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不況의 계절] 중소기업 체력이 달린다
  • 김재일 편집위원보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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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金難·대기업 영역침범 등으로 허덕… 기술혁신이 과제

중소기업이 어렵다. 생산과 고용에 있어서 81년 이래 최악을 기록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중소기업의 불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환경이 나쁘기는 대기업도 마찬가지지만 그 타격은 자금력과 기술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훨씬 더 큰 것이다.

종업원 7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산업용 인쇄업체인 ㅈ정밀(주)은 총매출액 중 수출이 절반을 차지하는데 요즘 외국으로부터의 주문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유망 중소기업체로서 88년 40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해에는 36억원에 그쳤고 올해에는 35억원을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이 회사의 李사장은 푸념이다. “지난 2~3년간 인건비가 매년 20~30%씩 올랐고 올해에는 15%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생산원가는 상승되는데 주문은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대기업의 영역침범으로 아주 어렵다. 올해 어쩔 수 없이 4억원 정도의 시설투자를 해야 하나 정치·사회의 불안정 등으로 기업환경이 불투명해 불안하기 그지없다.”

李씨의 말에서 수출부진, 임금상승, 대기업의 중소기업 고유업종 침범 등 중소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대표적인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ㅈ정밀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섬유수출업체인 ㅇ통상의 경우 1년 사이에 공장 종업원이 2백여명에서 1백40명선으로 줄었다. 경영합리화로 인원을 줄인 것이 아니라 자연감소다. 같은 업종의 회사들 가운데서 문닫는 곳이 속출하는 데도 섬유공장 근로자는 구하기가 더욱 어렵다는 게 이 회사 宋사장의 말이다. 지난 수년간 매년 2백%이상 눈부신 매출액 신장을 보였던 ㅇ통상은 88년에 매출액 2천7백만달러를 달성한 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 지난해에는 매출액이 2천5백만달러로 떨어졌고 올해에는 지난해 수준에도 못미칠 것으로 宋씨는 내다봤다. “대기업의 노사분규는 중소기업의 임금까지 끌어올렸고 3~4년전에 비해 임금이 2배 이상 올랐는데도 능률과 생산성은 그전의 7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죽자살자 해도 현상유지하기에 급급하니 기업을 해야 할 이유를 못찾겠다는 분위기가 중소기업인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폐업이 잇따르고 임금이 올랐는데도 섬유업체의 종업원을 구하기가 힘든 이같은 기현상의 원인을 宋씨는 유흥업소 종사 등 ‘쉽게 돈벌려는’ 사회풍조 탓으로 돌렸다.


전체 업체의 5% 이상이 “감원하겠다”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은 전업종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중소기업들은 경기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올해 고용과 시설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같은 경향은 내수업체보다 수출업체에서 더욱 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1천2백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자 계획이 전형 없는 기업이 33%이고 노후시설을 개체하는 선에서 그치겠다는 기업이 24%를 차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중소기업인의 투자의욕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체 조사대상 업체의 73%가 자연감소 인원만 보충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고 응답했고, 특히 5%를 넘는 업체에서 감원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인들은 왜 불안해하고 그들의 기업의욕은 왜 회복되지 않은가. 작년 한해 동안 최악의 경기침체를 경험했고 올해에도 노사관계, 정치·사회안정의 문제 등 기업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작년 한해는 중소기업에게 잔인한 해였다. 중소 제조업체들의 생산증가율은 전년대비 4.4%로 지난 8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고 또 중소업체들의 고용은 전년보다 3.6%가 감소, 81년 이후 계속된 증가세가 처음으로 감소세로 반전됐다. 이는 물론 노사분규에 따른 생산차질과 수출부진 등 전반적인 경기침체현상 때문이다.

휴·폐업체수와 실직자수 또한 지난해에 중소기업이 얼마나 어려웠나를 잘 나타내 보여준다. 노동부가 이번 임시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휴·페업 사업장은 모두 1천4백43개사로 전년도와 비교, 40% 가까이 늘어났고 이에 따른 실직자수는 5만8천여명으로 작년보다 33% 이상 증가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렇듯 깊어진 불황의 늪에서 올해도 쉽사리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올들어 1월에만도 22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 또한 첨단산업 육성이라는 정책방향이나 거대여당 출범에 따른 정치환경의 변화와 관련, 대기업에 더욱 유리한 방향으로 경제환경이 펼쳐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서울대 郭秀一교수는 경기침체와 더불어 제조업이라면 대기업도 정부가 많이 도와줘야 한다는 분위기속에서 중소기업에 돌아갈 혜택의 몫이 적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정책적인 느낌”이라고 말한다.

중소기업의 육성은 왜 중요한가. 국민경제에 있어서 중소기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아무리 경제력이 집중된다 해도 중소기업이 한 나라 경제의 고용과 국민소득 부문에서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상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용의 66%, 생산과 수출의 40% 정도가 중소기업 차지이다. 중소기업의 육성이 국민경제의 균형발전, 안정적인 성장, 소득의 균등배분, 그리고 지방경제의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원론에 해당한다.

