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위기와 대중성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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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독자 ‘가벼움’ 선호…야사류 소설 ‘홍수’ 작가·독자 상호교통으로 문학 ‘진정성’ 되찾아야


90년대의 소설 독자는 그 이전의 독자와 매우 다르다. 우리가 아직까지 체험하지 않았던 낯선 계층이다. 어떻게 다른가. 작가나 평론가, 출판인이 그 다른 점을 채 규명하기도 전에 이니셔티브는 그들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독서시장의 판도가 전혀 새로운 형태로 바뀌고 ‘소설의 위기론’마저 대두하면서 이 새로운 독자에 대한 연구는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박남훈씨가 최근 발표한 평문 ‘대중, 문학의 소비자 혹은 심판자’ (《문학정신》9월호)는 《소설 동의보감》류의 상업적 성공을 소비자 지향적 문학생산 단계로의 진입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생산라인의 자극자로서의 독자를 관찰하고 있다.

“소수의 독자가 고급독자이고 다수의 독자는 하급독자라는 단순 논리는 이제 우리 문학판에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씨는 이 새로운 독자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부정적인 선입관에서 벗어남으로써 문학의 자기정립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9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 문학을 특징짓는 현상들 중 하나는 《소설 동의보감》《목민심서》《토정비결》《매월달 김시습》같은 전기류 혹은 야사류 대하소설의 지속적인 생산이다. 이것이 대중독자의 적극적인 반응에 고무된 것이며, 이러한 흐름이 우리 문학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이라면 작품의 생산을 자극하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심판자인 이들의 존재에 대해 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90년대의 독자에게 변혁논리와 이념으로 충만한 리얼리즘문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또는 해체논리들이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여러 평론가들은 추측한다. 박씨의 경우 그 이유를 계급적 분노나 체제 저항 논리를 절대선으로 간주해온 진보진영의 문학 논리에 식상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 반면, 문학평론가 신덕룡씨는 ‘80년대식 신념의 문학’에 대한 독자의 무력감 또는 허무주의로 풀이한다.

신념이 현실화할 수 있었던 시절의 독서는 독서행위 자체가 현실 변혁을 위한 실천의 한 방법일 수도 있었으나 그 신념이 무의미해진 사회·정치적 상황은 현실도피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선택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지함에 대한 염증이 그것인데 80년대 이후 텔레비전에 길들여진 세대의 성장도 이 변화에 큰 몫을 한다.

새로운 독자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이 80년대의《손자병법》이고 이 독자의 세력을 실험한 것이 90년대의《소설 손자병법》이었다면《빙벽》이나《단야》의 상업적 성공은 이들의 존재를 확인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빙벽》과《단야》에 대한 독자의 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작품이 지닌 대중성을 해석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이 두 작품이 독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요소는 진지함을 거부하는 독자에게 전혀 새로운 소재를 제시한 데 있다. 즉《빙벽》은 우리 현대사에서 군인에 의한 폐해가 가장 노골화되었던 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정치군인의 왜곡된 애국심과 이기주의를 파헤치고 있으며《단야》역시 우리에게 지금까지 닫혀 있던 시공간과 소재, 즉 19세기 말에서 20세기초 한 탁월한 사회주의자의 전말기를 다룸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최대한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신씨는《빙벽》의 경우 활극의 요소를 가미한 추리소설적 기법도 ‘엄숙주의’에 식상한 독자들을 유인하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독자들의 유연성과 감수성이 과연 문학성과 공존해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늘 새롭고 충격적인 것에 대한 이들의 욕구가 야사류의 역사 대하소설의 대량생산을 추진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 반란’이라는 시각이 그것이다.

90년대의 새로운 독자에 대한 비판은 소설가 우한용(전북대 교수)씨로부터 나왔다. 그는《문학정신》9월호의 특집 ‘역사 대하소설의 대중성과 문학적 가능성’에서 독자의 호응이 문학적 성과를 대신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소설의 위기’를 통속소설의 범람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의식의 공동기반이 와해되고 문학정신의 긴장력이 상실되어 가는 현실에서 발견한다.

“소설의 대중성은 단지 작가의 의도와 노력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가 살아가는 사회 내적인 존재이고 독자 또한 작가가 속해 있는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인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상승적인 문학감각을 유지하는 데서라야만 정당한 의미의 소설 대중성은 확보된다.”

그는《태풍》《비명을 찾아서》《황제를 위하여》세 편을 요즘의 소비문화적 독서 풍토에 정면으로 맞서는 작품으로 꼽으며 “작가가 독자의 취향에 영합하지 않아야 하듯이 독자 역시 작가의 지적인 작업에 성실히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세 작품은 역사소설이 어떻게 고도의 현대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에 가정법을 설정하여 이것을 소설 내적인 현실로 삼는, 소위 ‘대체역사(if in history)’의 기법도 지적인 독자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작가편에서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독자편에서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한 것이라 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고급 독자군이 형성되면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작품이 나온다”는 우씨의 주장은 그 공감대를 넓혀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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