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애소설 ‘희망과 절망사이’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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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 시비 속… 《즐거운 사라》《너에게…》등 성 문학 소설 출간 잇달아



 프롬은 서양의 역사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사라고 보았다. 그러나 투쟁이 거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는 얻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전지구적 현상으로 번진 지금, 현대인들은 자유 대신 일상에서의 만족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때의 일상은 후기산업사회의 도시적 일상이고 소비하는 일상이다. 소비는 광고와 매체, 즉 성과 욕망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현대인이 추구하는 일상적 만족은 성·욕망 채우기의 과정일 따름이다.

 성과 성적 이미지들이 현대와 현대인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성을 향해, 성을 통해, 금기와 위반을 넘나들며 현대인은 성에 다가가지만 성은 그때마다 한걸음씩 멀어진다. 인간은 성에 의해 성으로부터 소외당한다. 성과 인간 사이의 간격은 인간과 인간해방 사이의 거리와 같다.

 위와 같이 ‘문제는 성이다’ ‘성이 군림하고 있다’라고 발언하는 소설 작품들이 최근 잇달아 서점에 진열되고 있다. 마광수 교수(연세대·국문학)가 지난해에 출간했던 장편 《즐거운 사라》를 개작해 도서출판 청하에서 새로 펴냈고, 작가 장정일씨는 전작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미학사)를 선보였다. 그 뒤를 이어 작가 장석주씨의 전작 장편 《표류하는 사랑》, 하재봉씨의 장편 《블루스하우스》(해냄), 그리고 한국인 피가 흐르는 중국계 미국 여류 작가 적여하씨의 장편 《저주》(가제·서울문화사)도 잇달아 묶일 예정이다.

 정도와 시각의 차이는 있지만 성을 다룬 소설은 이밖에도 많다.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발표된 조성기씨의 《우리 시대의 사랑》, 하일지씨의 《경마장…》 시리즈, 주인석씨의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 등 이른바 성(애)문학은 90년대 한국 문학의 주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말로 변역된 외국의 성 소설들을 덧붙이면 성 문학 현상은 보다 두드러진다.(85쪽 관련 기사 참조). 성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소설의 위기, 대중성 논의와 맞물리면서 문단의 한 이슈로 부각돼 있다.

 활발해지고 있는 성 문학 논의는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로부터 ‘제동’이 걸리면서 문학의 울타리를 벗어나 있다. 9월24일 윤리위의 대회의에서 최종 결정될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제재 건의는, 우선 작가의 표현의 자유 대 사회 윤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지만 안팎으로 많은 파장을 그리고 있다.

 문제가 된 《즐거운 사라》는 서울의 한 미술 대학 3학년 여학생 나학라가 1년 동안 겪은 다양한 성 체험을 그 세대, 즉 90년대의 대학(신촌) 언어로 담아냈다.

 “성 자체를 다룬 한국 소설은 없었다. 그간 한국 소설에 나타난 성은 현실적 고민의 도피처에 그쳤고 그나마 눈치보기에 급급했다”고 마교수는 말했다. 《즐거운 사라》는 그가 발표해온 일련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자아가 아닌 개인적 자아가 성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풍경들에 심리적으로 접근하다.

 외국병에 걸린 부모가 이민을 떠나자 홀로 대학교에 다니는 나사라는 고등학교 시절 화실에서 만난 대학생을 시작으로 성에 눈뜬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고 외치는 약속 없는 세대. 전망 부재의 세대들은 ‘덧없는 것의 화려함’과 ‘순간에 충실하기’에 빠져든다. 처녀막 컴플렉스를 일찌감치 극복한 사라는 성의 본질과 만나기 위해 룸살롱에 아르바이트를 나가며 중년 사장,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교수 등과 관계를 갖는다. 성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의 분위기도 풍긴다.

 사라를 비롯한 신세대는 광고·영화·비디오·대중매체 등 성에 대한 무수한 담론과 패션·기호품·음식 등 성적 이미지들에 포위되어 섹시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싸운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는 젊은 여성으로 하여금 단순·명랑·섹시함을 요구·강요한다. 그러나 소설 속의 교수가 지적했듯이 “젊은 여성은 육체적으로는 한껏 자유로와지려고 노력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상품 가치로서의 순결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다.