한양대의 劉鍾九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외부의 충격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고 자급자족의 경제를 이룰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연결고리가 없이 서로 따로 놀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자본재와 중간재 등을 일본과 대만에 의존하는 형편이며 웬만한 외부충격으로도 쉽게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라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하에서 중소기업의 기술이 축적될 수 없었고 따라서 대기업이 원하는 부품을 중소기업이 공급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중소기업 육성 및 기술개발은 바로 우리 경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말이 된다.

우리 경제가 지난 60년대, 70년대 고도성장 가도를 걸어오면서 중소기업의 존재는 상대적으로 무시되었다. 60년대에는 시멘트, 비료, 정유 등 기간산업에 대한 정부주도의 지원책이 펼쳐지면서 중소기업을 돌볼 여지가 없었고, 70년대 들어서는 철강, 기계,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 육성책이 중점적으로 추진돼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시종일관했다.


“대기업과의 안정적 계열화 꾀해야”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는 상황이 변했다. 외채문제, 선진국의 수입규제와 개방압력, 국제수지 적자 심화, 국제 원자재가격 상승 등 국내외적으로 경제환경이 크게 악화됐다. 이에 따라 공업화과정에서 파생된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고 종래의 산업구조로는 외적 충격을 흡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80년대 초부터 각종 중소기업 육성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중에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의 확대지정과 중소기업 창업지원제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육성책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기술개발능력이 형편없는데, 여기에는 미약한 자금력과 높은 전직률, 그리고 중소기업인의 무사안일주의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지적된다. 중소기업의 낙후된 기술수준과 관련, 중소기업에 대한 별다른 지원은 고사하고 기술 이전을 회피해온 대기업의 책임 또한 적지 않은데 이는 곧 대기업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길일 뿐 아니라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자해적 행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중소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입개방은 중소기업형 제품들의 국내진출을 가속화시켰고 국내 관련업체간의 출혈경쟁을 불가피하게 했는데 안경테, 시계, 운동용구, 도자기, 악기, 가구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70% 이상이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에서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중소기업이 업체당 평균 2억1천3백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수출부진 등으로 돈이 잘 들지 않는 데다 부동산투기로 그 흐름마저 왜곡되어 있고 대기업의 뭉칫돈 수요가 은행에 몰리다 보니 중소기업의 대출은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6월말 현재 제도권 금융기관의 총여신액 1백19조8천6백억원 중 30대 기업 여신액이 30조5백6억원으로 전체의 29%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금융지원이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중소기업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분야 영역침범 행위이다. 상위30대 재벌그룹의 계열기업들이 생산하고 있는 1천5백여개의 생산품목 중 절반에 가까운 6백20개 품목이 중소기업형 제품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대기업은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한 2백37개 품목 중 대부분의 품목에 손을 대고 있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 전문인력 빼가기를 다반사로 한다.

예를 들어 어묵 업종의 경우 삼호물산 어육 연제품 생산에 뛰어들었고 대림수산은 작년 5월 중소기업의 공장장 등 핵심 기술인력을 부당하게 스카우트해가 중소기업체의 사업자등록증 집단반납 사태를 몰고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인 동방식품, 도원산업, 오뚜기식품, 해태농수산, 대한종합식품 등이 중소기업이 개발, 인기를 모았던 ‘구이김’ 업종에 침투해 있는 데다 농협에서까지 주요도시의 단위농협을 통해 김치산업에 참여했다. 이밖에도 1백40여 중소기업이 월 3천톤 규모를 생산·공급하고 있는, 중소기업 고유업종 PP 포장밴드 및 끈의 경우에도 대기업인 서통과 대일화학이 참여할 채비를 갖추었다가 중소업체들이 반발에 부딪쳐 취소한 사례도 있다. 이러한 대기업의 영역침범에 대해 관련 중소업체들은 “재력을 이용한 광고공세와 함께 중소기업의 기술인력에 대한 부당한 스카우트까지 자행, 중소기업을 枯死의 위기속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불평한다.

그러면 중소기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저임 기반의 붕괴와 이에 따른 경쟁력 상실은 중소기업의 채산성을 극도로 악화시켰는데 이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기술혁신밖에 없다고 외국어대의 宋一교수는 주장했다. 구조조정을 위한 중소기업의  육성전략으로, 시장가격 기구를 통해 독과점업체를 방지하는 유럽·미국식,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안정적 계열화를 도모하는 일본식이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식이 좋다는 것이 학계의 여론이다.

“대기업이 재래식 산업계에 침투, 경쟁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과의 계열화를 통해 서로 보완·협력관계를 안정시켜 나가야 한다”고 宋교수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산업구조 조정정책에 발맞춰 중소기업 스스로도 관리구조를 개선, 기술집약적인 업종으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 조사에서 중소기업인들은 유망한 분야로 공장자동화 기기, 항공기 부품, 그리고 자연식품 등을 꼽은 바 있다. 구조조정은 중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업이 도산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자금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것을 宋교수는 제안했다. 그는 또 경공업의 경우 중간재, 원자재, 기계류, 장비분야의 해외투자를 통해 수출수요를 유발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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