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실증주의 · 역사주의 논쟁
  • 석현호 (성균관대교수 ․사회학)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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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인식’ 심포지엄… 상호비판 통해 발전 지향

그간의 우리 사회과학은 실증주의적 접근에 의해 지배 되다시피 하였고 꽤나 보수적인 성격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같은 성향은 최근에 와서 급진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일단의 젊고 용감한 학자들에 의해서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도전과 더불어 우리의 사회과학은 비로소 철학적 기초를 달리하고 있는  학자들간에 자유로운 상호비판의 대결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은 주로 과학 또는 분석철학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과 역사 또는 사회철학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간의 대립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립 양상의 초기적 병폐 현상으로 흔히 나타나는 적대성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마련된 ‘한국사회의 인식 : 실증주의 대 역사주의’ 심포지엄에는 42명의 사회과학자들이 발표 또는 토론자로 참여했다. 6개의 분과 중 3개의 분과에서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정치 · 경제체제 및 사회구조가 논의되었고 다른 3개의 분과에서는 그러한 사회변화의 체제로부터 발생한 주요 문제들인 불평등 노동 및 분단과 민족문제가 다루어졌다.

 이갑윤교수(사강대 · 정치학)는 그의 주제 발표에서 ‘우리의 민중은 민중론자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과연 정치변혁집단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87년 6월항쟁, 7~9월의 노사분규, 13대 대통령선거에 대한 실증분석의 결과를 제시했다. 그 결과에 의하면 이 시기에 일어난 민중운동은 대체로 경제주의에 머물러 있었고 정치민주화에는 극히 제한적인 역할밖에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함택영교수(경남대 · 정치학)는 피지배계급의 집단 행동은 사회구성체의 맥락에서 분석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지 이교수가 이용한 태도설문조사 자료로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함교수의 입장은 손학규 교수(인하대 · 정치학)의 주제발표에서 잘 예시되었다. 손교수에 의하면 해방 이후 분단의 고착화 과정과 우익정권의 수립은 ‘건준’과 ‘인공’에 의해 대표되는 민중운동세력을 정치로부터 배제시켰고, 5 · 16이후에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중산층 시민민주세력과 함께 노동계급의 민중세력도 성장하긴 했으나 군부파시즘하에서 후자는 전자의 보호아래 있었으며 6 · 29선언 후에야 양자가 분화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한 민중운동세력은 지금 국내외적인 요인으로 다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남영교수(숙명여대 · 정치학)는, 예컨대 군정과 친미 세력의 탄압정치가 ‘건준’과 ‘인공’의 실패요인이라는 주장은 경험적 자료에 의해 충분히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체제와 경제변동’ 분과에서 질증주의 발표자로 나온 한성신교수(연세대 · 경제학)는 실증분석에 기초해야만 한 나라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잘 설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주류경제학에서의 형평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 경제학 모형을 예시하고 또한 한국경제성장의 이론적 틀도 시론적으로 제시했다. 반면 김대환교수(인하대 · 경제학)는 주제발표를 통해 주류경제학자들은 한국경제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역사-구조적 인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감교수의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한국경제에 대한 성격규정에 대해 정갑영교수(연세대 · 경제학)는 그것이 오히려 부분적인 분석에 치중하는 모순을 초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사회불편등 문제를 놓고 대결하였던 실증주의 계층론자와 계급론 내지 민중론자들의 공방전은 어느 분과에서 보다도 치열했다. 실증주의자인 차종천교수(성균관대 · 사회학)는 한국의 계급론자들이 강한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 도덕적 지향 내지 열정 때문에 자주 독단적이고 편협하고 성급한 주장들을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고 계급론자인 강정구교수(동국대 · 사회학)는 실증적 분석도 유용하나 미시현상 분석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고 계급형성과 계급투쟁을 중요한 연구과제로 삼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남북한의 현계급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공간의 역사적 전화기, 미점령군의 개입, 변혁의 주체자인 민중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관모교수(충북대 · 사회학)는 차교수가 요구하듯이 실증주의자들이 계급론자들에게 탈정치화 · 탈이데올로기화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상호간의 의사 소통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그런 요구 자체도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라는 역논리를 폈으며, 실증주의자인 홍두승교수(서울대 · 사회학)는 계층론과 계급론은 상호 보와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배타적으로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면서, 강교수의 논지도 이점에서 적절하나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판단은 자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는 주요 일간신문들의 보도 제목과 달리 이 심포지엄을 이데올로기상의 ‘보혁대결’ 또는 ‘보혁논쟁’을 위해서 준비하지 않았고 또한 이 심포지엄이 ‘사회인식 방법의 팽팽한 대립’ 또는 ‘보혁인식의 골’을 노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회과학은 부단한 상호비판 과정을 거쳐야만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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