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소용돌이 휘말린 ‘변방’의 두나라
  • 표완수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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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 非공산 야당 잇따라 창당…네팔 민주화시위 경찰발포로 총격전 양상

동유럽의 민주화 열풍이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의 분수령 앞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그 여파가 최근 아시아대륙의 오지 몽고와 네팔에까지 밀려들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정치무대의 사각지대에 속해왔던 이들 두 나라에서 자유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몽고에서는 공산당 집권 69년만에 처음으로 야당이 탄생하고 공산당 권력독점이 종식될 기미를 보이고 있으며, 네팔에서는 민주화시위에 정부가 무력으로 대응, 사태가 유혈화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반체제세력들은 지난 9일부터 2주일간을 항의시위 및 파업기간으로 설정, 정부에 맞서고 있다. 민주화 및 다당제 실시가 양국 민주세력들의 공통된 요구사항인데 민족주의가 밑바탕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양국 민주화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다당제 약속한 몽고

1921년 공산당이 집권함으로써 소련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공산국이 된 뒤 줄곧 소련의 영향권에 속했던 몽고에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초부터. 당시 민주화개혁 주도세력인 몽고민주연합이 중심이 되어 정부의 개혁정책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불붙기 시작했다. 이후 몽고민주연합은 수차례 시위를 주도하면서 정부의 개혁정책 가속화를 요구했으며 마침내 지난달 18일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대회를 갖고 몽고 역사상 최초의 야당인 몽고민주당(MDP) 창당을 선언했다.

지난 4일에는 울란바토르에서 몽고민주당에 이어 이 나라 두 번째 비공산 야당인 사회민주당이 창당, 의사당 앞 수체바토르광장에서 최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서 민주세력들은 △잠빈 바트문흐 인민혁명당(공산당) 서기장과 집권층의 즉각 사퇴 △임시 거국의회 구성 △자유총선 즉각 실시 △부패관리 재판회부 △경제개혁 실시 및 코메콘(COMECON·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 탈퇴 등을 요구했다. 이들의 당초 요구사항에는 울란바토르시의 스탈린 동상철거(이미 철거완료), 징기스칸에 대한 재평가 등이 포함돼 있어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반영했다.

사실 집권 몽고인민혁명당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에 자극을 받아 이미 3년전부터 독자적인 개혁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동유럽이나 소련과는 달리 국내의 개혁정책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몽고 지식인들뿐 아니라 집권당 내부에까지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몽고의 민주화운동이 비교적 정부와의 마찰없이 추진돼온 것은 바로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몽고정부는 민주세력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정부는 금면 상반기중 헌법을 개정, 다당제를 공식 허용할 것과 공산당의 권력독점 폐지를 약속했다.

한편 누마긴 소도놈 총리는 몽고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 몽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최근 일본을 방문, 양국 무역협정에 서명하는 등 서방 자본주의국가와의 경제협력에 본격 착수했다. 소도놈 총리는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몽고는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외교적 문호를 개방했으나 이와관련,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이의가 제기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밝혀 개혁정책 추진과 관련, 소련과 중국을 크게 의식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관측통들은 소련은 몽고의 정치·경제적 개혁을 묵인하고 있으나 중국은 몽고의 개혁정책이 2백80만 몽고인들이 거주하는 내몽고자 치주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몽고의 급속한 개혁 추진을 견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몽고의 개혁정책이 이처럼 비교적 순조로운 진전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네팔의 민주화·개혁운동은 정부당국의 강경한 무력진압정책으로 유혈·과격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14일 17년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난 12명의 극좌파 운동가들을 환영하는 집회를 발단으로 시작된 네팔의 민주화시위는 최근까지 10여명의 사망자와 1백수십명의 부상자를 내는 유혈사태로 악화됐다.


네팔국왕의 ‘반동’발언이 유혈시위 촉발

사태가 특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18일. 이날은 ‘민주주의의 날’로 불리는 네팔 국경일(현 비렌드라 국왕의 조부 탄생일) 로 비렌드라 국왕은 이날 네팔 전역에 방송된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회복운동(MRD)을 금지하고, 현행의 非정당정치체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는데, 당초 중요 정치개혁 선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던 일부 시민들이 국왕의 연설에 격분, 시위를 촉발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시위는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 네팔 전역으로 확대됐으며 시위군중들은 29년간 금지돼온 정치활동과 정당결성의 자유, 다당제 채택 및 인권회복을 요구했다. 시위가 확산되자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총격을 가했으며 시위대도 경찰에 총으로 맞섬으로써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네팔의 민주화운동은 불법화된 정당들인 네팔 의회당과 공산당 및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여기에 교수, 작가, 언론인 등 지식인들이 가세하고 있다.

네팔의 정치권력은 형식상 국왕과 의회격인 판차야트에 분할되어 있으나 판차야트의 기능은 유명무실하다. 판차야트의 1백40개 의석 중 5분의1은 국왕이 지명학도 나머지는 선거로 뽑도록 돼있으나 실제로는 나머지 의석 후보들도 모두 국왕의 인준을 받고 있다.

이같은 정치체제상의 문제 외에 네팔 국민들이 안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최근의 민주화운동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관측통들은 분석하고 있다. 2년전 비렌드라 국왕은 네팔 국민들의 생활수준(1인당 국민소득 1백70달러)을 ‘아시아국민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으나 1년전부터 가해지기 시작한 인도의 준경제봉쇄 이후 네팔의 경제사정은 더욱 어려워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네팔의 개혁요구 세력들은 지난 6일, 총파업을 포함한 2주일간의 항의시위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정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에 맞서 정부는 민주세력들을 분쇄하겠다고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대내외 여건상 네팔의 민주화 시위는 일대 결전을 향해 돌진해 가고 있는 국면에 있다.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여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네팔의 민주화는 그만큼 더 힘겨운 일이 될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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