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床‘ 현실 불만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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場外에 움트는 保 · 구조

在野, 政黨化 진통 … 右翼, 본격적 세력화 돌입

우리 사회에서 보수와 혁신의 양립구조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대답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제도권만 보더라도 이미 보수대연합을 기조로 하는 3당 통합이 이뤄졌으며, 이에 맞서는 평민당이나 민주당(가칭)도 그 색깔에 있어서는 보수의 틀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평민당은 민자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혁신세력으로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 그 몸놀림에 상당히 신중을 기하고 있다.

 제도권을 벗어난 ‘장외’의 정치세력을 놓고 보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반독재 ·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왔던 진보그룹은 아직 단일한 혁신세력으로 발전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세력의 분포도 또한 두텁지 못하다. 최근 전민련이 정당건설안을 놓고 논쟁을 거듭하다 결국 순수운동쪽으로 결론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도 전민련이 본격적인 정치세력으로 발전하기에는 아직 그 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익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다. 기존의 정권이 모두 스스로 우익의 입장을 대변해 주었기 때문에 제도권 밖에서 우익을 표방한 정치세력을 결성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13대 총선 이후 이런 구도는 약간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보수진영, 우익진영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돋우고 보수를 대변하는 장회 정치세력이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金容甲 前총무처장관의 발언을 지목 할 수 있다. “민주화의 추진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체제를 전복하려는 좌경세력이 급격히 팽창, 확산돼 말없는 다수 국민들이 이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는 그의 공개적인 발언은 당시 여권의 정국운영에 대한 우익의 불만을 대변한 것으로 평가됐다.

 金容甲 전총무처장관과 崔明? 전노동부 장관, 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이 주도하는 ‘민주개혁범국민운동협의회’(약칭 민개협)가 3월13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민개협’은 발기인 2천여명 중 예비역 출신이 46명으로 보수 및 우익의 목소리를 본격 표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로 자유총연맹이나 호국청년연합회 등 기존의 우익집단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이념과 ‘이익집단’의 성격을 혼재하고 있었던 데 비해 ‘민개협’은 보다 순수한 이념의 우익집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정착,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에 내포된 모순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적극적인 사회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이러한 국민운동의 초점을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사회개혁에 맞추었다”는 ‘민개협’은 우익의 이념을 내세움과 동시에 적극적인 개혁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우익단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아직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와 혁신, 혹은 좌우의 양립구조의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민개협’은 ‘전민련’과 마찬가지로 정당결성의 예비단계라는 일설을 일축하고 ‘순수한’ 운동단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야. 정당결성론자 사이에도 방법론 이견

 한편 보수와 혁신으로 대칭되는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혁신과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세력으로 분류되는 在野는 ‘운동이냐 ’정치‘ 냐의 두 갈래 길목에서 심한 몸살을 앓아 왔다.
 지난 3월4~5일 이틀간 열린 전민련의 제2기 대의원대회는 정치세력화 문제로 야기된 재야의 ‘重病說’을 소문 아닌 사실로 확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李?榮 · 張?? · 金?? · 李在五씨 등 재야를 이끄는 ‘40대 기수들’이 재야의 정치세력화쪽으로 의견을 접근 시키고 전민련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에 정당건설안을 상정했으나 반대의 벽에 부딪혀 부결되고 말았다. 운동권 스스로가 재야의 정치세력화는 시기상조라는 진단과 함께 정당건설 논의 유보라는 처방을 내린 것이다.

 전민려에서 정당결성론을 주장했던 지도부의 한사람인 ㄱ 씨는 “운동권의 지지와 축복속에 정치 세력화로 나아가려 했으나 실패해 그만 모양새가 일그러지고 말았다. 반대한 쪽이나 찬성한 쪽이나 모두 큰 타격을 입은 셈”이 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정당결성 논의에서 반대 입장을 보인 운동현장의 핵심실무자 ㅇ 씨는 “정당건설안은 이념과 노선이 제각각인 상층지도부 명망가 몇 명 사람이 밀실에서 담합한 결과물이라고 본다. 정당건설안이 부결된 것은 상층지도부의 집단적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상반된 이 두가지 입장은, 정치세력화 논의가 끝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잠복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점에서는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순수운동세력의 시기상조론이 우세해 정당건설안이 부결되긴 했으나, 정당결성 논의는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운돋권내에서 상부의 결정사항이 하부조직에 의해 집단적으로 부정된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전민련 대의원대회의 정당건설안 부결사건은 재야가 합법정당결성 여부를 둘러싸고 얼마나 심한 내부갈등에 시달리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합법정당성론자들 사이에도 평민, 민주당(가칭) 등 야당과의 관계설정을 둘러싸고 대조적인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재야 신당의 깃발을 먼저 올린 진보정당준비모임측은 재야의 독자적인 창당을 주장한다. 재야가 독자적으로 신당을 결성해 정치 세력화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독자창당론은 또 재야가 먼저 黨을 만든 후에 평민, 민주당 등 야당과 통합해야 한다는 선창당 후통합론과, 기존야당과의 제휴를 거부하는 무조건적인 재야 독자창당론으로 2원화되어 있는 상태다. 준비모임에서 다수가 무조건적인 독자창당의 입장을 보이고, 소수파가 선창당 후통합 의견을 내놓고 있다.

결성 앞둔 ‘국민연합’ 합방도 변수
 이에 반해 전민련은 기존야당과의 연대를 전제로 범야권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는 단일신당론을 주장한다. 이 단일신당론은 또 소수파의 독자창당 불가론과 다수파의 선통합 후창당론으로 나뉜다. 독자창당 불가론은 범야권의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재야의 독자적인 창당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선통합 후창당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민주연합’의 형태로 범야권이 결속한 후 단일 야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민련의 정당결성 논의가 유보된 시점에서 진보정당준비모임측은 독자적으로 정당결성을 추진할 태세이고, 전민련은 내부의 이견을 조정하고 수렴하는 작업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3월중 결성될 예정인 ‘국민연합’(가칭)도 재야의 정치세력화 논의에 큰 변수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와 민중기본권 쟁취 국민연합’은 민자당에 대응하는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미 실질적인 활동에 들어가 있는 ‘한시적인 공동투쟁체’로 알려져 있다.

 대의원대회결과 운동권의 구심점이 전민련에서 국민연합쪽으로 옮겨지지 않겠느냐는 다소 성급한 진단도 나오고 있으나, 전노협 · 전교조 · 전농운(4월 출범예정) 등 국민연합 소소의 대중조직이 아직 안정되어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는 점과 전민련의 현재 위상등을 감안할 때 당분간은 전민련과 국민연합이 느슨한 연석회의체의 모양을 갖춰 상호공존하는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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