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피해 방관할 수 없어”
  • 김당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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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학부모회 돈봉투 추방운동 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이른바 장수프로에 속하는 ‘사랑방 중계’를 보면 리포터라는 사람이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불쑥 마이크를 들이미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설문조사와는 달리 순발력 넘치는 즉발적 대답을 요구하는 그 방식을 원용해 “남들 다 하는데 안하면 불안한 것 하나를 대보라”고 묻는다면 아마 십중팔구 ‘돈봉투질’이나 ‘과외’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상의 범위를 좁혀서 학생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어찌 될까? 개중에는 막연한 질문이다 싶어 얼결에 “시험공부요”라고 답하는 ‘모범생’도 있을 터이나 “촌지요”라거나 “과외죠”라고 답하는 ‘불량학생’도 만만치 않게 많을 것이다.

그런 만만치 않음은 위와 같은 아기자기한 세태진단에서뿐 아니라 진지한 설문조사들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이를테면 최근 각급학교의 개학에 맞춰 학부모들이 직접 조사해 발표한 ‘돈봉투에 관한 학부모 의식조사’ 결과와 묵은 통계이긴 하나 학생들이 학우를 대상으로 직접 조사한 ‘촌지에 대한 고교생 설문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학부모 의식조사는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회장 김영만)에서 올해 2월1일부터 25일까지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전국 학부모들에게 설문지 4천2백매를 돌려, 그 중 거둬들인 1천9백매를 조사·분석한 것이다. 조사대상지역은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전주 성남 부천 안산 등으로 표본이 된 학부모 수효는 서울 1천명, 기타지역이 9백명이다. 한편 학생 의식조사는 88년 2월중에 ‘푸른나무 이야기 모임’이라는 고교생 모임에서 서울 지역 고교생 1백25명을 대상으로 주로 도서관이나 학생 모임에서 설문조사한 것이다.

학부모 의식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7.4%, 국민학생 학부모의 65.3%가 교사에게 돈봉투를 준 경험이 있으며, 준 이유로는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41.0%), 아이에게 보다 관심을 갖게 하려고(31.3%), 아이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우려해서(16.7%), 선생님의 은근한 기대 대문(9.2%)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돈봉투가 오가는 근본적 이유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자식에 대한 학부모의 이기심 때문에(43.2%), 학력위주 및 황금만능주의적 사회풍토 때문에(21.5%), 감사의 뜻을 표하기에 편리한 방법이므로(19.2%), 교사가 돈봉투를 바라기 때문에(11.4%) 등으로 나타났다. 한편 학생 의식조사에 따르더라도 국민학교때(68.8%)나 중학교 때(24.8%) 촌지를 처음 안 것으로 나타나 고교생 중 대다수(93.6%)가 이미 머리통이 굵어지기 전부터 ‘알 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부모 조사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어머니회, 육성회 등 정기적인 모임으로 학교를 방문한 경우에 돈봉투를 준 학부모는 81.2%로 드러나 어머니회나 육성회 같은 학부모 모임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교사와 학부모간에 정기적으로 돈봉투가 오가는 ‘거래선’으로 이용되는 경향도 있다는 점이다. 학교를 방문한 적이 없는 학부모의 경우에는 그 44.0%가 “빈손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응답해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학교 방문=돈봉투 건네기“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돈봉투를 준 뒤 아이를 대하는 교사의 모습에 대한 ’평가‘는 예전과 같다(15.8%) 보다는 특별히 또는 조금 더 관심을 보인다(56.3%)쪽이 훨씬 더 높아, 쓴 만큼 ’약효‘를 보고 있다고 믿는 학부모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학생 조사에서도 촌지의 영향력을 확인한 적이 있다(62.4%)가 없다(20.8%)보다 세곱절이나 많았는데 ’있다‘고 한 경우, 그 구체적 보기로 관심 친절 편에 면담 체벌절감 등 선생님의 태도(64.1%), 점수에 영향(14.1%), 반장 등 임원선임(9.0%) 등을 꼽고 있어 가장 교육적이어야 할 교육현장에서 가장 비교육적인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돈봉투 없애기 운동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학부모 조사에서 드러나다시피 적극 찬성(44.7%), 찬성하되 교육문제의 근본적 해결과 함께(39.1%), 찬성하되 실천에 어려움(8.6%) 등으로 나타나 조건부 찬성 곧 ‘이기심’과 ‘사회풍토’를 개선하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는 쪽이다. 따라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전국적으로 시내 중심가 및 학교앞에서 ‘돈봉투 없애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참교육학부모회의 김영만회장도 “우리사회가 신생아실에서부터 화장터에서까지 돈봉투질을 안하면 ‘박대’받기 십상일 만큼 병들어 있어 교육계도 그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또 박봉을 무릅쓰고 교육현장에서 참교육을 펼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에 이대로 둘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마산지역 학부모와 교사들 모임에서 양심선언한 한 교사의 말은 자신의 아이들조차 멍들게 하는 돈봉투질에 병든 학부모와 교사들 모두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한 아이를 학급 임원으로 추천했더니 그 아이가 어쩔줄 모르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선생님, 우리 아버지는 사업에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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