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유혈진압 불가피, 美파나마 침공은 무력정치 표본”
  • 편집국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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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澤民중공당총서기, 美誌와 인터뷰서 밝혀

지난해 천안문사태 이후 당최고위직에 오른 江澤民 중국공산당 총서기는 최근 美시사주간지《유에사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민주주의가 최상의 민주주의이며 천안문사태 당시 젊은 학생들이 요구한 민주주의와 자유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총서기에 취임한 이후 서방언론과 첫 인터뷰를 가진 江澤民은 민주주의와 자유·인권의 개념은 서로 다른 사회체제에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것임을 전제하면서 중국 내부문제에 대한 서방세계의 시각에 비판을 가했다.

3월14일부터 16일까지 북한을 방문, 金日成 및 국가주석을 승계할 것으로 알려진 金正日과 회담을 갖게 될 그는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하며 사리가 분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인터뷰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천안문사태 이후 美고위관리들의 잇따른 중국방문이 中·美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당총서기 취임 이후 미국의 친구들을 만나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교환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여전히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추구하는 反부르조아자유화운동과 외국자본 투자독려, 대외개방정책과는 상호모순된다고 보고 있다. 미국에 대한 나의 이해는 중국에 대한 많은 미국인들의 이해보다 좋은 편이다.

● 70년대에 중국과 미국은 진정으로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이후 세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90년대 中·美관계는 어떠해야 된다고 보는가?

현상황이 70년대보다 악화됐다고 생가지 않는다. 천안문사태는 순전히 중국 내부문제로, 언론들의 부정확한 보도로 엄청난 오해가 초래됐다. 미국은 자본주의와 자유·인권을 되풀이해 주장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은 파나마에 미군을 파병, 일국의 대통령을 압송까지 한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인들의 눈에는 미국의 파나마 침공이야말로 무력정치의 표본인 것이다. 티베트분규만 해도 이를 진압하기 위해 우리가 군대를 파견하니까 미국은 인권탄압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만약 당시 시위학생 10분의 1만이라도 백악관이나 다우닝街, 엘리제궁 앞에서 그같은 상황을 연출했다면 어떤 정부도 이를 허용치 않았을 것이다. 양국의 관계증진을 위해선 경제·문화교류, 그밖의 많은 분야에서 상호 협력기반을 모색해볼 수 있다.

● 부패문제는 지난번 학생시위의 한 요인이었다. 부패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은?

부패가 당과 정부의 적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겠다. 전국민들에게 정직과 청렴을 계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 중국인구 3분의2가 49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다. 그들은 오늘의 상태를 49년 이전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대만과 홍콩의 경제, 그리고 동유럽과 소련의 정치적 변화에 견주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은?

스스로 투쟁을 통해 수립된 중국은 자존과 애국심으로 매우 강력한 인식을 갖고 있다. 중국민들은 정치적 안정을 갈망하고 있으며 또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기 때문에 경제향상을 위해 일치단결하고 있다. 국가가 부강해지면 여타의 태도나 견해도 달라질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하여야만 미국인들 같은 물질적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려면 자력으로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 귀하는 국가안정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등소평 이후 중국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상당수의 당간부, 노련한 지도자들을 갖춘 공산당은 집단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나는 항상 중국을 매우 거대한 집단이라고 말해왔다. 그같은 거대한 집단을 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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