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로구노프 모스크바大 총장
  • 김춘옥 편집위원대우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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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대학, 자율권 크게 신장”

그의 10일간 (2월26일~3월7일)의 방한동정에 대해서 한국언론은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저명한 양자 및 소립자 물리학의 이론가이자 소련 국립 모스크바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으며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이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2월부터 업무를 개시한 소련주재 한국영사관이 발급한 비자를 받고 방한한 첫 번째 소련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일하던 서른네살 대,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공산당원이 됐다는 아나톨리 로구노프박사. 연세대학교와 학술 차원의 교류를 목적으로 일행 3명과 함께 내한한 로구노프 박사에 대한 관심은 그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방한이 한·소관계 개선의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일성과 함께 한·소 평화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더욱 커졌다. 페레스트로이카로 세계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소련, 그중에서도 특히 소련 대학내부의 소식을 직접 들어보았다.


? 소련사회에 공개·민주화·정치적 다원주의를 목적으로 하는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됩니다. 이제는 그같은 정책의 결실이 조금씩이나마 나타날 때라고 봅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율권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으리라 예상됩니다 대학총장으로서 대학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으며, 또 일어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미 소련의 사회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마찬가지로 대학도 많이 변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대학내부의 문제를 대학인들, 즉 교수와 학생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는 일개 학과의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결정도 대학 자체에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교부가 일일이 다 개입해서 결정했어요. 한 과의 명칭을 바꾸는 결정도 문교부가 했어요. 관료주의적 행정이었지요.

이제 이 정도의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만큼 대학인들의 책임이 커졌고 할 일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많은 대학의 자율권을 더욱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의 자율권 문제는 문교부와 국가교육위원회 관할입니다. 이미 대학의 완전자율권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습니다. 한편 2년전부터 모스크바대학 내에는 교수와 학생으로 구성된 ‘모스크바대학 과학위원회’가 발족돼 대학의 문제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 대학의 교육내용 차원에서도 변화가 많으리라고 봅니다.

교수, 학생들의 연구활동이나 기타 개인이나 집단 차원의 창조적 활동이 지금은 자유롭게 보장돼 있을 뿐 아니라 외국과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어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학이나 사회학분야에서는, 여태까지 관행적으로 나타났던 교조주의적 입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외국의 이론들을 배우고 가르치도록 권장하고 있지요. 외국의 자본주의이론도, 민주주의이론도, 종속이론도 모두 배워 토론하면서 연구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외국의 학문을 “검다”라는 한가지 색으로만 보던 종래의 입장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모든 외국의 이론을 분홍색으로만 보려는 사람들도 생겨나더군요. 어쨌든 일방적인 접근은 지양하려고 합니다.

●  젊은이들, 특히 대학생들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리라고 봅니다.

모든 대학생들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비판하는 경우도 있으나, 단지 왜 페레스트로이카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가라는 측면에서만 비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학생대표들은 매일매일, 페레스트로이카에 장애가 되는 문제를 짚으면서 내 방에 와서 질문을 합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는 일반학생들로부터도 무엇이 페레스트로이카를 저해하는 요소인가를 직접 들어볼 예정입니다.

●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모스크바대학 내에 대학과학위원회가 생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생들의 대학행정 참여의 방법과 참여의 한계에 관해서 알고 싶습니다.

1백여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대학과학위원회는 25%가 학생대표로 구성돼 있습니다. 대학행정과 교과과정 전반에 관한 결정을 합니다. 물론 아직까진 모든 행정, 모든 교과과정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17개 학부를 갖고 있는 모스크바대학의 구성인원은 교수·학생·고용원 등 모두 6만명입니다. 각 학부에도 학부과학위원회가 있습니다. 교수채용, 학과장 선출 같은 결정은 학부 차원의 위원회에서 합니다. 상급교수 채용과 임명만은 대학 전체위원회에서 합니다.

총장선출도 장유경선원칙에 의해서 합니다. 이때는 확대대학위원회가 열리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학생의 비율도 30% 정도 됩니다. 86년말 제가 총장으로 선출될 때도 몇 명의 후보자를 놓고 이 위원회가 자유토론을 거쳐 비밀투표를 했습니다(총장후보 자격은 60세 미만으로 임기 5년의 단임제이다). 나는 학생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올바른 방법으로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총장실 개방을 약속했습니다.

●  체코 민주화는 젊은 대학생 1명이 자살을 하면서부터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회주의국가에서도 대학생들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에서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페레스트로이카지지 시위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젊은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해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학생들의 자유스러운 의사표시를 위해서 우리 대학 본관 1층 큰 강당을 개방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일명 ‘하이드 파크 코너’라고 부르고 있지요. 이곳에서 학생들은 정부나 대학위원회의 결정에 대해서 비판을 하거나 찬성을 하는 내용을 담은 유인물을 마음대로 뿌리기도 하고 벽에 붙이기도 합니다. 국내문제, 국제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그들이 만든 유인물을 뿌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데모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죠. 소련 대학에서는 군사교육이 의무적인데 학생들 가운데는 이미 군복무를 마친 경우도 있습니다. 왜 군대도 마쳤는데 대학에서 군사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이같은 조치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겠다라고 하더군요. 나는 여러분의 뜻은 잘 알았다, 문제를 잘 검토하겠다. 그렇다고 이같은 문제로 데모를 해서는 안된다라고 설득한 뒤, 이 문제를 정부에 잘 전달해서 해결토록 하겠다라고 말하고 내 집 전화번호도 알려주었습니다. 학생들과 앞으로 긴밀한 접촉을 갖겠다고 말했죠. 그후 정기적으로 내게 학생들이 전화를 하더군요. 그래서 문제해결을 도와주었죠.

