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고스톱 안할 수 없나요”
  • 글 김 훈 편집위원·사진 나명석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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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댁 오숙분씨 “남성우월주의·가사노동 분담 안해 불만”



지난 8월29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 농촌지도소 강당에서 15번째 연변 새댁 吳淑芬씨가 이 마을 농부 李文玉씨(하동군 횡천면 남산리)와 혼례를 올렸다. 새색시 오씨의 친정아버지 吳泰鎭씨(49·吉林省 伊通懸 姑山鎭)가 딸을 데리고 길림에서 하동까지 왔다. 오씨는 아버지대에 중국으로 이주했다. “팔자가 농사꾼”이라고 오씨는 말했다. 신랑 이씨는 이 마을에서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계부 밑에서 자라 15년 동안 논 1천4백여평을 혼자 경작해왔다. 결혼 여건은 이래저래 좋지 않았던 셈이다. 이씨는 작년 7월 중국 농촌시찰단 일원으로 심양에 갔다가 거기서 색시 오양을 만났고 결혼하기로 언약을 맺고 돌아왔다.

색시와 장인은 결혼식 8일 전에 하동의 신랑집에 도착해 함께 살았다. 색시는 그 8일 동안 시댁에 익숙해지고 마을 아낙네들과도 사귀어 빨래터에서 함께 빨래도 했다. 색시가 준비한 혼수는 아무것도 없었다. “색시를 신랑이 싸서 데려가는 것이 연변의 풍속이다”라고 아버지 오씨는 말했다.

먼저 시집온 다른 새댁들이 한국에 가져온 시댁 선물은 옥양목 침대 시트 몇장과 벌꿀 한병 정도이다. 색시가 폐백 때 입을 한복도 신랑측에서 준비했다. 마당에 방 한칸을 따로 들여 신접살림을 차렸다 새댁은 결혼식 전 8일 동안 시댁에 묵으면서 한국농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여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고 새댁은 말했다. 연변에서도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대낮에, 또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사내들이 둘러앉으면 여자는 으레 먹을 것을 상에 차려 내놓아야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왜 자꾸 먹고 마시고 쓰는지 모르겠다”고 새댁은 말했다.

새댁은 “고스톱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연변에서도 화투를 치지만 민화투만 치는데 한국에서는 돈먹기 전용으로 고스톱이라는 놀이가 있다는 것에 새댁은 놀랐다. 또 한국 사내들의 지나친 남성우월주의도 새댁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변에서는 남녀가 함께 노동하고, 집안에서도 사내들이 가사노동에 동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 사내들은 일만 끝나면 아랫목을 차지하고 온갖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여자에게 시킨다고 새댁은 지적한다.

말투나 예절에도 사내가 더 높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배어 있다는 것을 새댁은 깨달았다고 한다. 색시의 아버지 오씨는 기자와 만나기를 한사코 거절했다. “당신들은 자본주의 기자이고 난 사회주의 국가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요. 얘기해봐야 무슨 좋은 일이 있갔소”라고 오씨는 말했다. 신랑 이씨는 젊은 아내의 지적이 “다 맞는 말”이라고 한다. 장인이 사회주의식으로 퉁명스러워 걱정이라고 한다. “한·중수교 이후 우리가 첫 번째 한·중결혼이다. 직항로가 개설되면 처가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다. 쌍방이 다른 부부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 가정으로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신랑 이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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