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속 냉각되는 美·日관계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美, 6월 슈퍼301조 발동 등 강력한 경제보복조치 취할 듯 日, “인종편견 소산” 반발

자민당 정권의 재출범으로 본격화될 올해의 미·일관계는 출발부터가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올 봄에서 여름 사이에 미·일간에 굵직한 통상교섭 및 지난 1년간의 교섭결과에 의한 미국측의 최종보고가 잇따라 있을 예정이어서 일본 정가에 나돈다는 ‘미·일관계 4, 5월 위기설’이 근거없는 풍문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중 중요한 현안을 보면, 우선 3월에는 미상무부의 각국별 무역장벽보고서 공표가 있고, 4월에는 구조협의 중간보고와 제2차년도 슈퍼 301조(불공정 무역관행국에 대한 규제조치 강화조항)의 대상국 및 분야지정이 있을 예정이다. 특히 슈퍼 301조와 관련해서는 일본의 인공위성, 슈퍼컴퓨터, 목재 등이 그 대상으로 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5월에는 일본총선으로 미뤄졌던 건설관련 제재조치 발표가 있고, 6월에는 슈퍼 301조 제재조치가 발동된다. 그리고 7월에는 지난해 7월에 시작되어 1년간 시한을 두고 진행돼온 미·일구조협의의 최종 보고서가 작성된다. 이런 각 분야의 협상과정에서 실제로 미국측이 만족할 만큼 진척된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측의 보복조치가 매우 강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미 의회의 중간선거가 있어 의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 두들기기(Japan Bashing)’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고, 이런 분위기는 진주만 공격 50주년이 되는 내년과 미국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후년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전후 40여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미·일관계가 이렇듯 급격히 악화된 이유는 그동안 냉전구조하에서 내연해왔던 양측의 무역 및 경제마찰이 냉전의 틀이 와해되면서 가장 중요한 현안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측이 이와 같이 잔뜩 공격의 칼을 갈고 있는 중에도 지난해 일본의 對美 경제진출은 계속 증가일로를 걸어왔다. 특히 일본기업들에 의한 미국기업 및 은행의 인수·합병의 증가는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중 일본 소니社의 콜롬비아영화사 인수는《뉴스위크》지가 이를 “미국혼의 매수”라고 대서특필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폭발직전으로 끌고 갔다.

미국의 對日감정 악화과정에서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학계, 언론계 그리고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소위‘수정주의자’들의 움직임이다. 대일정책을 맡고 있는 국무부와 국방부의 전통적인 대일 유화정책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이들은 단순히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조직화·이론화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일본의 사회·경제구조는 미국 및 서유럽과는 다르기 때문에 미·일간의 무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자유경제정책으로는 안되고 일본사회 자체를 ‘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후 미국의 對蘇봉쇄정책을 이제 ‘일본봉쇄’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미국내의 대일 강경분위기에 대한 일본측의 반발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郎) 중의원 의원과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 소니社 회장이 공동 저술한《‘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이들은 미국에서 일고 있는 대일 강경자세를 유색인종에 대한 미국의 전통적인 인종 편견의 소산으로 치부하며, “만일 일본이 반도체를 미국에 팔지 않고 소련에 팔면 미·소간의 군사력 균형은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극단론을 전개해 일·소관계의 개선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인들의 대일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부시, 美·歐·日 삼각협의 체구상 제의

이와 같은 미·일관계의 악화 그리고 그것이 미·일 동맹체제의 근저를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는 것은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세계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는 결코 바람직한 사태발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의 안보정책담당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경제대국으로 비대해진 일본을 적당히 ‘두들겨서’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정치·군사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고, 탈냉전시대의 미국의 새로운 세계전략 틀 속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논의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베이커 국무장관의 ‘환태평양경제기구 구상’, 크랜스턴 상원의원(민주당)의 ‘환태평양경제포럼’, 보카스 상원의원(민주당)의 ‘미일포괄교섭’(소위 G2 제안), 이글버거 국무부 부장관의 ‘美·歐·日 삼각협의체구상’ 등이 있다.

3월초의 미·일정상회담에서는 이중 이글버거의 삼각협의체구상이 부시 대통령에 의해 전격 제시되어 가이후 총리의 동의를 얻기에 이르렀다. 이 美·歐·日 삼각협의체구상은 “현재의 미·일 2극체제를 유럽까지 포함하는 삼각협조체제로 전환시켜 美·歐·日 3자간의 무역마찰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정하고, 나아가 일본의 경제력을 제3세계 및 동유럽의 경제원조에 활용하기 위해 정치·외교상의 협조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즉 탈냉전시대를 맞아 일본을 미국의 통제하에 계속 두면서 대신 일본의 경제력을 세계전략 수행에 이용한다는 미국의 새로운 대일전략의 윤곽이 비로소 등장한 것이다.

앞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미·일 양국 정책 담당자들의 협의를 통해 드러나게 되겠지만, 현재 미·일관계가 무역마찰의 긴장속에서 새로운 전략적 재조정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