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山’ 넘은 유럽통합
  • 파리 · 양영란 통신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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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51% 찬성…민족주의·극우파 득세 등 앞길 아직 험난



 유럽통합은 이제 바야흐로 탄탄대로에 들어선 것일까. 통일유럽을 목표로 하는 마스트리히트조약비준을 놓고 9월20일 실시된 프랑스 국민투표는 50.95%의 지지로 어렵게 가결했다. 비록 아슬아슬한 표차로 가결되긴 했지만 프랑스 국내외 유럽통합주의자들에게는 일단 안도감을 안겨주는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국민투표를 2, 3주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반대표가 비등하는 것을 보고 큰 혼란에 빠졌던 유럽 금융통화관계자들도 한시름 놓게 되었다.  이로써 유럽공동체(EC) 내의 경제·금융·정치통합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마스트리히트조약의 실현은 한발짝 가까워진 셈이다.

 투표 결과를 접하자마자 존 메이저 영국 수상은 (그는 이번 하반기 유럽의장직을 맡고 있다) 프랑스의 가결을 축하하고 10월 초 유럽정상회담을 소집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국민투표를 계기로 조약비준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그리스 등 4개국이 비준을 마무리한 바 있다.

 미온적이나마 프랑스 국민의 지지를 확인한 이날을 가리켜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발의로 실시된 국민투표인 만큼 이번 승리는 일차적으로 미테랑 대통령 개인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다.

 

미테랑 대통령의 전략 주효

 지난 6월2일 덴마크에서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을 내건 국민투표가 부결되자마자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에서도 조약비준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노라고 승부수격인 단안을 내렸을 때부터 그의 정치적 사활은 이번 투표의 결과에 달린 셈이었다. 1969년 드골 대통령이 상원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해서 자신의 신임을 걸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가 패배하자 정치에서 물러난 선례가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 자신은 이번 투표에서는 국내정치 상황을 떠나 어디까지나 유럽통합에 관한 의견만을 묻는다는 확고한 신념을 보였으며, 실제로 그의 이러한 고집스러운 처신은 주효해서 주요 야당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미테랑 대통령과 더불어 프랑스 정치무대에서 트로이카를 형성하는 야당의 두 거물급 지도자인 지스카르 데스텡 전대통령과 공화당 수뇌 자크 시락 현 파리시장이 찬성 캠페인에 적극 나섬으로써, 미테랑 대통령과 그가 이끄는 사회당 정권에는 반대하나 유럽통합이라는 ‘대의명분’에는 동참한다는 일부 우파의 표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내에서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추구하며 국제무대에서 미국과 일본의 정치·경제적 헤게모니를 제어하는 유일한 방편으로서 유럽통합을 추진하는 데는 여·야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이들 야당 지도자들의 잠정적 의견 통일은 내년 3월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와 95년의 대통령선거에서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아직 미지수이다.

 

계층 이해 통합 숙제로 남아

 또한 유권자 두명 중 한명이 반대를 함으로써 프랑스가 찬성파와 반대파로 완전히 이분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래지향적인 젊은 세대, 지식층, 중산층이 주로 찬성표를 던진 반면, 농민, 영세상, 노동자의 대부분은 반대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계층이 대변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를 모색해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고 할 것이다.

 마스트리히트조약 비준의 가장 큰 변수였던 프랑스 국민투표가 비준 지지를 가결했다고 해서 유럽통합과 관련된 모든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몇주 전부터 전세계 금융계를 떠들썩하게 한 유럽통화 체제의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리라고 보기는 시기상조이며, 무엇보다도 유럽통합 문제를 부결시킨 덴마크의 문제가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번 국민투표 가결로 2차대전 직후 최초로 통일유럽을 꿈꾸고 구상했던 나라로서, 또 독일과 더불어 40여년간 유럽통합의 견인차 역할을 한 프랑스의 유럽 공동체 내에서의 체면은 유지된 셈이다.  그러나 가결의 여세를 몰아 옛 유고슬라비아 위기로 상징되는 동유럽의 민족주의 경향, 서유럽의 극우파 득세 등 유럽대륙의 해묵은 망령을 잠재울 수 있는 진정한 유럽통합의 길은 아직 멀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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