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목적 개입 여부 攻防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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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사태 관련 정부와 언론노조 맞서 … 민주당선 “청와대 대책회의 있었다” 폭로

KBS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민이 내는 시청료와 광고수익으로, 공영방송을 위해 산다. 따라서 시청료가 제대로 쓰여지고 있으며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는 항상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감사원이 밝힌 40여억원의 법정수당 변칙지급 사실은 국민의 세금을 ‘멋대로 나눠먹었다’는 점에서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으나 노조를 중심으로 한 KBS측은 “문제가 있다면 행정상의 착오일 뿐 당연히 찾아야 할 몫을 그것도 줄여서 뒤늦게 받은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나아가 “오히려 주목해야 될 것은 이런 사소한 문제가 침소봉대되고 사장 등 경영진이 면직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심상치 않은 양상, 즉 ‘방송재장악을 위한 정치공작적 음모”라고 주장, 언론보도를 통해 ’나눠먹기‘에 분노했던 국민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金모씨(33·회사원)는 “지난번 PD비리사건 때에도 ‘하필 이 시기에…’ 운운하며 반성보다는 불순한 배경의 암시에 더 비중을 두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 모습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잘못은 잘못대로 인정하란 여론도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교사는 “사원들이 일한 만큼 수당을 요구하고 회사의 형편이 되는 대로 지급받은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는 사기업체에서의 경우이다. 시청료 납부를 거부할 수 없는 국민들이 낸 ‘세금’을 아껴서 썼으면 다음해에 시청료를 내려받든가 할 일이지, 남았다고 해서 전사원이 규정에도 없는 명목까지 만들어 가져갈 성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밝혔다.

그는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받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되느냐”고 전제하면서 “사건의 경위에 비해 비판이 거센 이유는 돈 받고 가수들을 출연시키지 말고, 1단짜리라도 공정하고 성실하게 보도를 하는 등 공영방송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은 지금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렇지는 않고, ‘정치적 음모’ 같은 것을 지나치게 강조,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정직하게 인정하고 진정한 ‘국민의 방송’을 만드는데 힘써달라는 얘기일 터인데, 여기에는 그런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에서 혹시 외압이 있다면 시청자들이 먼저 거부하고 나설 것이라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 함축돼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땡全뉴스’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시댑니까, 지금?” 그러므로 ‘방송재장악’이란 이제 가능한 일도 아니며 설사 교묘한 ‘여론조작’을 하더라도 속아넘어갈 국민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나 언론노동계에서는 이러한 시각을 그야말로 ‘순진한’발상으로 여겨 지금은 ‘방송민주화를 위협하는 중대 위기’임을 주장하고 있다

“언론사간 경쟁 악용”

어째서 그렇다는 말인가. KBS노조, MBC노조,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등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내놓고 있는 주장들을 한번 살펴보자.

이들은 먼저 법정수당 변칙 지급 사건에 대해 “기왕에 책정됐던 예산을 노사합의에 따라 집행한 것일 따름인데 행정상의 서류 미비 등 사소한 문제점을 언론이 왜곡·과장보도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왜곡된 이유는 “언론사간의 경쟁관계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6공의 소위 ‘언론플레이’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MBC노조는 특히 “문화방소의 재산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문제다”라고 한 崔秉烈 공보처장관의 발언, MBC 경영과 관련한 모기관의 내사설 등을 예로 들면서 “여론재판을 통한 KBS 음해공작이 MBC에도 조만간 불어닥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양방송사의 경영진과 구성원들의 도덕성을 훼손시킴으로써 노조를 중심으로 한 ‘좋은 방송’을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또한 그 명분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기도, 즉 정치공작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음모’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공작을 통해 집권세력은 첫째, 현재의 KBS MBC에 대한 통제력을 보다 강화하고, 둘째, 3당통합과 지자제선거, 내각제 개헌작업 등 일련의 정치일정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원활히 하며, 셋째, 민방신설을 앞두고 방송계를 재편하기 위한 당위성 설득차원에서의 여론정지작업을 수행하면서, 넷째, 이 민방이 재벌과 권력의 유착관계속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축소·은폐하려는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공보처의 한 관계자느 “감사원이 수당지급을 문제삼은 것은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관리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히면서 “이를 정부의 언론장악 방편의 하나로 몰아붙이는 일부의 비난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金永駿 감사원장은 지난 6일 국회법사위 답변엣 “KBS의 재무구조가 아직 불량한 데다 노조와의 단체협약 내용이 명백히 회계법에 위반되는 등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판단을 했다”면서 “KBS는 국민의 세금과 시청료로 운영되는 정부출자기관으로서 다른 정부출자기관과의 급여수준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른 언론기관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변태지출을 하면서까지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를 수용한 것은 정부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노조 요구 못뿌리친 책임 물은 것”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이 있다. “정부는 노조의 요구에 소신있게 버티지 못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입장이 엿보이는 부분이 그것이다. 감사원은 이미 지난달말 감사결과를 의결하면서 대통령이 임면권을 갖고 있는 KBS 徐英勳사장은 ‘중요통보’로 사실상 해임요구를 했고 尹赫基부사장 등 중역 3명에 대해서는 해임하도록 공보처장관에게 통보했다.

