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쟁’ 美·日 무역마찰
  • 워싱턴 · 이석렬 특파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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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동유럽의 극적인 변화로 핵전쟁의 위협이 서서히 가시면서 갑자기 대두한 미국의 국가적인 문제로 ‘미·일 무역전쟁’을 꼽을 수 있다.

‘소련보다 일본이 미국의 안보에 더욱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 미국민 사이에 뿌리내리면서 의회는 대일 무역보복을 서두르고 있고, 부시 행정부로서는 빗발치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또 올 가을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정부 공세가 될 대일관계에 일찌감치 선수를 쳐서 김을 뺄 필요가 있다.

미국측은 두어달전부터 언론을 동원하여 대일공격의 포문을 열어 일본의 기를 죽이는 작전을 펴왔다. 미국내 일본기업들이 여러해 동안 탈세를 해오고 있다는 국세청 조사를 비롯해서 미국무역대표부 현직관리의 과거경력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로비하는 직업에 종사한 일이 있다느니, 무역대표부를 그만둔 관리들이 줄을 대고 일본기업에 취직하여 ‘이적행위’를 하고 있다는 등 적진상륙을 위한 충분한 지원사격을 가해왔던 것이다.

특히 2월말에 있은 도쿄의 제3차 미·일 무역회담이 아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끝난 데 대해 행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이 다같이 실망하여 때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대일감정이 험악해진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가이후 총리를 불러 그의 손을 점잖게 비틀었다.

조급하게 정상회담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생기는 극적인 효과를 부시대통령은 사전에 충분히 계산하고 있었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가이후를 미국이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가이후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대가로 시장개방에 있어 가이후 내각이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대내적으로는 의회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대일강경책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대일무역교섭에 나선 실무자들에게는 走馬加鞭을 한 셈이다.

약 6시간 가까운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무역불균형과 관련된 미국측의 불만에 대해 집중적인 의견표시를 했다“고 회담에 참선한 한 고위 관리가 전했는데 일본측 대변인은 ”다른 의제로 시간을 더 보냈다“고 다른 말을 하여 다소 석연찮은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다른 의제란 일본의 국제화와 새로운 역할을 두고 한 말인데 부시 대통령은 일본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높아져야 하고 따라서 책임도 커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가이후 총리에게 미·일·유럽의 세 대표로 구성되는 3자회담을 제의했다는 것이다.

3자회담 문제를 놓고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나카야마 타로(中山太郎) 일본외무장관이 그 자리에서 뼈대를 간추려나가는 가운데 조만간에 일본이 권위있는 국제경제기관인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의장국이 되는 데 미국이 적극적으로 앞장설 것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기자회견에서 가이후총리는 “무역마찰을 해소하는 문제가 일본 새 내각이 당면한 최우선 정책의 하나”라는 말로 발등의 불을 끄려고 했다. 부시 대통령도 “의회쪽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할 이야기를 다 했다”고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오는 4월까지 어떤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 때는 의회가 무역법에 따라 슈퍼 301조를 적용, 대일보복을 취할 수는 있지만 막상 보복조치는 들고 나오지 않기로 두 지도자간에 묵계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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