학생들이 옳다면 그들이 옳은 결정을 하도록 도와줘야죠.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규모의 데모가 많습니다 이런 데모에 학생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뿐 아니라 소련 전국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한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 소련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모임이나 시위는 비폭력적이라는 겁니다.

●  소련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업도 과거와 달라졌습니까?

내가 젊었을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 교수가 가장 존경을 받았습니다. 당원이 되면 고위직 관료가 될 가능성도 높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수입이 많은 직업을 찾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소련에서는 어떤 직업이 수입이 많은 직업이다라고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개인기업이 지금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나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현상이 약간은 우려가 됩니다.

●  훌륭한 저서를 펴낸 물리학자이자 대학총장으로, 당중앙위원까지 겸하고 계신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문제접근방법과 해결방식에 있어서 학자와 정치가란 두가지 신분이 상충된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요?

중앙위원회가 하는 일은 교육·과학·사회문제 등 국가적 차원의 전략 결정입니다. 이 모든 분야에는 전문가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앙위원회에 정치인들만 있다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이처럼 중요한 분야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정책을 입안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중앙위에서 나의 역할은 과학교육문제를 토론하는 데 있습니다. 그곳에서 물론 나는 자유스럽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내 전문분야가 아니 분야라 하더라도 내 인생의 경험을 토대로 문제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교수가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교수가 다 당 중앙위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교수들이 중앙당원이 되고 싶어하고 또 매일의 사회생활에, 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합니다.

●  ‘페레스트로이카가 우리에게 무얼 가져다 주나’,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무엇이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소위 우익이라고 불리는 보수파와 ‘보다 혁명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극좌파로 불리는 급진적 개혁파 등 지금 소련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극좌파들은 대중을 현혹시키는 슬로건만 내걸 뿐 무엇을 하자는 구체적인 제안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익은 정부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당 중앙위원으로서 나는 페레스트로이카는 정치적 문제에서는 신속히, 경제적 측면에서는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경제는 인간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므로 속도가 느릴 수박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주의의 새로운 재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10년후의 소련 사회 전반을 어떻게 내다보십니까?

지금보다는 경제적으로 나아질 것은 틀림없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금전에 대한 가치가 높이 평가되면서 과거 자본주의국가가 해결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날까봐 가장 걱정이 됩니다. 다양한 가치추구, 다원화된 사회, 여론의 다양화, 사실 이 모든 것은 초기 사회주의의 이상이었습니다. 초기 사회주의의 이상이 앞으로 하나둘씩 실현될 것으로 봅니다.

●  국제정세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동유럽에 많은 변화가 있고 사회주의국가들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북한사회도 변하리라고 생각하는지요?

동유럽에서 일어났던 많은 변혁의 씨앗은 분명 소련이 국내문제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아주 분명한 어조로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던 데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변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선 협상테이블에 남·북이 앉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협상테이블에 남·북한이 앉기 위해서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양쪽에서 분위기 조성을 위한 합의를 하면 1단계는 끝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정치가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  한국에 머무는 동안 廬대통령을 예방하는 등 주요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소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한·소관계를 낙관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이 의견은 중앙당으로부터 명령을 받아서 한 것이 아니라 중앙당원의 자격으로서 말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지금 양국은 평화협정 체결쪽으로 일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같은 결정은 소련이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쌍방간의 문제입니다. 특히 지금으로서는 언제 이 협정이 체결될 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현재의 소련 외교정책은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과 접촉하자는 겁니다. 다른 국가들과의 상호이해를 보다 더 증진시키기 위해서지요. 소련과 한국간에 앞으로 국교수립이 이루어질 것은 물론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  연세대학교와 학술교류협력에 대한 이행각서를 내일 (3월6일) 교환하는 것으로 압니다 (매년 4명 이내의 전문가를 서로 보내 양국의 언어·역사·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분야에서 공동연구를 수행토록 한다는 것). 모스크바대학이 김일성대학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연세대와 3각협조에 앞장설 수 있다고 블라디미리 트로핀 부총장이 밝혔는데 지금으로선 어떤 안을 갖고 있는지요?

현재로서는 가능성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역할이 남·북한 관계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대학 차원의 남·북교류에 앞장설 용의가 있습니다.

●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연대에서 강연도 했고 학생들로부터 질문도 받았는데 한국학생들로부터 어떤 인상을 받았습니까?

한국학생과 소련학생 사이에 차이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이 내게 던진 질문에서(연세대 2월28일) 두 나라의 젊은이들의 의식이 비슷한 것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강당에서 학생들로부터 받았던 질문과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의 민주화에 대한 질문이라든가, 학생들의 권리와 일반적인 인권문제라든가, 대학생활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한국에 대해 가졌던 인식과 직접 방문하고 난 후의 느낌에 차이가 있습니까?

국제문제를 자주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는 정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막상 와서 지내는 동안 우리 일행이 갖게 된 가장 큰 느낌은 ‘부럽다’는 것입니다. 백화점이나 상점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고 거리에서도, 행인들에게서도, 풍요로움이 엿보였습니다. 원래 사회주의란 모든 국민을 돌보며 또한 그 안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생활이 보다 윤택하도록 해주자는 것입니다. 레닌이 20년대에 품었던 생각이 바로 이겁니다. 그런데 가장 융성해야 할 사회주의국가가 국민들에게 궁핍을 안겨다준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더 개방정책을 밀고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운전자들의 매너였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운전자들간에 손을 들어 양해를 구하거나 감사표시를 하는 것은 상식화돼 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점이 부족한 듯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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