이러한 조치로 徐사장 등 고위간부 10명이 바로 사표를 제출, KBS이사회는 지난 2일 서사장과 兪泰完감사의 사표에 대해 대통령에게 수리를 제청했는데 8일 모두 수리됐다. 그러나 책임을 물었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이 사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중요통보’의 사항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주장과 관련 일반의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이다.

KBS노조측은 “법정수당 관련 문제는 KBS내의 인사위원회에서 처리될 ‘징계사항’이지 기관의 장을 해임시킬 사유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사장을 해임한 것은 그동안 노조운동을 정부의도대로 막아주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가운데 공보처 최병렬장관이 서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퇴를 종용한 사실과 야당의 ‘진상폭로’가 잇따라 나와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

3월 7일자 <한겨레신문>보도에 따르면 현재 강원도에 칩거중인 서사장은 5일 한 측근에게 최장관이 지난 2월말 직접 전화를 걸어와 “사퇴를 하지 않으면 감사원에서 즉각 고발하게 될 것이다. 아직 사장에 대한 개인비리를 덮어두고 있는데 이것이 터지면 곤란하지 않느냐”며 사퇴를 강요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민주당(가칭) KBS사태진상조사단’도 8일 보고서를 통해 “최병렬 공보처장관의 주도하에 현 KBS경영진을 강제 퇴진시키려는 노골적인 의도가 드러났다”고 폭로했다.

李哲 廬武鉉 金光一의원등 5명의 의원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단은 이 보고서에서 “감사결과를 근거로 청와대에서 3차례에 걸쳐 대책회의가 열렷으며 최병렬장관이 KBS 경영진에 대한 대책강구를 담당하도록 결정됐다”고 밝혔다.

최장관은 5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보처의 사퇴압력 행사 여부에 대한 평민당 蔡映錫의원의 질문에 “한국방송공사 사장의 임면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절차상 공보처가 창구가 될 수 있다고 판판, 감사원의 요구를 전달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었다.

그러나 KBS노조측은 “법정수당 지급문제가 일어나기 전부터 방송가에 끈질기게 나돌던 서사장의 목동아파트 구입 관련 5천만원 은행융자 내사설, 경영진 축출과 노조 무력화기도설 등 언론에 대한 공작정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 최장관을 ‘공작’의 총책임자로 지목하면서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영방송 실현에 남다른 열정

서영훈사장은 지난 88년 11월 KBS 창립 이래 최초의 민선사장으로 취임, 그동안 공영방송의 실현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면서 사내 5공인사 처리, 비대한 기구의 축소개편, 원만한 노사관계 등을 위해 노력해온 것으로 방송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KBS노조측의 주장은 서사장의 이러한 노선이 노조와의 대처에 있어서 무력하다는 등 정부의 불만을 사 축출대상으로 점찍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내에서 차기 경영권을 노리는 일부 야심가나 실세에서 밀려난 5공 잔존세력들이 ‘서사장 제거’에 한몫 했다는 것인데, 이는 곧 “KBS사장이 노조와 밀착되어 ‘광주는 말한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방영되게 했고, 5공 특채자들을 전국 최대규모로 처리했으며, 법정수당 미지급분을 이용해 노조에 선심을 씀으로써 이중 막대한 돈이 노조의 투쟁기금 및 전노협지원금으로 흘러들어가게 했다”는 악성루머를 퍼뜨려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게 됐다는 내용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두 신문의 ‘만화’에서 나타나는 시각차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시청료를 나눠 먹었다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책임소재를 묻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비약’을 노정함에 따라 그 여론이 정작 KBS의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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