다리는 동안 또다시 그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오늘날 우리 여대생의 답답한 현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