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특성 살려야 지방교향악단 발전
  • 이강숙 (서울대교수․음악평론가)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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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회·개인이익 염두에 둬야

연주가와 연주료의 관계는 묘하다. 무대위에서는 천사, 무대 뒤에서는 악마라는 말이 생긴 이유도 연주료 때문이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낼 때에는 마치 천사같던 사람이 무대 뒤에서 연주료를 요구할 때에는 ‘돈 밖에 모르는’ 비정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직업 연주가일수록 합당한 금전적 보수를 더 바란다. 그러나 직업연주가의 생리가 그렇다는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속된 말로 ‘돈 나오지 않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돈 받지 않고도 ‘죽으라고’ 연주를 한 일군의 연주가들이 있었다는 소문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베풀어진 ‘90교향악축제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KBS를 비롯한 전국 15개 교향악단이 2월 15일~3월 12일 사이 예술의 전당에서 저마다의 기량을 선보였던 것이다. ‘90교향악축제는 참으로 잘한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 교향악단을 발전시키는 방법으로 이만큼 좋은 기획은 없을 듯하다.

축제에 참가한 연주가들이 전부 ‘돈 나오지 않는 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다. 특정 지방 교향악단 단원들이 ‘돈’과는 무관하게, 죽으라고 연습을 해서 결국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는 후문이다. 왜 이런 말을 지금 여기서 하는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은 바야흐로 ‘지방자치제’를 운운하고 있는 시대다. 이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서 음악인들만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지방자치시대의 정신은 교향악단 발전을 위해서도 작용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는 깊은 반성과 각오에 임해야 한다. 어느 지방 교학악단 단원들의, ‘돈’과는 무관했던 음악 하나로만 향한 참으로 귀중한 마음을 이 때문에 화제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인간에게 ‘돈ㅇ’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경우에 따라서는 ‘돈’과 무관한 것이 ‘음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준 그들으 ㅣ마음은 참으로 소중하다. 물론 그들의 음악적 삶이 끝끝내 ‘돈’과 무관하게 되라는 뜻은 아니다. 하루 빨리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가 지급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적 삶은 ‘여기’에 있고, 우리가 원하는 음악이나 교향악단은 ‘저기’에 있다는 식의 사고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되지 않는다. 지방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저기’요, 한국사람들에게는 서양이 ‘저기’여서는 되지 않는다.

지방이건 서울이건 간에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임과 동시에 ‘저기’일 수 있는 문화풍토를 창조해야 한다. 가령 빈 사람들 혹은 베를린 사람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니 큰 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인 잘츠부르그 같은 도시를 생각해보자. 빈·베를린·잘츠부르그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네들이 사는 곳이 바로 ‘여기’요 동시에 ‘저기’이다. 그들이 만일 가야금을 전공하려면 사정은 급속히 달라진다. 한국이 바로 ‘저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방으 문화에서 하루 빨리 탈피해야 한다. 한국은 서양의 모방으로부터, 지방은 서울의 모방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러니까 지방 교향악단이 발전하는 길은 하나뿐이다. 자기네들의 특성을 살리는 길, 그것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지역별 특성을 살리는 방안’을 죽도록 강구하는 길밖에 없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려면, 남과 같아지지 말고 달라지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가령 고목선정에서부터 남과 달라야 한다. 남들은 음악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곡목을 연주하는데, 우리는 ‘비음악인’, 즉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곡목만을 연주하겠다는 식으로 공연기획과 관련되는 일종의 신념같은 것을 특색있게 세우는 방안이 중요하다.

물론 독선적 신념만을 앞세우고 ‘다름’을 위한 ‘다름’만을 고집해서는 되지 않는다. 세가지 종류의 이익은 아무리 ‘다름’을 추구하더라도 고려속에 언제나 넣고 있어야 한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당사자들인 음악인들의 이익을 우선 순위 제1로 잡아야 한다. 음악인들으 ㅣ입장이 아닌, ‘음악의 입장’에서 보면, 수준낮은 음악이 문제가 된다. 음악인으 이익도 좋지만 음악을 인겨체로 보고 음악의 이익도 생각해야 한다. 음악과 음악인만을 생각해서도 문제는 다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이 숨을 쉬고 사는 장소인 우리사회의 이익을 한시도 잊어서는 되지 않는다. 남과 다르되, 음악·사회·개인의 이익을 한시도 잊지 않는, 지역별 특성이 살게 되는 교향악단으 발전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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