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영역구분 필요하다
  • 이영선(연세대교수․경제학) ()
  • 승인 1990.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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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여당인 民主自由黨은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00년까지 3倍加하여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새로이 출범하는 정당으로서 당연히 내걸 수 있는 목표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욕에 찬 목표가 우리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기 전에 우리가 갖게 되는 의심은 그러한 목표를 설정한 민자당의 정책입안자들이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정치적 민주화과정을 수반하지 않은 채 경제적 선진화를 이룬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우리가 더욱 이러한 의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동안 6共이 추구해오던 균형과 안정을 위한 경제개혁이 민자당의 출범과 함께 크게 흔들리기 시작하였으며, 3공과 5공을 통해 우리 경제에 불균형과 부정의를 심어놓은 경제성장제일주의자들이 정치적으로 득세하게 된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6공화국에 이르러 우리는 그 이전의 사회보다 민주화된 사회에 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단순한 다수결에 의한 투표제도를 실행함으로써 완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합당을 통해 다수의 세력을 확립했다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안정되었다고 볼 수는 더욱 없다.

예를 들어 9명으로 구성된 어떤 한 사회에 소득이 10만원 발생하였다고 하자. 이 소득을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나누어 갖기 위해 다수결로 나누는 방법을 결정한다고 하면, 이 사회에는 곧 5명으로 구성된 다수가 형성될 것이고 다수결에 의해 이들 5명이 2만원씩 소득을 나누어 갖기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때 나머지 4명은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 다수는 계속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소득을 갖지 못한 4명이 다수에 속한 1명을 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그 1명에게 지금 받고 있는 2만원보다 더 큰 액수(예를 들어 3만원)를 주기로 하고 나머지 금액을 지금껏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하던 4명이 나누어 갖게끔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5명이 다수표를 형성할 수 있다. 이러한 매수에 의한 새로운 作黨은 계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고 이 사회는 계속적인 불안정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즉 정치에 의해 경제적 배분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불안정한 사회가 된다.


政·經결탁은 민주주의를 위협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경제적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민주주의는 단순한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만이 아니라 사회의 여러 세력이 多元的 가치를 추구하며 타협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발전을 이룩하자는 이념이다. 그러기에 민주주의에서는 分權이 필수적인바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어야 하는 것처럼 경제력과 정치력도 분리되어야 한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인데 오늘날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제국들에서 정치에 의한 경제의 지배가 가져오는 모순이 그 사회에 불안을 야기시키고 있다. 경제에 의한 정치지배의 모순은 독점자본주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불평등과 비인간화를 초래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더 우려하는 것은 정치력과 경제력의 결탁이다. 政과 經의 결탁이 이루어질 때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다원적 사회는 붕괴되고 사회적 계층의 구분이 완연해져 그 대립관계가 첨예화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와 경제의 영역은 분명히 나누어져야 한다. 거의 모든 선진국이 자유시장을 활용하여 경제적 분배를 수행하고 있으며 정치의 시장간섭을 극소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제력의  정치력에 대한 침투를 엄격히 감독하고 있음도 주시해야 한다. 결국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구분하는 제도적 장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선진화’막는 인위적 경제간섭

불행히도 우리의 역사속에서는 정치력과 경제력의 결탁이 계속되어왔다. 정치력이 수많은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였고 기업의 검은 재력이 또한 정치력을 좌우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 물결에 힘입어 사회 각계각층이 정치력과 경제력의 결탁에 의한 지배층의 독주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거대여당의 출범이 정치적 안정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힘을 빌려 과거 우리 역사속에서 보아왔던 경제영역에 대한 인위적인 간섭행위가 또다시 자행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선진화롤 향할 수 없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오늘의 우리 경제는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이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바로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거대여당에 간곡히 바라는 것은 지금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국제수지에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기화로 또다시 불균형을 확대시키는 정치세력 주도의 성장주의적 정책을 재도입할 것이 아니라 온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형평화된 제도를 구축하여 장기적으로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힘써 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와 경제의 영역을 분명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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