 마교수는 이 소설이 순전히 독자와 문단 내부의 논의에 맡겨지길 바라고 있다. 윤리위의 제재는 작가의 표현 자유를 침해한 것은 물론이고 그 절차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는 ‘중세의 종교재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마교수는 작가나 출판사에 설명 기회도 주지 않고 문학에 대한 비전문가들이 작가를 풍속사범으로 몰아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문학교수가 문학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성 문제를 다루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강조했다.

 한편 윤리위측은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교수가 우리 기준(사회 윤리)에 위배되는 책을 계속 출간했고, 지난해에 문제가 된 소설을 다시 출판해 강경한 대응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체성 변화를 통한 인생 유전 강조”

 장정일씨의 《너에게…》는 성 그 자체를 테마로 삼지는 않았다. 장씨는 이 소설에서 인문적 대지식인의 ‘권좌’를 박탈당하는 ‘작가의 죽음’을 다루면서 권력과 성, 문명과 성의 허위 의식을 해부한다. 이 장편은 “보아라, 너희들의 도덕률, 합리주의적 가치관, 권위, 엄숙주의의 실체가 이같은 성 아니냐”라는 대 사회적 반문이다. 장씨는 사드 백작이 집요하게 성을 천착한 이유를 위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너에게…》는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가 표절 시비에 휘말려 당선이 취소된 ‘나’와, 그의 상업고등학교 동창생 ‘은행원’, ‘나’의 당선작을 보고 찾아온 ‘바지 입은 여자’, 그리고 기관원 ‘색안경’을 비롯해 운동권 인물·평론가·시인 등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기관원의 강요에 의해 포르노 소설을 쓰는 작가인 ‘나’의 허물어지는 과정, 여공 출신으로 노동문학 평론가와 동거하다가 ‘나’를 찾아온 바지 입은 여자의 변전, 은행원의 작가 데뷔 등 인생 유전에 초점을 맞춘다. 그 사이사이에 과감한 성 표현이 끼여든다.

 정보 기관은 작가의 포르노 소설을 사서 제목을 ‘마르크스를 위하여’로, 출판사 이름을 ‘민중과학사’로 달아 지하출판물로 유통시킨다. 이중언어와 이중사고를 통해 대중을 교란시키는 것이다. 이같은 상상력은 은행원의 성기가 지구보다 커져 우주를 유랑한다거나, 여공이 최고의 스타로 변신하는 등으로 이어지면서 책읽기의 속도를 배가시킨다. 이 블랙 유머들은 전망 부재의 절망으로 모아진다. 비극인 것이다.

 “80년대의 중산층 소설은 주인공의 존재 변화를 다루지 않았다. 그 결과 소설의 입지를 약화시켰다. ‘운동권 소설’은 지나치게 목적의식만 강조해 역시 소설의 영역을 좁히고 말았다.”고 장정일씨는 말했다. 그는 소설에서의 성 묘사는 그것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는 ‘빈 부대자루’라면서 외설이라는 느슨한 구성 속에 관념이나 철학“을 채워넣는다. 그 철학(문명비판)이 겨냥하는 대상은 문학(작가)·권력·자본 그리고 이것들과 밀접한 성, 즉 당대의 현실이다.

 

“80년대식 성 문학 평가는 오류”

 성 문학의 등장은 문학과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 성 문제를 탐사하는 작가들은 “사회와 삶의 질적 변화, 즉 성에 대한 인식과 그 풍속의 변화에 비해 사회의 윤리관이나, 80년대식 잣대로 성 문학을 저울질하는 일부 평론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성의 현실과 성에 대한 가치 기준 사이에 큰 시차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에 대한 문학적 접근을 소설 기법의 변화로 보아야지, 문학에 대한 가벼움으로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평론가 장석주씨는 이같은 현상을 문학의 시각 변화로 읽어낸다. 사회과학적 상상력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던 입장이 90년대 들어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갔다는 것이다. 존재와 자아의 세계를 가장 날카롭게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이 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평론가 박덕규씨는 “완강한 유교적 가치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작가의 강박관념에서 성 문학이 비롯된다”고 진단하고 “자본주의의 구성 원리인 욕망과 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본주의 현실을 독해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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